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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서 9년’ 상가락키따 스님

  • 수행
  • 입력 2014.11.10 16:46
  • 수정 2016.02.2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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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만 확고하면 언제 어디든 수행 가능”

▲ 9년 동안 미얀마 제방 선원에서 수행해온 상가락키따 스님은 “수행하기로 결심했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얀마 몰라먀잉 파욱또야 국제명상선원에 주석 중인 상가락키따 스님이 두 달 일정으로 최근 한국을 찾았다. 한국인으로 지난 9년 동안 미얀마 제방 선원에서 수행해 온 스님은 6년 동안 미얀마에서 온전히 수행에만 집중했다. 최근 3년 동안은 미얀마 몰라먀잉의 파욱또야 국제명상선원에 머물면서 연간 1~2회 한국을 오가긴 했지만 주된 주석처는 미얀마에 두고 있다.

개신교 따르다 진리 못찾아
인도여행 중 수행자와 인연
한국 돌아와 위빠사나 접해
보리수선원서 수행 중 출가
빤디따 스님에게서 비구계

6년간 미얀마서 오롯이 수행
“수행 결심하면 집중 노력뿐 ”

이번 한국에 머무는 기간 동안 천안 호두마을에서 수행하고 있는 스님이 10월30일~11월1일 3일간 부산 담마야나선원에서 수행자를 위한 특강을 펼쳤다. 선원장 아신 빤딧짜 스님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강의 마지막 날 선원에서 상가락키따 스님을 만났다. 작고 마른 체구였지만 눈빛이 성성했다.

▲ 상가락키따 스님이 부산 담야야나선원서 진행한 수행자 특강.

‘왜 출가했는가’라는 질문에 스님은 진리를 갈구했던 20대 청년을 떠올렸다. 그 청년은 개신교를 믿었지만 진리를 찾지 못했고 장기간 인도 여행을 하던 중 한 수행자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에 돌아와 책으로 위빠사나를 먼저 접했다. 본격적인 수행은 보리수선원에서다. 2년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비슷한 나이의 한 테라와다 스님이 법문하는 모습을 보고 감화를 얻어 출가를 결심했다. 당장 미얀마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1년 동안 단칸방에서 홀로 오후불식 등 여덟 가지 계율을 철저히 지키며 생활했다. 출가의 삶을 스스로 익히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 후 주위의 권유로 미얀마 빤디따라마를 찾아가 빤디따 사야도로부터 2005년 비구계를 받고 ‘상가락키따’라는 법명을 받았다. 한국 수행자들은 비구계를 받으면 한국에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스님에게는 계를 받는 것이 곧 수행의 시작이었다.

“미얀마에서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선원에서 정진만 하는 경우는 자국의 스님조차 흔치 않습니다. 수행보다는 지도자 코스를 밟아서 선원의 지도법사가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지요.”

스님은 비구의 삶에 완전히 익숙해지기 위해 1년간 하루 2시간씩 자면서 미얀마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미얀마어가 익숙해질수록 수행의 진전도 빨랐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었다. 미얀마어가 익숙해 질 즈음 수행 장소를 옮겼다. 큰 사원은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다. 주로 시골의 작은 사원에 머물렀고 사람이 없는 숲속에서 수행할 때도 많았다.

“큰 선원에 있으면 상대적으로 보시가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탁발의 필요성이 줄어들 경우 스스로 계율을 지키기 힘들다고 판단했어요. 언어를 익힌 덕분에 미얀마 제방 선원에서 두루 공부할 기회가 생겼고 매일 수행과 탁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그 기간이 공부에 큰 힘이 됐다”고 했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수행이 어느 정도 진전이 있고난 뒤에는 수행과 교학의 일치를 확인하기 위해 1년 6개월간 경학도 공부했다. 경학에 밝은 스승이 지도하는 신규 강원이었는데 나중에는 사미스님들을 위한 교리 지도를 맡기도 했다. 그런데 경학과 수행의 두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다보니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강원을 떠나 찾아간 곳이 현재 머물고 있는 몰라먀잉의 파욱또야선원이다. 이곳에서 파욱 사야도의 점검을 받으며 수행에 다시 전념할 수 있었다.

파욱선원에서 스님은 한 가지 개념을 분명하게 세웠다. 모든 존재가 지닌 근기가 다르듯이 하나의 수행 틀에 모든 사람을 맞출 수 없다는 것이다. 파욱 선원은 사마타가 선행되는 위빠사나를 지도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마하시 계열의 선원에서는 초심자도 위빠사나를 바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선원에서 무조건 수행만 익힌 경우 각각의 수행처마다 지도 방법이 다른 부분에 대해 큰 혼란을 경험할 우려가 있습니다. 위빠사나 역시 사람에 따라, 조건과 환경에 따라 지도 방법에 차이가 있어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다른 데 어떻게 획일적인 수행법으로 지도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파욱 센터에 있다고 해서 그곳의 가르침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터뷰를 통해 수행자의 근기를 확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 같은 스님의 지도에 따라 수행을 해 온 불자들도 있었다. 대전에 살고 있는 이들은 스님이 한국에 올 때마다 점검을 받는다. 다만 스님은 “아직 선원을 운영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미얀마에 더 머물면서 수행하고 싶다”는 것이 스님의 바람이었다. 스님은 아신 빤딧짜 스님과의 각별한 인연도 언급했다.

“아신 빤딧짜 스님은 출가 전부터 격려해 주신 분입니다. 미얀마에 머물 때 양곤에 갈 일이 생기면 항상 스님이 운영하는 양곤의 선원인 산먀디따에서 머물렀습니다. 무엇보다 아신 빤딧짜 스님은 수행자에 따라 지도 방법을 달리 해야 된다는 개인적인 소견에 뜻을 함께해주고 격려를 보내줍니다. 그러한 점들이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됩니다.”

‘한국 수행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스님은 “수행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든 할 수 있다. 수행하기로 결심했다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집중해야 공부가 향상된다”고 지적했다. 쉽고 간편하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경책이었다. “항상 승단의 형제들과 한국의 수행자들에게 자애를 보낼 것”이라고 말한 스님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애경’을 읊었다.

1시간30여분 인터뷰가 끝난 뒤, 스님은 곧이어 2시간이 넘는 특강을 소화했다. 강의 내내 법당에는 활기가 넘쳤다. “기차 시간이 다가와서 더 지체할 수 없다”는 스님을 향해 담마야나 선원 수행자들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사두(덕높은 스승)’를 읊조리며 존경을 표했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269호 / 2014년 11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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