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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의미없는 글쓰기의 새삼스러운 의미

가을이라는 운동장의 한 가운데를 향해 시간도 공간도 함께 걸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야기이다. 중동지방에 무슨 단풍이 있겠는가. 내가 들어있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그릇 속에서 그 그릇의 모양을 이리저리 쓰고 그리고 두드리고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니 때로는 그릇을 확 분해해버리고 싶은 생각도 슬며시 꾸물거릴 때가 없지 않다.

율곡 이이 선생이 8세 때
임진강 화석정서 지은 시
단풍잎 가득한 정취 물씬
‘단이부단’의 경지 표출

분해한들 별 수 없다는 사실이 도사리고 있으니 목을 부풀린 코브라의 목치듯 확 쳐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저런 그런 생각들이 생각의 강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을 바라볼 뿐.
율곡선생이 8세 때 지었다고 하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시를 가을 운동장 속에서 새삼스럽게 읽어본다.

林亭秋已晩 (임정추이만)
騷客意無窮 (소객의무궁)
遠水連天碧 (원수연척벽)
霜葉向日紅 (상엽향일홍)
山吐孤輪月 (산토고륜월)
江含萬理風 (강함만리풍)
塞鴻何處去 (새홍하처거)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숲 속 정자에 가을이 깊어가니 / 시인의 이 생각 저 생각 끝이 없어라 / 멀리 흘러가는 강물은 하늘에 맞닿아 푸르르고 / 서리 맞은 단풍잎은 해를 향해 붉구나 /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놓고 / 강물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었네 / 변방의 기러기 어디로 가는가 / 울음소리가 저녁 구름 속에 끊기누나.

임진강 화석정(花石亭)에서 지은 시이다. 어느 강의시간에 소개를 했더니 나이 지긋하신 분께서 “에이 한 70된 분이 지은 시 인데요”하고 말씀하신다.

석양을 받으면서 빛을 뿜어내는 단풍은 시인의 가슴에 단풍빛 혈액이 휘돌아가게 한다. 발끝 손끝의 모세혈관과 장기의 미세 모세혈관까지 단풍빛 혈액이 공급되어 퍼지면 이제 시인은 단풍이 된다. 단풍은 시인이 되고 시인은 단풍이 되고. 석양이 지고 달이 뜬다. 어느새 스산해진 공간속에 산이 달을 낳았는지 토했는지 산이 달인지 달이 산인지 알 수 없다. 차라리 바람이 강물을 머금고 있다. 강물이 바람을 타고 산꼭대기로 뛰어올라가 달이 되어 번지점프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 속에 귓속을 기러기 울음소리가 채우면서 풍경안으로 들어온다. 시인은 구름 속으로 사라진 기러기 울음소리를 귓속의 귀로 여전히 듣고 있다. 끊어져도 끊어진 것이 아니다. 전문용어로는 단이부단(斷而不斷)이라고 한다. 시인은 기러기가 되어 울음소리를 내고 기러기는 시인이 되어 울음소리를 듣는다.

기러기 울음소리에 달빛이 스며든다. 달빛이 스며든 기러기 울음소리는 강물 속으로 헤엄쳐들어가 물고기의 지느러미를 간지럽힌다. 지느러미가 달빛이 된다. 그 달빛이 단풍 위로 미끌어지듯 떨어진다. 산은 말이 없다.

인간들이 말을 할 뿐이다. 감상이랍시고 글을 쓰기도 한다. 말은 말일 뿐이고 글은 글일뿐이다. 특히나 시의 감상은 더욱 그렇다. 한참 감상한다고 이 생각 저 생각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의미없는 생각굴림이다. 구르다가 구르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공일 뿐이다.

말하기와 글쓰기가 별로 의미가 없다는 걸 뻔하고 또 뻔하게 알면서 글은 왜 쓰는가. 핑계를 하나 만들었다. 의미가 없기 때문에 글을 쓴다. 글을 안쓰는 것에도 의미가 없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시의 감상문을 쓰다보면 시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내가 시를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 때문이다. 시에는 의미가 있는가는 묻지 않기로 한다. 물음 자체도 사실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66호 / 2014년 10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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