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환경파괴 계속되면 인류는 가장 짧게 산 생명체로 기록될 것”

  • 새해특집
  • 입력 2014.12.29 17:52
  • 수정 2014.12.29 18:05
  • 댓글 1

세상의 통섭을 꿈꾸는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은 자연과학자이며 인문학자이다. 하지만 그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은 새로운 것이 아닌 재회”라며 “학문간 경계를 허무는 ‘통섭’이 21세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화두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립생태원 제공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지구의 환경을 보면 인류가 이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우려스럽다. 전에 보지 못한 엄청난 규모의 폭우가 쏟아지고 감당하기 힘든 지진과 폭풍이 수시로 삶을 위협하고 있다. 강과 바다는 오염되고 태평양에는 거대한 쓰레기더미가 섬처럼 떠다니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 파괴에 따른 과보들이다. 그러나 반성은 없다. 지구의 바다 밑바닥까지 파헤쳐 자원을 쥐어짜고 있다. 안달이라도 난 것처럼 종말을 향해 달음질 치고 있다. 그러나 해결이 쉽지 않다. 지구의 환경 파괴는 생태학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힘겨루기와 경제적인 탐욕 등 여러 모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환경, 정치와 경제 복합된 문제
생태학 홀로 환경위기 극복못해

학문간 경계를 허무는 통섭이
21세기 문제 해결 대안 될 것

과거 부계 중심의 호주제는
자연 법칙 거스른 잘못된 제도

지성인 되려면 반골기질 필요
요즘 학생들 너무 반듯해 불편

이런 시대에 주목받는 학자가 있다. 국립생태원 최재천(61) 원장이다. 그는 통섭(統攝)을 21세기 한국사회에 화두로 던져놓고 있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 에드워드 윌슨 박사의 명저 ‘컨실리언스(Consi lience)’를 ‘통섭-지식의 대통합’으로 번역해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문제 해결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통섭은 학문간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서로 다른 학문이 만나고 소통하고 대화함으로써 새로운 방향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통섭의 정신은 학문의 소통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회 모든 분야에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통섭을 이론으로만 주장하지 않는다. 삶을 통해 통섭을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는 자연과학자이며 인문학자이며 저술가다. 강연을 통해 대중과 만나고 사회활동가로서의 실천적 삶도 마다하지 않는다.

▲ 집무실 책장엔 ‘소통’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즐비하다. 평소의 관심사가 엿보인다.

처음부터 과학자를 꿈꿨던건 아니었다.  원래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는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원시적인 교육제도 때문에 과학자로 불리게 됐다. 그러나 과학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인문학에 한 다리를 걸치고 살았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하고 문예반에서 시를 썼다. 미술과 자연에도 관심이 깊었다. 서울대학교에서 동물학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생태학으로 석사학위를, 같은 주제로 하버드대학교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17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는 항상 흔들거리며 걸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가졌고 철학과 미술, 예술 등 관심 있는 분야는 전공과 관계없이 두루 섭렵했다.

▲ ‘통섭’은 과학을 중심으로 한 여타 학문의 ‘흡수 통합’이 아니다. 그의 통섭은 상대의 이론을 충분히 이해하고 대화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원효 스님의 화쟁과 맞닿아 있다.

2004년 모교인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부임한 이후 이화여대 에코학부 석좌교수, 국립생태원 원장이 되기까지 4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 ‘통섭적 인생의 권유’ ‘통찰’ ‘다윈지능’ ‘과학자의 서재’ ‘통섭의 식탁’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등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주제들이다. 사회적 실천에도 나서 동강댐 건설 백지화를 이끌어냈으며 4대강 공사도 반대했다. 호주제 폐지 헌법청원에는 증인으로 출석해 남성 중심 호주제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호주제에 대한 위헌판결을 이끌어내는데 결정적인 논거를 제시했다. 그 공로로 2005년 남성으로는 처음으로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지금처럼 환경을 파괴하면 인류는 지구상에 살다간 생명체 중에 가장 짧게 살다 멸종된 생명체로 기록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더 이상 환경을 파괴하지 않도록 인류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진화생물학을 통해 불교의 공(空)을 느낀다고 말했다.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생명은 무한히 자기를 복제하는 단 하나의 디엔에이(DNA)로부터 시작됐다. 그 디엔에이(DNA)를 후손에 물려주며 생명체는 끊임없이 유전하게 된다.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일정부분 맞닿아있다. 그는 “나와 그리고 인류가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은 무상(無常)과 무아(無我), 나아가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을 떠올리게 한다”고 밝혔다. 그가 진리에 다가갈수록 조금씩 더 경건하게 마음을 비우게 되는 이유다.

▲생태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생태학이란 무엇인가.
“생물과 환경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냥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면 생태학의 영역은 훨씬 넓어진다. 생태학은 자연만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도시 안에서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연구하는 것도 생태학이다.”

▲호주제 폐지에 큰 역할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도 생태학의 영역에 포함되나.
“생태(生態)란 사는 모습이다. 호주제도 인간이 살아가는 한 모습이다. 당연히 생태학의 영역에 포함된다. 생태학은 기초학문이다. 환경기술학이나 환경과학은 엄밀하게 말하면 응용학문이다. 환경문제가 너무 심각해지다보니 생태학이 환경과학과 너무 눌어붙어버린 측면이 있다.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님은 환경과 생태를 항상 분리해서 말씀하셨다. 환경은 둘러싸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환경만을 이야기하면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인간을 비롯한 생명은 소외되기 마련이다. 강에 가서 화학물질이나 측정하고 대기오염을 연구하는 것만이 생태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온난화와 환경오염으로 지구의 상태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생태학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한국생태학회가 세계생태학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국 록펠러대학교 코엔 교수가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기자가 아주 거친 어투로 ‘생태학이 이 환경위기에서 우리를 구해 줄 건가요?’하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코엔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생태학 혼자서 지금의 환경위기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생태학 없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참 지혜로운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환경문제가 생물학적 문제로만 생긴 것은 아니다. 정치·사회·경제 등 복합적인 문제다. 그래서 생태학 혼자서 해결할 수는 없다.

▲지금의 환경문제를 방치하면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명체 중에 가장 짧게 살다간 존재로 기억될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2012년 우리나라 화가 두 분이 독일의 카셀에서 큰 상을 받았다. 그 분들이 상을 받을 때 나도 그 프로젝트에 참여를 했다. 당시에 같은 주제로 작품과 책을 만들었는데, 책의 첫 단원을 내가 쓰게 됐다. 그때 쓴 글의 제목이 ‘인간실록편찬위원회’였다. 우리는 실록을 기가 막히게 잘 남긴 민족이다. 왕조실록이라는 것이 왕이 죽은 뒤에 행적을 기록하는 것인데 거기에 착안해서 인류가 멸망하고 새로운 지적 생명체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 때 과거 살았던 생명체에 대한 실록을 남기는 상황을 묘사했다. 이들은 인간의 실록을 편찬할지 말지를 놓고 엄청난 논쟁을 하게 된다. 수천만 년 살다간 해파리 실록도 못 썼는데 잠깐 살다간 인간을 쓸 필요가 있겠냐는 반대도 있겠지만 결국 인간이 그 짧은 기간에 지구에 남긴 만행을 생각하면 반드시 남겨야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지구의 역사를 24시간으로 나눈다면 인류가 산 시간은 눈 깜짝할 순간이다. 인간이 지금까지 25만년 정도 살았다고 본다면 앞으로 15만년도 못 살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현재와 같이 지구를 파괴하면 생존 기간은 더욱 짧아질 것이다.”

▲ 책상 위엔 원숭이, 곰, 개구리 등 온갖 생명들이 어우러져 있다. 그러니 생태원이다.

▲진화생물학에서는 디엔에이(DNA)가 생명을 창조하고 끊임없이 유전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일정부분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디엔에이(DNA)가 생명체를 만들어 내고 그 생명체의 후손을 통해 끊임없이 유전한다. 윤회의 개념과 아주 유사하다. 그러나 불교의 윤회는 반드시 같은 종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생명체로 태어난다는 이론은 생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생명이 끊임없이 해체되고 다시 조합되어 새 생명으로 윤회한다는 점에서 진화생물학과 불교는 상당한 유사점이 있다.”

▲진화생물학에서 진화 또는 유전하는 실체는 물질이다. 그러나 불교는 윤회의 주체로 식(識)이나 업(業)을 이야기한다.
“생물학은 과학이기 때문에 물질을 기본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교는 윤회의 주체로 물질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제 뇌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뇌 과학은 21세기 최고의 학문이다.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로서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진화생물학에서 진화는 목적성도 없고 도덕성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양심적으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 지점에서 다윈(1809~1882)의 위대함이 있다. 다윈 이전에도 진화론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BC 384~BC 322)도 진화를 이야기했다. 다만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현대진화론의 중요한 이론이 된 것 뿐이다. 그 이유는 진화론으로는 도덕성에 관한 부분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통쾌하게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에 따르면 대답은 명확하다. 양심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후손이 더 많은 유전자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손들이 더 많이 살아남았고 유전된 유전적 성향이 후손들을 더욱 양심적으로 살게 만들어줬다. 인간처럼 사회를 구성해 사는 동물들은 행동을 기억하고 평판을 만든다. 따라서 한 두 번은 약삭빠른 사람이 이익을 보겠지만 긴 삶을 살다보면 결국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게 된다. 돌아가신 장모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기독교인이셨는데 전도사들을 열심히 챙기셨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베풀고 가면 나중에 자손들이 다 돌려받을 것 아닌가. 이것이 바로 다윈의 이론을 발전시킨 윌리엄 해머튼의 ‘이기적 유전자’ 이론이다. 유전자는 이기적이라 눈앞의 것만 챙길 것 같지만 먼 미래를 보고 행동하는 똑똑한 이기주의자다. 동료 중에 테레사 수녀의 집안을 조사한 사람이 있다. 테레사 수녀의 집안은 잘 사는 집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테레사 수녀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집안이 크게 번창했다. 테레사 수녀는 자식을 낳지 않았지만 그 희생으로 가족이 번창하고 그 집안의 유전자가 더욱 많이 퍼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다윈의 이론이 지금까지도 막강한 이론으로 추앙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원장님은 학문간 경계를 허무는 통섭(統攝)을 21세기 화두로 던져놓고 있다. 인문학자가 아닌 자연과학자가 사회적 화두인 통섭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학문은 원래 쪼개져 있지 않았다. 공자가 역사만 공부한 것은 아니다. 괴테가 독일의 문호라고 하지만 과학자이기도 했다. 공부란 원래 이런 것이다. 18세기 르네상스를 거치며 학문이 쪼개지기 시작했다. 분업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치면서 이에 대한 반성이 일기 시작했다.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인 윌슨 교수님이 컨실리언스(Consilience)라는 개념을 통해 학문간 교류와 소통을 이야기한 것도 이런 시대적 배경 때문이다. 나는 이를 통섭(統攝)이라는 단어로 번역해 냈다. 요즘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만남이 아니고 재회(再會)다. 원래 같은 개념이었고 한 몸이었는데 어느 날 쪼개졌을 뿐이다.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거다. 원효 스님은 화쟁(和諍)을 말씀하셨다.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하면 된다.”

▲분업을 통한 효율성과 깊이 있는 연구가 학문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우리를 지배했다. 그렇다면 통섭을 통해 어떤 일을 이뤄낼 수 있다고 보는가.
“이제 한 두 사람의 뛰어난 천재가 인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이미 한계에 봉착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문제들, 또 구태여 만들지 않았어도 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자들이 서로의 벽을 허물고 대화를 해야 한다. 로켓 전문가가 인류를 화성에 보낸다하더라도 그곳에 집을 지어야 하고 연구도 해야 한다. 환경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것이 복합적이다. 개인이나 특정분야의 전문가가 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어쩔 수없이 서로 만나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통섭이라는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다.”

“유전자 통해 유전하는 진화생물학, 불교 윤회와 맞닿아 있어”

나와 인류 영원하지 않기에
접근할수록 불교의 공 느껴

사찰 주변은 생태학의 보고
불교가 환경보호에 큰 역할

젊을 때부터 틈틈이 절 찾아
도법 스님과는 특별한 인연

4대강 파괴는 무지의 산물
자연 알게 되면 절대 못해

▲호주제의 생물학적 모순을 과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호주제 폐지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로 불리기도 하는데.
“전공이 뭐냐고 물어보면 사회생물학이라고 이야기한다. 사회생물학은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됐는데 페미니스트들의 공격대상이 됐다. 사회생물학자들 중에서 좀 서툰 분들이 잘못된 발언을 하는 바람에 오해를 산 것이다. 새들을 관찰하면 수컷은 바람을 피는데 암컷은 그렇지 않다. 이런 연구결과를 놓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여성들이여 남자들의 바람기를 이해해 달라. 이것은 본능이다. 이렇게 말해버렸다. 여성들이 들고 일어났고 한동안 미국에서는 사회생물학을 한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회생물학은 암컷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수컷은 암컷의 몸을 빌리지 않고서는 유전자를 세상에 남길 방법이 없다. 수컷은 번식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자연계에 호주제가 있다면 호주는 당연히 암컷의 몫일 수밖에 없다. 언젠가 내가 이런 말을 했더니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 그래서 욕먹는 김에 확실하게 해보자 하고 나섰다. 호주제에 대한 위헌심판이 청구됐을 때 헌법재판소에 가서 이런 내용으로 증언을 했다. 정확히 2주 만에 호주제가 위헌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 후에 국회에서 새로운 법안이 마련되면서 논쟁이 정리됐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스트라고 불러준다면 감사히 받을 생각이다.”

▲평소에 ‘자세가 삐딱한 학생을 좋아한다’ ‘졸리면 자라’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대에서 가르쳤고 연세대에도 몇 년 출강을 했다. 그리고 이화여대로 갔다. 가서보니 이화여대 학생들이 가장 열심히 공부했다. 다른 대학에서는 삐딱하게 앉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 한번 들어보자 하는 표정으로 강의를 듣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이화여대에서는 모두 똑바로 앉아서 나만 쳐다봤다. 숨이 막혔다. 지성인은 반골기질이 있어야 한다. 세상이 들려주는 대로 받아 적는 사람은 결코 지성인이 될 수 없다. 들은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엎어보고 뒤집어보고 그래야 한다. 과학자라면 더욱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그게 학문하는 자세다. 그런데 다들 너무 착실하고 반듯했다. 그래서 좀 삐딱하게 앉아라, 졸리면 자도 된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착실한 학생을 싫어한다고 와전됐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남녀공학인 대학은 뒤에서 학점을 받쳐줄 남학생들이 지천이다. 그런데 여대는 그런 남학생이 없다. 그러니까 서로 피가 튀기는 거다. 문제는 학점에만 신경을 쓰고 정작 책을 잘 읽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학점 기계가 되지 말고 책도 읽고 방황도 하고 사색도 해보라고 한 이야기인데 특정 부분이 부각되면서 오해를 부른 측면이 있다. 사람은 흔들거리고 방황하면서, 그러면서 스스로 삶을 찾아가는 거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사회는 투명해 질 수밖에 없다고 한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의 활동 중에 과학만큼 민주적인 활동이 없다. 일단 종교는 전혀 민주적일 것 같지 않고 인문학도 보면 대가라는 분이 있고 제자들이 대가의 이론을 발전시키는 구조다. 그러나 자연과학은 아무리 대가가 한 이야기라도 실험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권위를 인정받기 어렵다. 사기를 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종교는 증명할 수 없다. 태초에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데 본 사람도 없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 믿음만이 있을 뿐이다. 인문학도 스승의 권위가 크게 존중되는 학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검증을 해야 한다. 검증과정 그 자체가 이미 민주적인 것이다. 우리사회를 억지공화국이라고 한다. 국회의원들 같은 분들도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논리를 떼거지로 밀고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좀더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시대가 온다면 억지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과학적 마인드로 합리적 판단을 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투명하게 될 것이다. 물론 무척 재미없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긴 하다.”

▲인문학이 담당하는 영역이 무척 넓다.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어느 부분은 모르기 때문에 신화가 된 부분이 있다. 과학이 발달하면 과학이 인문학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통섭(統攝)이라는 책을 번역하고 나서 많은 오해를 받았다. 지도 교수였던 에드워드 윌슨 교수님은 과학이 다른 것들을 통섭할 것이라고 쓴 것은 맞다. 그러나 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학이 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과 나란히 함께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종교가 없는 집단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종교는 인간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속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를 비과학적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21세기는 인문학적 사고와 과학적 방법론이 함께 할 때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윌슨 교수님이 말씀하신 컨실리언스(Consilience)는 과학을 앞세운 것이다. 그러나 나의 통섭이라는 번역은 조금 다르다. 원효 스님의 화쟁(和諍)과 같은 의미다. 상대의 이론을 충분히 이해해 화해하고 대화한다는 의미다. 나만을 앞세우는 아집으로는 절대 화해가 되지 않는다. 나의 통섭은 윌슨 교수의 이론과 다르다는 점을 책에 충분히 설명해 놓았다. 그런데도 제대로 읽지 않고 비판을 하니 답답할 때가 있다.”

▲불교계와 인연이 궁금하다. 친하게 지내시는 스님이 있나.
“도법 스님하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 몇 년 전에 실상사 대웅전 불사 논의가 있었다. 그때 토론학습을 하자고 해서 주민들과 함께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젊은 스님들은 대웅전을 크게 중창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토론을 하다 보니 대웅전을 새롭게 지을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대학시절에는 혼자 배낭을 메고 절을 찾아다니며 스님들을 만났다. 생태적으로 가장 잘 보전된 곳이 절이기 때문에 생태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절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진화생물학을 하다보면 불교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론적으로 맞닿아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불교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러나 환경보호나 운동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 풍수지리학의 대가인 최창조 선생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절 주변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풍수적으로는 굉장히 안 좋은 터다. 건물을 지으면 안 되는 터에 우리의 절들은 들어섰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주변을 순화시켰다고 했다. 물론 내가 이 이야기를 검증할 만한 능력은 없다. 그러나 그 이후로 절에 가면 자꾸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현재로서는 환경적으로 가장 잘 보전된 곳이 절 주변이다. 터가 좋지 못한 곳을 생태적으로 훌륭한 곳으로 보전하고 가꾼 공이 불교에 있다. 이런 측면에서 불교는 우리나라 환경 보존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알면 사랑한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의미인가.
미워하고 질투하고 헐뜯는 것은 상대를 모르기 때문이다. 알게 되면 절대 그럴 수 없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알게 되면 절대 파괴할 수 없다. 지난번 대통령하고는 참 못 사귀었다. 자연을 너무 파괴해서 거기에 반대했더니 야단을 많이 하더라. 그분이 자연을 몰라서 파괴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더니 더 화를 냈다고 들었다. 강에 가서 바닥을 긁으면 쉬리, 줄납자루, 피라미들이 마구 달아난다. 알을 낳고 보호하고 있다가 그야말로 혼비백산하는 것이다. 그래서 4대강을 굴삭기로 마구 파헤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죽인다고 해도 나는 절대 못한다. 이미 그들의 삶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은 모르니까, 나쁘게 말하면 무식하니까 그렇게 해치운 거다. 자연보호를 위해서는 자연을 많이 알려야 한다. 알게 되면 저절로 보호하게 된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은 그런 뜻이다.

▲ 시종일관 유쾌했던 인터뷰를 끝내며 즐거웠던 만남을 한 장의 일러스트로 남겼다. “너무 반듯할 필요는 없다”는 그의 말을 떠올리며.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1276호 / 2015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