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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은 우리들 자신의 과제

기자명 명법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14.12.22 12:09
  • 수정 2014.12.23 11:55
  • 댓글 0

새천년이 시작된 지 15년이 흘렀다. ‘새천년’이라는 거대한 시간 개념은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숭고한 느낌을 갖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15년 전 사람들은 마치 그 순간을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새천년의 시작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동해로 몰려갔었다. 나 역시 당시 머물렀던 사찰에서 대중스님들과 함께 그 장엄한 순간을 기념하고자 가지산을 올랐던 기억이 새롭다.

프랑스 정치학자이며 미학자인 랑시에르가 지적하듯이, 2000년 1월1일을 새 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것은 ‘시간은 시간 이상의 것’이며 새로움과 삶을 생산하는 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들이 그토록 기념하고 그토록 의미를 부여했던 ‘새로운’ 시간으로 인하여 우리들의 삶에 어떤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 같지는 않다. 단 한 가지, 그 이후로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동해로 달려간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말이다. 결국 ‘새천년’이라는 기념비적인 시간의 본질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새천년이 도래한 후, 그것은 해마다 반복되는 이벤트로 쉽게 전락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일상화된 새해를 맞이한다. 2015년 1월1일이 되면 15년 전처럼 동해로 달려가기도 하고 새로운 계획도 세우겠지만 그 때만큼 새로움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주리라는 낭만적인 기대를 거둔지 오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며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고 하여 새로움에 대한 기대를 떨치지 못하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척박하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적 징후를 보여주었다. 1970년대 이후로 계속해서 성장해왔던 경제적 동력이 한계에 도달했고, 사회 각 분야에 누적된 모순들이 사회 전체의 기초를 무너뜨릴 정도로 위협적인 것이 되었다. 이 모든 위기적 징후는 ‘세월호 사건’으로 집약되어 표출되었다.

이 현실은 쉽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새해에 거는 우리의 기대는 단지 내년 경제지표가 조금이나마 좋아져서 직장을 계속 유지하고,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안전하며, 전세 값이 더 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 숱한 장밋빛 기대를 경험하면서 우리들은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었기 때문에 단숨에 모든 것이 바뀌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불교계 현실 역시 부정적이다. 불교계의 원대한 발전이나 이상은 차치하고 당장 사찰과 종단의 존폐를 걱정하는 상황이 도래했다. 1994년 개혁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새천년의 기대로 흥분했던 사람들처럼 많은 불자들도 순진한 기대를 거두게 되었다. 새해가 오더라도 이 문제들이 일시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더 이상 진보를 약속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상황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새로움이란 시간의 단절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결심과 행위의 단절을 통해서만 실현되는 것이기 때문에 ‘송구영신(送舊迎新)’은 결국 우리들 자신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시간을 달이나 해, 또는 세기 단위로 분할하여 시간을 시간 이상의 것, 새로움의 매체로 만든 것은 인간이 그들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려고 하는 지난한 노력의 하나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명법 스님 myeongbeop@gmail.com

[1275호 / 2014년 1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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