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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맹목의 어둠

흔히 ‘맹목적’이란 말을 쓴다. 맹목이란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이성을 잃어 적절한 분별이나 판단을 못함’, 혹은 ‘주관이나 원칙이 없이 덮어놓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어떤 것을 추종하는 상태를 말한다고 하겠다.

띠끌로 탐욕 물들면
내 자신 역시 파괴돼
탐진치 잘 헤아리면
맹목적 어둠 벗어나

우리는 어떤 사람이 권위를 지닌 사람의 말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경우를 본다. 이는 아마도 우리들이 지닌 속성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맹목적 복종’은 상식적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비도덕적이고 잔인한 일들을 서슴없이 하게 한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어떤 특정 집단이나 권력자의 이익을 위해 구성원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담당한다. 예를 들면 자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군인의 입장에서 어떤 이유로 자국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은 국가의 이익이란 미명하에, 혹은 최고 권력자의 이익이나 보호를 위해 자행되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어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 때 명령이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정말이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이렇듯 맹목적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에 대한 가르침이 ‘이띠붓따까’라는 경전에 나온다. 그 대략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탐욕스러운 자는 유익을 알지 못하고 탐욕스러운 자는 진리를 보지 못하고, 탐욕이 사람을 정복하면 맹목의 어둠이 생겨난다. … 성냄이 사람을 정복하면 맹목의 어둠이 생겨난다. … 어리석음이 사람을 정복하면 맹목의 어둠이 생겨난다.”(Itivuttaka, Antaramala sutta 중에서)

탐욕스러운 자와 마찬가지로, 성내는 자와 어리석은 자 역시 유익을 알지 못하고 진리를 보지 못한다고 경전에서는 설하고 있다. 여기서 맹목은 빨리어 안다(andha)의 번역이다. andha는 ‘맹목적, 눈이 먼, 어리석은’이란 의미이다. 그리고 빨리어 표현에서 ‘맹목의 어둠’은 ‘깊은 어둠’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그것은 ‘어리석음 때문에 눈이 가리어진 상태’를 의미한다.

경전에서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중 어느 하나에 의해 정복되게 되면 맹목의 어둠이 생겨난다고 설하고 있다. 이들 세 가지는 마음을 교란시키고, 그 세 가지에서 생겨나는 두려움을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각각을 ‘티끌’이나 ‘살해자’와 같은 표현으로 설명하신다.

티끌이 쌓이면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못하고 흐릿하게 보이거나 전혀 다른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취해서는 안 될 것을 취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티끌에 덮여 탐욕에 물들게 되면 그 결과 탐욕에 의해 내 자신이 파괴된다. 성냄과 어리석음에 의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부처님께서는 ‘살해자’란 표현을 쓰신 것이다. 내가 탐하는 것이고, 내가 성낸 것이고, 내가 어리석은 것이지만, 그 결과는 내 자신의 파괴이다.

결국 우리는 나 자신이 이로운 것이라고 선택하고 그것을 행동하지만, 그 결과는 실제 반대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의해 선택된 것은 결코 이로움의 방향이 아닌 해로움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로움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다만 맹목의 어둠에 갇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부처님은 탐진치가 자신을 정복하지 못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야만 맹목의 어둠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70호 / 2014년 11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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