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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주굉 스님의 열 가지 행실

기자명 성재헌

“처음 산문 들어온 것처럼 실천 또 실천하라”

명나라 때 운서사에 주굉(株宏) 선사라는 분이 계셨다. 어느 날 패기가 넘치는 한 젊은 스님이 불쑥 물었다.

“스님, 사문(沙門)은 뭘 해야 합니까?”

“도를 닦아야지.”

“도를 닦으려면 뭘 먼저 해야 합니까?”

“덕행을 먼저 익혀야지.”

“스님은 참 답답한 분이십니다. 둔한 사람이나 복을 닦지요.”

젊은 제자의 예의 없는 행동에도 주굉 선사는 싱긋이 웃었다.

“그래, 둔한 나는 복을 닦는다 치고, 영리한 너는 어떻게 도에 들어갈 생각이냐?”

“지혜로 깨달아 단박에 도에 들어가야지, 덕이니 복이니 하며 구질구질하게 부산떨 것 뭐있습니까?”

“덕행이 근본이라는 옛말도 있지 않느냐.”

“그거야 유위의 공덕을 바라는 속인들 이야기지요. 부처님의 무위법이 그런 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주굉 선사가 손을 저으며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아니야, 아니야.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리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세간의 선비들도 원대한 경지에 이르기 위해 먼저 도량과 식견부터 갖추려고 애쓰지. 하물며 위없는 보리를 단박에 깨달아 도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 감당할 수 있는 도량이 아니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 사자의 젖은 유리병에 저장하지 않으면 변한다네. 만근이나 되는 솥을 조각배에 실으면 배가 뒤집혀.”

주굉 선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스님들을 보면 참 걱정이야. 다들 지식과 말재주 늘리는 걸 공부인 줄 알아. 좀 재주가 있다 싶으면 아예 유생들처럼 문필(文筆)로 업을 삼지. 그건 메아리를 쫓고 그림자를 붙잡으려는 짓이야. 눈 밝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 밖에 못돼. 말이야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보다도 더 잘 하는데 그 행실을 보면 시골마을 아낙네만도 못해.”

스님의 타이름에도 제자는 물러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잠시 궁리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떤 덕행을 닦아야 합니까?”

“간략히 요약하면 열 가지가 있지. 첫째, 맑고 소박하게 살아야 해.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간의 욕망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야. 수행자에게 사치란 있을 수 없지. 둘째,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엄숙하고 바르게 해야 해. 부처님 가르침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 신(信)·구(口)·의(意) 3업(三業)에서 실현되어야만 해. 셋째, 스승을 존중해야 해. 부처님이나 연각이 아니고서는 스승 없이 깨달을 수 없어. 본이 있으면 따라 그리기가 쉽지. 그러니, 모범을 보이는 스승을 존경하고 훈계를 감사히 여겨야 해. 넷째, 어버이의 은혜를 잊으면 안 돼. 불법을 성취하는 것도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야. 절대 근본을 망각해서는 안 되지. 다섯째, 부모님 못지않게 큰 은혜를 베푸신 분이 임금님이야. 항상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에 보탬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여섯째, 받기만하고 베풀 줄 모르면 금수에 지나지 않아. 물이 아래로 흐르듯, 항상 자기보다 못한 이들을 어여삐 여기고 자비를 베풀어야 해. 일곱째, 자비도 자칫 잘못하면 애착으로 변질되어 버리지. 그러니 항상 세간의 욕망으로부터 초연한 자세를 취해야 해. 여덟째, 만사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해. 스스로를 구제하고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아홉째, 신중히 노력해도 뜻대로 성취되기란 어려워.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되지. 정말 부처님 가르침에 합당한 일이라면 어떤 고난도 감내하는 자세가 필요해. 열째, 수고롭기만 하고 애쓴 보람이 없다면 힘들어 포기하게 되겠지. 하지만 인과는 절대 헛되지 않아. 그러니 노력한 결과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잘 살펴 스스로를 더욱 격려해야 해. 땅이 기름져야 싹이 튼튼한 법이야. 이런 열 가지 행실을 부지런히 닦으면 덕이 갖추어져. 그러면 비로소 법을 감당할 만한 그릇이라 할 수 있지.”

젊은 제자는 주굉 선사의 가르침이 영 못마땅했다.

“스님, 그건 세간 사람들이나 지킬 덕목이 아닌가요?”

주굉 선사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보게, 사람노릇도 못하면서 어찌 부처가 될 수 있겠나? 세간에 이롭지 못한다면 그건 출세간법도 아니야.”

젊은 제자도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 불법에서는 한 티끌도 세우지 않습니다. 뭐가 있어야 고치고 바루고 하지요. 그런 열 가지 행실을 어디다 쓰겠습니까?”

주굉 선사가 눈썹을 치켜세웠다.

“오온(五蘊)에 얽매여 이리저리 분산하고, 사대(四大)에 겹겹이 갇혀 노심초사를 면치 못하면서, 왜 티끌이 없다 하는가?”

“사대가 본래 공(空)하고, 온온이 본래 존재하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주굉 선사가 지팡이로 젊은 제자를 냅다 후려갈겼다.

“너처럼 말만 배우는 놈들은 삼대나 좁쌀처럼 흔해 터졌다.”

젊은 스님이 벌겋게 달은 얼굴로 스승을 노려보았다.

“왜, 더 할 말이 남았느냐?”

불끈 주먹을 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주굉 선사가 깔깔대며 손가락질하였다.

“사대가 본래 공하고, 오온이 본래 없다더니, 저 놈 얼굴 좀 봐. 뭐, 한 티끌도 없다고? 야 이놈아, 입이나 닦고 거짓말해라. 그럼, 네 놈 얼굴에 범벅인 그 티끌들은 다 뭐냐?”

젊은 제자는 그제야 스님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쥐었던 주먹을 풀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이자 주굉 선사가 말씀을 이으셨다.

“조심해야 해.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돼. 자네가 제법 영리해 말은 척척 잘 한다만, 거 봐, 소용 있냐? 별것도 아닌 나의 한마디에도 분노와 번민에 덥석 사로잡히는데, 생사를 초월한 열반과 해탈이 너에게 가당키나 하겠냐? 명심해라, 염라대왕은 말 잘 한다고 봐주지 않아.”

제자는 무릎을 꿇고 사죄하였다. 그러자 주굉 선사가 웃으며 타이르셨다.

“그런 지혜는 아무 소용없어. 도리어 많으면 많을수록 장애만 되지. 그러니, 함부로 반야를 담론해 재앙과 허물을 스스로 초래하지 말게. 그게 다 헛된 명예욕에 사로잡혀서 하는 짓이야. 귀로 들은 걸 입으로 내뱉는 건 참 지혜가 아니야. 그저 처음 산문에 들어온 사람처럼 온 정성을 다해 아름다운 행실을 실천하고 또 실천하게나.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저절로 우러나는 것, 그것이 참 지혜야.”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65호 / 2014년 10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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