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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승장(僧藏) 스님의 낮은 자리

기자명 성재헌

승장, 자기 낮춘 보살행으로 대중 수행 견인

▲ 일러스트=이승윤

스승은 존경의 대상이다. 불가(佛家)의 스승들은 대중의 존경을 받을 때, 혹시 명예욕에 끌리지나 않을까 항상 조심하였다. 그래서 머리를 들기보단 도리어 머리를 숙였고, 우러르는 대중의 눈빛을 감상하기보단 도리어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존경받을만한 덕을 과연 내가 갖추었을까?”

그 옛날 온릉(溫陵)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힘들여 농사지은 곡식을 편안히 앉아서 받아먹고, 허리를 굽히며 올리는 절을 뻣뻣하게 서서 받네. 스스로 또 남에게 유익한 덕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해로움이 적지 않으리라.”

돌아가신 성철 큰스님께서는 “속이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하셨다고 한다. 온갖 번뇌를 타파한 지혜를 안으로 갖추지 못하고, 타인을 이롭게 할 덕행을 밖으로 갖추지 못했다면 수많은 군중의 찬양을 받은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런 명성은 잠시 후 휴지통에 버려질 화려한 포장지이고, 그런 명성을 즐기는 자는 속빈 강정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수행이 깊을수록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며 돌아보고 또 돌아보았나 보다.

송나라 때 서하(西河) 출신의 승장(僧藏) 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어린 나이에 출가한 스님은 계율을 철저히 지키며 훌륭한 선배들을 따라 제방을 편력하였다. 스님은 어디를 가건 대중의 끝자리에 앉았다. 세월이 흘러 구참(舊參) 대접을 받기 충분한 이력에도 그는 굳이 끝자리를 청하였다.

“저는 아둔한 사람입니다. 훌륭한 대중들께서 동참을 허락해주신 것만도 감지덕지입니다.”

한없이 자신을 낮춘 승장 스님은 새벽이면 가장 먼저 일어나 불단과 승방을 청소하였고, 한밤에 마지막 촛불을 끄는 일도 그의 차지였다. 아침저녁으로 전각을 돌며 부처님과 보살님 한분 한분께 예배하고, 길을 가다 멀찍이 절이나 사당이 보이면 땅바닥에 엎드려 삼배를 올렸다. 그리고 스님을 만나면 선배이건 후배이건 온 정성을 다해 절을 올렸다. 예의가 지나치다 싶어 주변사람들이 타박하면 이렇게 대답하였다.

“저보다 훌륭하신 분들입니다.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스님은 늘 말이 없었다. 법회에서 방장스님께 질문하는 법도 없고, 도반들과의 법담에서도 가만히 귀만 기울일 뿐이었다. 어쩌다 도반들이 화두에 대한 의견을 물어도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저는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지혜와 언설이 빼어난 이들 틈에서 그는 모자란 사람 취급을 당하였다. 그래서 운력이 있는 날이면 온갖 허드렛일이 그의 차지로 돌아갔다.

“승장 스님, 물 좀 길어오세요.”

“승장 스님, 마당 좀 쓰세요.”

온갖 구박과 질책에도 스님은 종처럼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자 대중들 사이에서 승장 스님에 대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나그네스님이 승방에 들었는데, 그 차림새가 궁색하기 그지없었다. 다 떨어진 가사 장삼에 얼마나 씻지 않았는지 시궁창냄새가 온 방에 진동하였다. 승방의 대중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돌리며 투덜거렸다.

“거지가 따로 없군.”

머리까지 텁수룩한 나그네스님을 반긴 이는 단 한 사람뿐이었다. 대중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멋쩍어하는 나그네스님 앞으로 승장 스님이 다가갔다. 그는 정중히 삼배를 올리고 그의 낡은 바랑을 들어주며 침상으로 안내하였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손수 목욕물을 준비하고 자신의 옷을 내놓았다.

“낡은 옷이지만 우선 사용하십시오.”

그날 밤, 승장 스님은 대중이 잠든 틈을 이용해 나그네스님의 옷을 몰래 빨아두었다. 다음날 아침, 침상에 곱게 개어져있는 깨끗한 옷을 보고 나그네스님이 대중에게 물었다.

“친절하게 저의 옷까지 빨아주신 분이 누굽니까?”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 돌아볼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나그네스님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 절에 보살이 계셨군요. 보살님, 하룻밤 잘 머물고 갑니다.”

대중은 승장 스님이 한 일임을 눈치 챘다. 그러고 보니, 그간 이상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중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지난번 운력 때 나무를 하다가 옷의 이음새가 터진 일이 있었어. 바느질이 귀찮아 내버려뒀었지. 헌데 나중에 보니 누가 꼼꼼하게 바느질을 해놨더군. 혹시 그것도 승장 스님이 그런 것 아닐까?”

“난 지난 3개월 동안 신발을 닦은 적이 한 번도 없어. 아침에 보면 항상 깨끗하더라고.”

“그러고 보니, 요즘 승방청소를 한 적이 없네. 승장 스님이 몰래 청소한 것 아냐?”

대중의 추궁에 승장 스님은 손사래를 쳤다.

“어휴, 저는 그런 일 없습니다.”

대중들은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승장 스님의 행동을 엿보기 시작했다. 눈여겨보니 승장 스님은 일을 할 때건 참선을 할 때건 속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 뭘 그리 중얼거립니까?”

그러자 승장 스님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대답하였다.

“염불하는 겁니다. 저는 둔한 사람입니다. 경전의 말씀도 선사들의 화두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저 ‘나무아미타불’ 하면서 모든 생명들이 고통에서 훌쩍 벗어나 아미타부처님의 청정한 국토에 태어나길 발원하는 겁니다.”

또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방선시간에 몰래 숲으로 들어가는 승장 스님을 따라가 보았다. 풀숲 연못가에 다다른 승장 스님은 훌러덩 옷을 벗고 연못가에 드러누웠다. 더우면 물속에 덤벙 들어가야 할 텐데, 반만 담그고 미동도 없었다. 이상한 행동거지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가가 보았다. 깜짝 놀랐다. 하체에 거머리가 더덕더덕하고 상체에는 모기며 파리가 빼곡히 붙어 피를 빨고 있었다.

“스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인기척에 놀라 눈을 뜬 승장 스님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는 지은 공덕이 없습니다. 이런 보시나마 하지 않는다면 죽어서 무슨 면목으로 염라대왕을 뵙겠습니까.”

소문은 금방 퍼졌다. 그날 이후, 온 대중이 승장 스님을 볼 때마다 절을 올리며 존경을 표하였다. 하지만 승장 스님은 그럴 때마다 큰 어른이라도 만난 듯 얼른 허리를 숙이고 자리를 피하였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 승장 스님은 가장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대중에게 이별을 고하였다.

“여러 불보살님께서 꽃을 뿌리며 저를 맞이하러 오셨습니다.”

승장 스님은 서쪽을 향해 합장한 채로 편안히 돌아가셨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72호 / 2014년 1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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