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곁에서 본 달라이라마
2. 곁에서 본 달라이라마
  • 텐진 남카 스님
  • 승인 2014.12.30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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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쁜 일정에도 수행자들과 토론 즐기는 자비로운 스승

▲ 지난 11월 인도 다람살라를 찾은 텐진 남카 스님. 허리를 숙여 머리를 낮추는 것은 스승인 달라이라마 존자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티베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달라이라마 존자님을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으로 믿고 받든다. 나 역시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존자님과 나의 인연을 되짚어보면, 그 첫 기억은 7, 8세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가한 후 한 두 해가 지나 내 나이 9살 무렵, 은사스님을 모시고 있을 때였다. 당시 내가 머물던 절의 불단 위에는 존자님의 사진이 여러 장 모셔져 있었다. 어느날 그것을 세어보니 모두 9장이었다. ‘은사스님께서는 존자님을 많이 좋아하고 존경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간직하고 있는 존자님에 대한 첫 기억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장면일 뿐이다. 아마도 그 이전부터 심어져 있던 인연의 씨앗이 그때 발아되어 그로부터 존자님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꽃피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14살 때 도반과 토론하던 중
묵묵히 바라보던 존자님 발견
둥그런 빛이 몸 감싸는 느낌

매년 티베트 젊은이들 위한
3일 간의 강연 직접 챙기며
티베트의 미래 준비하기도

티베트 여러 종파 법맥 찾아
평생 부지런히 배우고 계승
‘법맥의 창고’라 불리는 이유
모든 가르침에 겸손한 모습 보며
타종교·종파에 대한 존중 깨달아

확실하게 각인이 된 것은 14살 때였다. 겔룩파 3대 사찰의 하나인 대붕사원에서 담짜(여러 명이 모여서 서로 논쟁하는 티베트의 토론 방식)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난 어렸지만 마이크 앞에서 쩌렁쩌렁하게 목청을 높여 논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사원의 대법당에 다녀가시던 존자님께서 우리들의 논쟁을 들으셨는지, 다가 오셔서 내가 도반들과 논쟁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계신 것이었다. 한창 신나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나는 존자님을 발견한 순간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뿐만 아니었다. 함께 논쟁하던 도반과 선배들 역시 말을 잃었다.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져 버렸다. 마음은 조급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치 존자님을 둘러싸고 있는 둥그런 빛이 내게 와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었다. 존자님께서 자리를 떠나신 후에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논쟁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 뒤 간덴사원 개원식 때 며칠 동안 존자님께서 참석하신 자리에서 담짜가 있었다. 존자님께서는 본사를 방문하실 때 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꼭 담짜를 여셨다. 수행자들의 공부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쓰시는 것이다.

첫날 담짜가 끝나고 그 다음 날, 존자님으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그것은 평생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나의 보물이 아닐 수 없다. 그 날, 그 분은, 그 자리에서 이생뿐만 아니라 나의 다음 생, 또 그 다음 생, 세세생생토록 내 모든 것을 다 바쳐 받들고 모시고 싶은 나의 영원한 스승이 되셨다.

내가 한국에 온 지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티베트의 많은 승려들이 나와 같이 세계 곳곳으로 나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부산으로, 대구로, 대전으로, 서울로 여러 곳을 다니며 법문과 강의를 하느라 한 주의 일정이 빠듯하다. 그러나 존자님은 세계를 다니시며 누구보다도 많은 법문을 하신다. 누구보다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곳을 쉼 없이 다니신다. 존자님의 1년 일정을 보면 빈틈이라고는 없어 보인다. 평범한 나로서는 감히 근접하기도 어려울 만큼 고된 일정이다. 그렇지만 단 하루도 기도와 명상을 거르지 않으신다.

숨 가쁘게 바쁜 와중에도 존자님은 기회가 되는대로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강의를 하신다. 전국에 있는 티베트의 젊은 학생들을 위해서도 1년에 한 번씩 3일 동안 법문을 하신다. 젊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니 다른 분들이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존자님께서 직접 챙기시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을 소중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바라본 존자님은 이처럼 한마디로 위대한 수행자시다. 지혜를 지니셨으며 수행력을 갖추셨다. 어린 시절 공부를 시작하신 후 지금까지 수많은 스승들로부터 문사수(聞思修)를 통해 배움으로써 삼장에 통달하신 분이다. 존자님께서 어렸을 때, 공부를 돕기 위해 첸샵이라는 훌륭한 고승들을 티베트의 3대 사찰에서 뽑았다. 링 린포체 등 겔룩파의 스승 뿐 아니라 둔좀 린포체, 딜코켄체 린포체 등 닝마파의 스승과 켄뽀꾼가왕축 린포체 등 샤캬파의 스승 등 수많은 분들을 스승으로 모셨다. 티베트에서는 경전을 배울 때 여러 가지 방법이 활용되는데 특히 도반들과 함께 논쟁을 통해 배우는 방법을 중요시 여긴다. 존자님께서는 어린 나이에 이처럼 대학자이신 고승 첸샵들을 상대로 논쟁을 펼치며 논리 등을 익히셨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존자님은 1942년에 스승 따닥 린포체로부터 사미계를 받고 1954년 20세 때에 스승 링 린포체로부터 비구계를 받았다. 그 후로도 많은 스승들에게 보살계와 밀교계를 받으며 계를 철저히 지키셨다. 특히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전수된 법맥이 많은데 존자님께서는 수많은 스승을 통해 꾸준히 법맥을 받았고 아직 받지 못한 부분을 여전히 찾고 계신다. 늘 법에 대해 부족하다 여기시는 것이다. 존자님께서 수 천년동안 이어온 티베트 여러 종파들의 법맥들을 받아 법맥의 창고가 되셨다고 표현되는 이유다.

나는 비구계와 보살계, 밀교계를 모두 존자님께 받았다. 30년 넘게 수차례 가르침을 받으면서 내 마음은 계속해서 변화를 일으켰다. 어렸을 때 나는 광대하고 심오한 겔룩파의 가르침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나 컸던 나머지, 그리고 공부의 발전 속도가 남보다 조금 빠른 편이었기에 타인에 대한 존경 뿐 아니라 티베트 불교의 다른 종파에 대해서도 존경심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존자님의 말씀을 듣고, 언제나 법에 대해 겸손하신 그분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변화했다. 지금은 티베트의 다른 종파는 물론이고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존자님은 자비의 온전한 상징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떠한 상황에 처해서라도 자비로써 상대에게 관심을 갖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존자님 앞에 고개 숙이게 되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누구라도 존자님 앞에 서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존자님 앞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존자님을 뵙고 그 앞에서 순한 양처럼, 어린 아이처럼 변해버리는 모습을 나는 참 많이 보았다. 자비의 원천인 존자님 앞에서 거칠고 어리석은 우리들은 그저 엄마를 보는 아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리라.

관점을 조금 바꿔 티베트라는 나라와 티베트인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존자님은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이자 티베트의 보호자이며 인도자시다.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한 후 티베트의 전통, 종교, 문화, 언어는 물론이며 티베트민족까지도 말살될 위기를 겪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티베트인은 오직 존자님의 안위를 걱정했다. 모든 티베트인들은 존자님만 건재하시다면 우리 모두는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959년, 존자님께서는 아주 어려운 결단을 내리셨다. 인도로 망명하신 것이다. 존자님의 망명으로 티베트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존자님의 망명은 티베트민족과 전통을 지키는 동시에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티베트 불교가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망명 이후 존자님께서는 쉬지 않고 강연, 메시지, 책 저술, 방송을 통해 전 세계와 소통하셨다. 인간 개개인의 행복부터 세계의 평화까지, 전 세계인들을 위한 이타행의 실천을 위해 항상 노력하고 계신다. 불교의 가르침뿐 아니라 사람들의 도덕성이 회복되고 사람 사이의 자비, 용서가 커질 수 있도록 애쓰신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 다양한 종교의 화합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항상 노력하신다. 존자님께서는 기회가 되는 한 많은 타종교의 지도자들과 만나셨고 종교 간의 대화를 촉진하셨다. 존자님께서는 종교와 철학 등의 다양성을 인정하셨다. 믿음의 공유와 서로간의 대화를 강조하셨다. 이것이 바로 존자님께서 종교와 국경, 학문의 경계를 넘어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30년 전부터 존자님은 과학자들과의 관계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셨다. 그들과 함께하는 첫 모임에서 몇몇의 학자들은 ‘종교인인 달라이라마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또 어떤 종교인들은 과학자들과 소통하려는 존자님에게 “과학자는 종교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과 만나면 그 영향으로 불교에 대한 신심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존자님은 언제나 불법에 대한 자신감을 지니고 계셨기에 어느 무엇도,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심에 장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불법에 대한 그 원대한 자신감은 과학과 조화를 이루었고 그로부터 서구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존자님은 불교와 과학 사이의 다리를 놓으신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미 불교가 전해진 나라에서는 불교가 지속되도록 애를 쓰신다. 특히 대한민국에는 1959년 망명오실 때 가져오신 아주 소중한 대장경을 서울 동국대에 기증하셨다. 또 동국대 경주캠퍼스에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전해주셨으며 부처님 가르침의 연구와 번역을 위해 20만불을 지원해주심으로써 현재의 역경원 설립에 기반을 마련해주시기도 했다.

이처럼 티베트의 희망이셨던 존자님은 이제 세계와 인류의 등불로서 이 세상을 비추고 계신다. 존자님의 제자인 나는 오늘도 먼 이국에서 영겁의 스승, 존자님을 사모하고 우러른다.

[1276호 / 2015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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