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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이 바로서야 사회도 산다

기자명 명법 스님

얼마 전 대학입시가 치려졌다. 해마다 있는 일이지만 최근 들어 대학입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재작년부터 시작한 대학수험생을 위한 마음학교 때문이다.

교육특구에 있는 사찰에서 한동안 종단소임을 살면서 청소년을 위해 불교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색한 끝에 ‘푸른솔 공부방’, ‘아빠와 함께 하는 사찰요리’, ‘청소년 국제봉사단’ 등을 만들었으나 소임을 놓으면서 그것들도 함께 없어졌다. 그 때 몇몇 분들에게 대입수험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주겠다고 한 말빚이 있어 그해 겨울 마음학교를 만들었다. 수험생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겠노라고 시작한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그 때 미래의 희망이 더 절실했던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아이들이 나의 희망이 되어주지 않았다면 그 어려운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지….

몇몇 학부모들의 호응으로 시작했지만 해마다 마음학교 참가자를 모으는 일은 쉽지 않았다. 큰 사찰이나 종단의 지원 없이 일개 비구니가 하는 일이라 관심 갖는 사람도 없지만 부모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불안과 초조, 기다림, 그들의 표현대로 ‘잉여’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12년 동안 공부에 넌덜이가 난 아이들은 노는 것 말고 다른 일은 하려고 들지 않았다. 모두 수능을 망쳐서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고 했다.

해마다 몇 십만 명이 대학에 들어가지만 수능고사를 잘 보았다는 수험생은 별로 없다. 시험제도의 문제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평소에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은 평소처럼 수능을 못 보았을 것이고 평소에 잘 했지만 긴장해서 시험을 망친 수험생도 있을 것이다. 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자신에겐 후한 점수를 주기 때문에 막상 시험을 잘 본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입시는 항상 말도 많고 탈도 많다.

그런데 올해는 시험을 너무 잘 봐서 문제라고 한다. “물수능”이라고 할 만큼 변별력이 없어져 더 혼란스럽다고 한다. 한 문항이라도 실수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어 진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올해 마음학교 지원자는 1명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마음학교 일정을 취소하고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아이들이 겪을 혼란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마음학교 출신 중에는 대학에 합격한 아이들도 있지만 재수, 삼수를 하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에게 자신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기회로 삼아보라고 격려하지만 잘못된 학교교육과 입시제도 때문에 아이들이 받는 상처와 문제는 겉보기보다 심각하다. 억압된 폭력성이 불쑥 튀어나와 자신도 놀라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끝 모를 자괴감 때문에 자살을 선택하는 아이도 있다. 대학생이 된 학생들에게도 혼란스러움은 마찬가지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한 학교에 만족하지 못해 재수나 반수를 하는 아이들이 많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그들에게 희망을 말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노력해도 작은 실수 하나로 적게는 일 년, 많게는 평생 실패자가 되는 이 사회에서 무슨 원칙을 말할 수 있으랴! 세상으로 나오는 첫 관문부터 패배자가 된 그들에게 대학입시는 이렇게 가르친다. “인생은 운”이라고. 실력보다 운이 중요하고, 노력보다 줄서기가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엉망이 된 입시 제도를 책임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교사도 출제자도 감독관도 교육당국도 그저 한해 수능이 지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는지, 우리사회를 좀먹는 타성과 무사안일은 ‘세월호’ 사건을 겪고서도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그동안 불교계의 사회참여가 미미했지만, 그것도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치우쳐 있었다. 시민의 고통을 함께 하겠다면 보이지 않는 고통까지 살펴야 한다. 청년실업과 대학입시로 아파하는 청춘들의 고통은 이 사회의 근본에 가로놓인 문제이다. 한부모가정, 다문화가정, 노인, 사회적 약자 등 사회적 변화에 가장 먼저 피해를 받는 계층에 대한 불교계의 관심이 절실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이 서고 노력한 자가 대우받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불교계 내부부터 바로잡아가지 않는다면 사회참여 또한 공염불로 그칠 것이다.

명법 스님 myeongbeop@gmail.com

[1273호 / 2014년 1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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