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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남발, 짜증난다

우리는 구호를 필요 이상으로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월드컵 경기만 해도 그렇다. 이 기간 중에 외국에서 많은 손님들이 오니 어찌어찌 해야 한다는 등의 구호가 여기저기에 나돈다. 거리의 교통질서를 잘 지키자는데 누가 뭐랄 사람이 있겠는가마는 그 이유가 외국 손님들이 오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보다 더 합리적이고 근거 있는 이유로 국민들이 왜 기초 질서를 지켜야 하는지를 말해야 한다. 질서는 누구를 위해라기보다는 그 속에 사는 구성원들의 편리와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외국 손님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외국을 운운해야지만 설득력이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외국에 가 보았더니만 이러하던데 우리는 ‘이게 뭐냐’는 식의 발상은 우리 자신을 너무 비참하게 만든다. 국민들의 의식 수준이 낮았을 때는 그것도 하나의 방편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시청 앞 광장에 자주 붙는 구호들은 늘 우리를 실망시킨다. 월드컵이 열리는 날이 며칠 남았다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일을 준비하는 당사자들이 저마다 차근차근 준비하면 되는 일이지 서울 시민들이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듯한 인상을 주어 뭐하겠다는 것인가.

국제적인 운동경기를 서울에 유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을 유치함으로 해서 다른 지방의 손님들이 찾아오고 우리 서울의 좋은 점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다. 더구나 축구 팬들에게는 그런 국제적인 경기를 자기 고장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은 말 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경제사정이다. 이 경기를 유치하기 위해여 우리가 들이는 비용과 이 월드컵 경기를 통해서 우리가 얻어내는 수익을 비교해서 타산이 맞아야 한다. 비용은 우리나라 내지는 서울시민이 부담하고, 이익은 남의 나라든가 다른 도시가 가져간다면 서울 사람들은 딱하기 그지없다. 우리가 관심을 갖어야 할 것은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잔치 치루다 집안 살림이 거덜나서야 될 말인가?

더구나 월드컵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시민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럴듯한 구호를 앞세워 국민들의 이성을 마비시켜서는 더더욱 안 된다. 나라살림살이가 어려움에 치닫는데 운동경기에 정신을 팔아서도 또 팔려서도 안 된다. 기초 질서를 잘 지켜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므로 월드컵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민 모두가 잘 지켜야 한다. 월드컵이 끝나더라도 설득력이 있는 그런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서 그것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해가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구호성 발언들은 없어야 할 것이다.

더구나 금년은 대통령을 뽑는 중대한 일을 앞두고 있다. 지난 우리들의 선거를 돌아보면 구호를 부르짖으면서 나다니는 정치인들이 적잖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얼마나 허망하고 실속이 없었던 것 인줄은 이미 체험했다. 구호란 사람들의 감정이나 혈기에 의존하는 것으로 냉정한 이성으로 살펴보면 덧없는 것이다. 백성들이 어리석었을 때에는 통할지 모르나 지금은 이미 속을 대로 속아온 백성이다. 세상은 바뀌었고 백성들의 생각은 저만치 앞서가 있는데 구태의연한 구호로 국제적인 경기를 치루려 해서는 안 된다.

실속 없는 구호보다는 차라리 월드컵 경기를 찾아온 외국인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얻고 그들에게 무엇을 가져가게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기획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템플스테이’를 실시하는 불교계의 계획은 실속 있고 명분이 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전통적인 사찰의 생활을 경험하게 하는 이 계획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구호보다는 이런 구체적인 일들이 우리에게는 더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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