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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왕후 전에 참배를 드리며

기자명 퇴휴 스님

요즘 거의 매일 서울 공릉동에 위치한 태릉을 찾아 합장하고 경전을 독송한다. 태릉은 조선 중종 왕비이자 명종의 모후인 문정왕후(1501~ 1565)의 능이다. 내가 주석하는 법장사 인근이고, 태릉 국가대표선수촌 법당 소임도 맡고 있어 수시로 찾고 있다. 수년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지만 그러질 못했다. 항상 태릉을 지날 때면 갚아야 할 빚을 갚지 못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피해만 다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제라도 한국불교가 진 빚을 갚아야 된다는 생각에 거의 매일 찾고 있다.

그동안 그 흔한 추모제나 천도재 한 번 행해주지 못한 무심함이 송구하다. 문정왕후 앞에 합장하고 반야심경과 아미타불을 염하면 만감이 교차한다.

문정왕후는 조선의 척불정책에 의해 숨이 넘어갈 절체절명의 시기에 불교를 부흥시키고 회생시킨 분이다. 아마도 한국불교 역사상 재가자로서 가장 크게 기여한 분이라 해도 지나친 평가는 아닐 것이다. 조선은 건국을 위해 고려를 극복해야 했다. 그래서 불교세력과 사원경제를 붕괴시키기 위한 척불정책으로 일관하였다. 태종은 고려 이래 11종을 7종으로 페합하고, 세종은 이를 다시 종파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통치의 필요성에 의해 선교 양종으로 통폐합했다.

세조대에 잠시 부흥의 기운이 일기도 했지만, 성종대에 사림파의 강력한 억불책에 도첩제가 폐지되고 출가가 금지되면서 스님 수가 급감했다. 연산군은 명목상이나마 유지되고 있던 선교 양종을 폐지했다. 중종은 승과를 완전 폐지하고 원각사 등을 헐어 민가에 분배하고 심지어 불상을 파괴해 무기를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조선 초중기의 억불시기가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주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조선왕조실록에 보이는 문정왕후에 대한 평가는 야박하다. 고루한 남성 중심의 유학자들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바 아니지만 유생이나 사관들의 평가가 공정하지 못하다.그럼에도 문정왕후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같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문정왕후는 자애롭고 지혜로우며 예의가 바르고 단정한 분으로 평가돼 있기도 하다.

문정왕후는 조선의 숭유척불 정책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허응당 보우(1509~1565)대사를 발탁해 불교중흥의 시대적 소임을 굳건하게 추진했다. 그의 결단과 지원 속에 도첩제를 재시행하고, 선교양종의 교단을 부활하고, 승과제도를 다시 시행했다. 이 당시 전 조정의 신료들이 호불책에 대하여 반대하고 성균관 유생들이 동맹휴학을 하는 극렬한 반대에도 흔들림이 없이 불교중흥정책을 펼쳐 나갔다. 명종 5년 영의정인 상진에게 양종의 복립과 승과제도의 재시행 그리고 도첩제를 실시하라는 비망록을 내리자 6개월 동안 조정과 유생, 성균관 생원들은 명을 환수하라는 상소가 조선실록에 기록된 것만 무려 423소나 되고, 역적 보우를 죽이라는 계가 75계나 된다.

문정왕후의 후원에 의해 부활된 승과제도가 3년마다 총 5회 시행되었다. 이 승과에 의해 배출된 지도자가 서산대사, 사명대사, 부휴선사 등이다. 이들과 법손들이 조선불교를 이끌게 된다. 또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조선의 가장 큰 시련 속에서 조선을 구한 의승군과 지도자로서 혁혁한 역할을 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박해를 받은 조선조의 불교가 유학자들이 망가뜨린 국가를 구하고 백성을 도탄에서 구하는 역할을 행했던 것이다. 하지만 불교를 보호하라는 간곡한 유언에도 문정왕후가 승하하자 허응당 보우대사를 제주로 유배시키고 이내 살해했다. 또한 선교양종과 도첩제 그리고 승과제도가 모두 폐지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문정왕후 태릉 앞에 두 손 모아 합장하고 반야심경 독송하며 왕생극락을 축원드린다.

퇴휴 스님 toehyu@hanmail.net

[1271호 / 2014년 11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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