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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에 벌이 ‘막막’…남편 간병비 한숨만

  • 교계
  • 입력 2014.11.10 15:31
  • 수정 2014.11.1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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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화계사 이주민돕기 캠페인

▲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남편 사진을 바라보는 김현영 씨. 남편과 첫째 아이, 배 속의 둘째를 위해서는 하루 빨리 취직해야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8년 전 베트남에서 부산 반송으로 시집을 온 김현영(30, 레티 투이)씨는 임신 5개월이다. 하지만 매일 구인광고를 들여다보며 일자리를 찾는다. 혹시 일자리를 주는 곳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에서다. 얼마 전 몇 년 째 해오던 복지관 식당일을 그만 둬야 했다. 고된 주방 일에 한 달 60만 원의 월급도 감사했지만 기관 쪽에서 먼저 우려를 표했다. 점점 배가 불러가는 산모에게는 벅찬 일이라는 게 이유였다.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김현영씨
둘째 임신에 복지관식당 그만둬
척추장애 남편 상태 악화돼 입원
간병비 없어 월세방 쫓겨날 상황

하지만 당장 허리를 수술한 남편의 간병비가 필요했다. 입원 기간은 적어도 한 달, 회복 상태에 따라 더 길어질 수도 있다. 그것도 현영씨에게는 너무 낯설기만 한 인천에 병원이 있다.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차비도 없거니와 그보다는 애써 강한 척하지만 막상 남편을 만나면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현영씨의 남편 엄경소(47) 씨는 한국인이다. 다른 이주여성들처럼 베트남에서 주선을 받아 남편을 만났다. 다른 여성들과 차이가 있다면 현영씨의 남편은 지체2급의 선천적인 척추 장애인이라는 사실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허리가 휘어진 그를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이것이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비록 몸에 장애가 있지만 마음에는 장애가 없었다. 현영씨는 남편과 자주 대화를 나눈 덕에 누구보다 빨리 한국말을 익혔다. 고부갈등을 겪는 여느 한국의 가정과는 달랐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손을 잡고 집 앞 자그마한 절을 찾았다. 현영씨는 한국 사찰의 염불 소리가 고향의 염불처럼 정겨웠다. 시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을 땐 대신 절에 가기도 했다. 남편과도 절에 가고 싶지만 신체가 자유롭지 못한 그에게 산사의 좁은 길은 위험했다. 그래서 항상 정성을 다해 간절히 남편의 건강을 기원하는 것이 현영씨가 할 수 있는 기도의 전부였다.

행복은 가난 앞에서 휘청거렸다. 정부 지원만으로 네 식구의 살림이 유지되기는 너무도 빠듯했다. 그래서 현영씨는 첫 아이 현주를 낳자마자 직장을 구했고 잠시도 쉬지 않고 가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둘째가 생겼다. 기쁨도 잠시였다. 남편의 허리가 급격히 악화되더니 “척추후만증, 흉추부 결핵성 척추 후안증으로 하루라도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마비가 올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최근 남편은 통증이 너무 심해 밤새도록 허리를 주물러 줘야 겨우 잠이 들었고 고통 속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일도 예사였다. 하지만 수술비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액수였다. 현영씨의 근심어린 얼굴을 식당의 동료들이 먼저 알아봤다. 다행스럽게 일을 하던 복지관에서 1000만 원이 넘는 수술비를 전액 지원해주기로 결정했다. 현영씨의 성실한 모습이 보증이었다. 전문의가 있는 인천으로 병원을 옮겼다. 수술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간병비가 없었다. 임신한 몸으로 인천까지 가서 거동할 수 없는 남편을 간병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한 달 간 간병인을 쓰는 비용은 자그마치 240만 원. 어떻게 해서든 다시 직장을 구해서 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했지만 마음처럼 상황이 전개되지 않았다. 취업이 가능하다는 신발공장 앞까지 갔지만 입구에서부터 올라오는 쾌쾌한 냄새에 눈물로 발길을 돌렸다. 뱃속의 아기를 생각하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15평의 월세방을 뺄 생각을 굳혔다. 6살 박이 어린 첫 딸과 자신은 어떻게든 살 곳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시어머니는 그런 며느리의 심정을 안다는 듯 소리 없이 무료 요양원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해운대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이러한 사정이 알려져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현영씨는 이미 집을 나와 아이를 안고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생활비도 절박하지만 그 다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담담하게 현실을 설명하는 현영씨의 두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산부인과에서는 뱃속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되도록 울지 말라고 해요. 하지만 병실에서 외롭게 있을 남편을 생각하니 눈물이 계속 납니다.”

현영씨는 핸드폰의 남편 사진을 꺼내 보고서야 눈물을 그치고 미소를 지었다.

“제 남편입니다. 매일 하루 세 번씩 전화를 해요. 일어나서 한 번, 점심 식사 때 한 번, 그리고 잠들기 전에도 합니다. 신문사를 통해 간병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는 전화기를 붙들고 남편과 같이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요. 열심히 살겠습니다.”

현영씨의 얼굴에 다시 한가득 눈물이 맺혔다. 희망의 끈을 놓은 적이 없는 현영씨는 살포시 배에 한 손을 올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아가. 우리 아빠랑 언니랑 너랑 할머니 모두 다 같이 행복하게 살자. 알았지? 조금만 기다려 줄 수 있지?”

모금계좌 농협 032-01-183035 (주)법보신문사02)725-7014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269호 / 2014년 11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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