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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 상식과 불교계의 상식

기자명 명법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14.10.13 17:39
  • 수정 2014.11.15 15:47
  • 댓글 0

지난해 봄, 나는 ‘불교평론’에 ‘홈리스에서 템플리스로’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 후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한 모른 척 지나가는 사람도 늘었다. 비구스님 한 분을 제외하면 함께 살자고 하는 스님은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비구스님과 같은 거처에 머물 수 없기 때문에 그 호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제정된 승가청규에는 승려가 사가(私家)에 머무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지당한 내용이다. 승려라면 당연히 공동체생활을 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청규에 어긋나는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들 중 몇몇이 대학원에 진학하여 나의 강의를 듣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이 자취방이나 고시원, 또는 속가 가족들의 집, 말하자면 사가에 머물고 있다. 그들 역시 청규를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나도 그렇고,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도 공동체생활을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다. 내가 ‘불교평론’에 글을 싣기 전부터 이미 많은 승려들이 절 밖에서 떠돌고 있었다. 귀족적인 생활을 즐기면서 공동체생활을 거부하거나 또는 시방상주물인 사찰을 사유화하는 일부 승려들과 달리, 많은 승려들은 오갈 데가 없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10년 동안 승려 교육에 종사한 중견 스님들조차 머물 곳이 없을 만큼 사찰의 사유화는 심각하다.

이것은 많은 젊은 승려들에게 노후의 복지문제가 아니라 당장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아플 때 치료를 받아야 하는 현실의 문제이다. 제자들 중에는 서울에 머물 곳이 없어 휴학을 한 이들도 있고, 그야말로 두메산골 빈 절에 머물면서 서울까지 통학하는 제자들도 있다. 그들이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설사 학업을 마치더라도 그 후에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지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수행을 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알고서 누가 출가를 하겠는가? 이 현실을 외면한 채, 출가자 감소 대책을 세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존심을 접고 템플리스로 사는 나의 현실을 밝혔던 것은 이 상황이 당연한 것도 아니고 불쌍한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임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교계는 소리를 삼키는 하마처럼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무도 내가 처한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얼마 전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관리인이 “스님은 왜 절에 안 사세요?”라고 물어서 난처했던 일이 있었는데 불교계에서는 전혀 달랐다. 종단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사가에 사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어서 내 주소를 말해주기 곤란하다고 했을 때 그는 나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요즘, 그런 스님들이 많지 않나요?”

일반인에게 이해되지 않는 일이 불교계에서는 상식화된 것이 어디 그뿐이랴!

그토록 기다렸던 반응이 최근 종단의 고위직 승려로부터 나왔다. 많은 승려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러다간 5년 내에 종단이 해체될 것이라는 우려가 종단개혁 20주년을 기념하는 세미나장에서 토론되었다고 한다. 이 상황은 2년 전에도, 그 이전에도 종단이 해체될 수 있을 만큼 중대한 문제였다.

큰스님께서 조계종에 희망이 없다는 마지막 가르침을 주시고 종단을 떠나신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불교계는 아무 반응이 없다. 사찰의 사유화와 출가자 감소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악플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플”이라는 말처럼 스승의 사자후마저 삼켜버리는 불교계의 무감각이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미래의 징후들이다.

명법 스님 myeongbeop@gmail.com
 

[1265호 / 2014년 10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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