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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차암(此庵) 스님의 예언

기자명 성재헌

스승 가르침 따라 낡고 늙은 옛 절 택하다

▲ 일러스트=이승윤

세상에 뜻밖의 일이란 없다. 무릇 세간사란 인연법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가 그렇듯 미래 또한 그렇다. 하지만 인연의 씨줄과 날줄로 복잡하게 짜인 삶의 문양을 한눈에 통찰할 안목은 흔치 않다. 불가의 서적들을 읽다보면 스승이 제자에게 예언하는 장면이 간간이 나온다. 그저 신비한 일로 치부할 것만은 아니다. 보통 사람에겐 도무지 알 수 없는 사건도 안목을 갖춘 스승의 눈엔 지극히 당연한 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송나라 때 태주(台州) 황암(黃巖) 출신의 혹암 사체(或庵師體) 선사라는 분이 계셨다. 타고난 성품이 호방하고 소탈했던 스님은 무슨 일이건 앞장을 서고 만사에 머뭇거림이 없었다. 말도 행동도 항상 앞섰던 그를 도반들은 ‘정신없이 바쁜 사체’라 불렀다. 말도 잘하고 일도 잘했던 사체가 호국사(護國寺)로 차암 경원(此菴景元) 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일이다.

도반들과 함께 법당에서 절을 올리고 난 후, 늘 그랬듯 사체가 앞으로 나섰다. 빳빳하게 다림질한 승복으로 웅장한 몸짓을 더하면서 굳이 다시 절을 올리는 것을 보고 차암 스님이 웃었다.

“흉내 한번 멋들어지구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체가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여쭙겠습니다.~”

“여쭐 것 없네. 들어보지 않아도 뭔 소리를 할지 뻔해.”

고개를 돌리고 일어서는 차암 스님을 향해 사체가 말하였다.

“방거사(龐居君)가 깨닫고 나서 마조(馬祖) 스님께 이런 게송을 올렸다고 들었습니다.”

목소리에 힘을 더하는 사체를 돌아보고, 차암 스님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래, 노래 연습은 또 얼마나 했는지 한번 보자.”

사체가 구성진 가락으로 방거사의 게송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시방 중생 한자리에 모여 모두가 무위법을 배우네 여기가 바로 선불장이니~”

세 구절을 노래하고 마지막 구절 앞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는 순간, 차암 스님이 대뜸 할을 하였다. 벼락같은 고함소리에 놀라 사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러자 차암 스님이 손가락질하며 깔깔댔다.

“저럴 줄 알았다. 백날 천 날 노래한들 앵무새가 어찌 말뜻을 알겠냐. 마지막 구절은 입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요놈아.”

우아한 몸짓과 박학한 식견을 자랑하며 곳곳을 돌아다니던 사체는 크게 뉘우친 바가 있었다. 사체는 호국사에 바랑을 풀었다. 그리고 ‘마음 비워야 급제하리라’는 마지막 구절을 마음에 새기며 자나 깨나 참구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마당을 쓸고는 빗자루를 제자리에 두려고 창고로 향하던 참이었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줄줄이 늘어선 행자들 앞에서 원주가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행자님들, 똑바로 못합니까?”

자신도 겪고 또 흔히 보았던 풍경에 사체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근처의 나한전에 조용히 앉아 ‘마음 비워야 급제하리라’는 구절을 떠올리던 참이었다. 그때 행자가 얻어맞기라도 했는지, 창고 아래에서 “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사체는 방거사 게송의 마지막 구절을 훤히 깨쳤다. 사체는 곧바로 차암 스님께 달려가 자신이 깨달은 바를 조심조심 말씀드렸다. 그러자 차암 스님이 환하게 웃으며 그를 격려하였다.

“이 막둥이가 된통 열병을 앓더니, 이제야 한바탕 땀을 흘렸구나!”

사체는 차암 스님 회하에서 지객(知客) 소임을 살고, 도전(塗田)의 화주를 맡으면서 수행의 깊이를 더하였다. 열반하시던 날, 차암 스님이 사체에게 당부하셨다.

“훗날 노수(老壽)를 만나거든 머물거라.”

스승이 열반하시자 사체는 자취를 숨기고 천태산 대중 틈에 끼어 살았다. 하지만 주머니 속 송곳은 삐져나오기 마련이었다. 그의 도덕은 곧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승상 전공(錢公)이 그의 사람됨을 흠모해 천봉사(天封寺)의 주지로 청하였다. 스님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저는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 파는 짓은 못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마 후, 선문에 명성이 자자하던 할당 혜원(轄堂慧院) 선사가 천태산 국청사(國淸寺)에 머물게 되었다. 절을 둘러보던 할당 선사의 발길이 최근에 그린 관음보살의 화상 앞에서 멈췄다. 화상 귀퉁이에 이런 찬(贊)이 쓰여 있었다.

본분에서 의지하지 않고 중생들 골치나 아프게 하건만

쳐다보고 또 우러러보니 다들 눈 뜬 봉사구나

장안의 바람과 달빛이 고금에 여전한데

어떤 사내가 더듬더듬 소경행세를 하랴

할당 선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건 누가 쓴 건가?”

“차암 스님의 제자 사체가 쓴 것입니다. 근래 그가 이곳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할당 스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였다.

“차암(此庵) 노스님에게 이런 제자가 있는 줄 몰랐구나.”

그 후 할당 선사는 강심(江心)의 초산사(焦山寺)에서 사체를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고 곧바로 의기투합하였다. 할당 선사는 건도(乾道) 초년에 호구산(虎丘山)의 주지가 되자 제일 먼저 사체를 불러 수좌로 삼았고, 사체 또한 거절하지 않았다.

이후 사체 스님의 명성이 제방에 자자하였고, 여기저기서 법석을 청하였다. 하지만 스님은 한사코 거절하였다. 그러다 소주(蘇州)의 각보사(覺報寺)에서 주지로 청하자 두말없이 수락하였다. 주위 사람들이 물었다. “각보사는 볼품없는 절입니다. 수백 명이 머무는 거대한 사찰의 주지 자리도 거절하더니, 뭐 하러 그런 작은 절로 가십니까?”

그러자 사체 스님이 말하였다.

“돌아가신 스승께서 저에게 ‘노수(老壽)를 만나거든 머물라’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각보사의 옛 이름이 노수암(老壽庵)이더군요. 스승의 예언이 맞아떨어진 걸 보면 저와 인연이 깊은 게 분명합니다.”

그렇게 각보사에서 개당한 혹암 사체(或庵師體) 선사는 첫 번째 향을 차암 경원(此菴景元) 선사께 올렸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73호 / 2014년 1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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