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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 죽어라

기자명 문광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14.12.30 12:46
  • 수정 2015.06.11 10:43
  • 댓글 0

조계종 제11대와 12대 종정을 지내셨고 해인사 방장으로 계시던 도림 법전(道林 法傳) 대종사가 입적하셨다. 평생 108배와 참선정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관해 오셨던 종단의 큰 어른 한 분을 또 이렇게 떠나보내게 되다니 갑자기 싸늘해진 겨울날씨가 더욱 시리게만 느껴진다.

성철, 청담, 향곡을 비롯한 근현대 한국불교의 기라성과도 같은 대선사들이 함께 동참했던 봉암사 결사의 막내스님이 바로 법전 스님이셨다. 당시 나이 24세. 바로 위의 선배스님이 제10대 종정을 지내셨던 혜암 성관(慧菴 性觀) 대종사였으니 법전과 혜암, 이 두 분은 평생을 함께 용맹정진하면서 평행이론과도 같은 일생을 살아나간 것이다. 두 분 모두 성철 스님의 뒤를 이어 해인사 유나와 수좌, 부방장과 방장을 역임했고,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과 종정을 차례대로 이어 맡으며 한국불교에 수행자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법전 스님께서 원적에 드시면서 봉암사 결사의 마지막 세대들이 역사의 정적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남아있는 한국불교의 사부대중들은 과연 어떤 결사정신으로 이 혼란한 말법시대에 산 눈[活眼]을 뜨고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

해인사 원당암 미소굴에는 “공부하다 죽어라”라는 혜암 스님의 친필이 새겨져 있다. 정진하다 죽으면 죽어도 죽지 않는 이치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의 인가를 받은 분이 법전 스님이라면 혜암 스님은 성철 스님으로부터 중노릇 가장 잘하는 스님이라는 상찬을 받은 분이었다. 두 분의 공통점은 당대의 정진제일(精進第一)이라는 점이다.

성철 스님이 봉암사 결사 당시 전 대중에게 능엄주를 외우라고 했는데도 혜암 스님만은 유독 외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으며 다그쳤더니 나는 행자시절부터 눕지 않는 장좌불와 수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마장이 붙지 못하니 다시는 능엄주 외우라는 말씀 말라고 해서 혼자만 예외가 되었다고 한다. 훗날 성철 스님이 법전 스님에게 한산시를 읽어보라, 증도가를 읽어보라 했을 때도 끝끝내 화두만 참구할 뿐 그런 것 나에게 시키지 말라고 발끈했다고 하니 봉암사 결사 당시 하판에 자리했던 두 분의 기상과 사자다운 면모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겠다.

55년 눕지 않는 수행을 했던 혜암 스님의 마지막 82세 생신날 나는 해인사 원당암으로 출가했다. 아니, 출가해 보니 그 날이 바로 노스님의 생신날이었고 그 해 12월에 열반에 드셨으니 나는 큰스님의 마지막 해 생신일에서 입적일까지 곁에서 오롯이 시봉한 것이 된다. 82세가 이생에 정해진 수명이라시던 노장님은 단 하루도 더 살지 않으시고 12월 31일 오전에 내가 올리는 죽공양을 드시고 원적에 드셨다. 그 노스님이 남긴 추상과도 같은 가르침이 바로 ‘공부하다 죽어라’였다. 오직 정진 하나만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셨던 혜암 스님과 법전 스님. 하지만 이젠 남아있던 한 어른도 피안의 길을 떠나셨다.

지난날 해인사에서 새해를 맞아 통알의식을 마치고 산중 암자의 어른 스님 영정에 새해인사를 다니시던 법전 스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차가운 새벽공기를 가르며 연로하신 법체로 미소굴에 오셔서 선배 혜암 스님의 영정을 배알하실 때 오척단구의 손을 부축해드렸던 그 온기가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법전 큰스님 영전에 일주향을 사르고 대련 한 구절로 스님을 영결하면서 다시 한 번 공부하다 죽을 것을 다짐해 본다.

가야산 꼭대기 뿌리없는 나무는(伽倻山頂無根樹)/세찬 바람 맞아도 잎은 홀로 푸르더라!(受朔風而葉獨靑)

문광 스님 탄허기념박물관 연구실장 naksanbosal@daum.net

[1276호 / 2015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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