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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내가 만난 달라이라마

기자명 법보신문
  • 새해특집
  • 입력 2014.12.30 14:09
  • 수정 2014.12.30 14:50
  • 댓글 0

무한한 자비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안내하는 수행자

달라이라마를 친견한 한국불자 생각은 한결같았다. 듣기만 해도 따뜻한 단어를 느낌으로 표현했다. 평화, 자비, 인자, 자애, 행복, 환희 등등. 세월 흘러 기억력이 쇠퇴해 인용하고 싶은 게송을 떠올리지 못할 때도 있지만 달라이라마의 자비심은 외려 깊었다. 수많은 인파가 기다려도 방금 만난 인연들을 바깥문까지 배웅하는 따뜻함도 있었다. 세기적, 세계적 인물임에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고 민족이 처한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았다. 달라이라마, 그를 만났던 스님과 불자들 이야기를 지면으로 전한다. 편집자

“어떤 상황에도 웃음 잃지 않아”

박광서 서강대 명예교수

 
달라이라마는 흐르는 물이었다. 억지가 없었다. 티베트인들이 처한 답답하고 척박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았고 긍정적이었다. 민족을 이끌어가고 있고 세계적인 명망가들이 찾아오는 위치에 있음에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세 번을 친견했다. 한국에서 달라이라마 방한 준비위원회 활동을 하던 시기였다. 초청장을 전하러 2000년에 처음 달라이라마를 만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노벨상을 탔고, 달라이라마 역시 평화상 받았으니 초청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였다. 그럼에도 초청은 어려웠다. 다음해였던 2001년에 불자들과 함께 달라이라마를 만났다. 특히 인도에서 불가촉천민 차별개선을 위해 수십년간 활동해온 평화운동가 로카미트라 법사의 행사를 지원하기 위해 인도를 찾았던 2005년 만남이 인상 깊었다. 로카미트라 법사측에서 달라이라마를 초청했고, 우리는 작은 방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한국에 굉장한 애정을 표했고 방문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다. 법문도 철학적이거나 수행자들이 나누는 법담이 아닌 편안한 대화 같았다. 세계적이고 세기적 인물이며, 자기 민족이 처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상대에게는 환희심을 느끼게 했다.

달라이라마 친견은 나와 우리를 돌아보게 했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국가다. 그런 무게를 감당하는 사람인데도 평온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개인적인 문제를 어깨에 무겁게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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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곳마다 평화 깃들게 해”

조계종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달라이라마 방한의 열망이 크지만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소납은 포교원장 시절부터 달라이라마를 초청하고자 노력해왔다. 지난 5월 교육원의 티베트 순례 때는 달라이라마가 부디 티베트에 환국해 찬란한 불교문화를 되찾고 국민에게 환희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순례지마다 발원하기도 했다. 달라이라마의 방한을 원함은 단지 불교계의 어른이어서만이 아니다. 소납은 달라이라마를 세 번 친견하고 수기를 받은 인연이 있는데, 그때 몇 가지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다.

나라를 등지게 돼 분개심이 일어나지 않냐고 묻자 “모든 것은 인연법에 의해 그리 된 것이니 분할 것도 없다. 부처님의 법에 입각해 보면 전체가 일불승(一佛乘)의 도리가 아닌가. 누가 집권해 다스리든 국민을 편안하게 하면 되는데 다만 그것이 깨져 마음이 아플 뿐이다”고 했다. 공부법에 대해 묻자 “이것저것 보지 말고 모든 물이 바다에 모이듯이 오로지 부처님만 생각해서 중생의 마음이 부처님 가슴에 모이면 거기에 자비광명이 발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달라이라마는 부처님과 같은 자비심으로 가는 곳마다 평화를 깃들게 했다. 오늘날 대립과 갈등으로 혼탁한 우리나라에도 달라이라마를 꼭 초청해 한민족의 평화, 나아가 세계평화의 초석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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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 낮추는 고승의 미덕 갖춰”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

 
2000년대 초 전국선원장회의 스님 12명과 함께 인도불교성지를 순례하고, 북인도 다람살라를 방문해 그 곳에 머물고 있는 달라이라마를 만났다. 달라이라마의 말씀에는 자비가 가득했고, 부드럽고 힘찬 목소리에는 좌중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당시 한국불교의 간화선과 티베트 수행에 대한 문답을 주고받았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 불교에 대해 경전에 의지해 공과 자비에 대해 공부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불교의 수행전통인 간화선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실수하는 시간도 가졌다.

“깨달으셨냐?”는 질문에 달라이라마는 “여전히 공부 중인 평범한 스님일 뿐이다”고 했다. 진정으로 자신을 낮추는 고승의 미덕과 언제나 배우는 자세로 정진하는 수행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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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롭고 유쾌한 선지식”

안동일 동산반야회 명예이사장

눈을 맞추며 손을 잡아주던 달라이라마는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였다. ‘넓은 바다와 같은 큰 덕을 지닌 스승’이라는 법명 그대로 달라이라마는 한없이 자비로웠고 유쾌한 선지식이었다.

달라이라마를 친견한 것은 2010년 8월 한국의 불자들을 위한 티베트 금강경 특별법회 자리에서다. 달라이라마는 단 몇 분 만에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들었고, 평화와 행복을 느끼게 했다. 시종일관 스스럼없이 대하는 달라이라마의 모습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고, 당시 한국에서 발생한 천안함 사건에 대해 먼저 말씀을 꺼내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고통과 고난이 닥칠 때는 평정심과 인내심으로 대처하고 다함께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며 북한도 반드시 변할 것이니 먼저 포용하고 용서하라고 말씀했다.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면 반드시 이뤄지고, 폭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씀하셨다. 당신도 1959년 티베트를 떠나 지금 인도 다람살라에 있지만 중국도 변할 것이기에 언젠가 티베트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달라이라마는 진정 성자이자 자비와 평화의 상징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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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연이 소중한 천진불”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2시간이면 충분했다. 달라이라마가 인류의 큰 선지식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8년 마지막 날인 12월31일 통도사 지안 스님과 호진 스님, 동국대 교수들 일행과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서점에서 달라이라마 저서를 구입하고 사인을 받고 헤어질 때였다. 달라이라마는 수많은 사람들이 친견을 위해 기다리고 있음에도 우리 일행 한 명 한 명 정성껏 악수로 배웅했다.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받는 이가 스스럼없이 악수를 청하는 모습에서 자신 앞에 다가온 인연들을 허투루 보지 않고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2009년 1월1일 새해 아침, 달라이라마가 우리 일행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다시 1시간을 만났고 두 번째 친견으로 달라이라마가 왜 선지식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당시 달라이라마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다. 나라는 육체에 집착하지 말라”며 공과 보리심 그리고 자비심에 관한 말씀을 일행에게 전했다. 또 “믿음과 수행이 중요하다. 마을에 내려가서 수행하고 자비심을 베풀어 달라”고 당부했다.

인자하면서 천진하고, 때 묻지 않은 그 모습에서 어린아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말 살아있는 아기 부처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음성은 부드럽지만 매우 호탕하게 웃는 모습에 우렁찬 카리스마도 느꼈다. “자비심을 베풀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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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심으로 중생 고통 공감”

양승규 동국대 평생교육원 교수

 
무작정 배낭을 메고 떠난 인도여행에서 다람살라를 만났다. 곧바로 다람살라에 거처를 마련했다. 영어로 달라이라마의 법문을 들으면서, 분명 한국불교와 다른 그 무엇이 있음을 알았다. 그것에 끌려 길을 나서지 못했고, 티베트어로 달라이라마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공부하겠다는 원을 세웠다. 다람살라에 살면서 달라이라마로부터 ‘쌈둡’이란 법명도 받았고, 스승인 쏘남 쌍개 스님과 친견했을 때 달라이라마는 내가 불교논리학을 공부하는 것에 대해 기뻐하셨다.

한국에 살면서 달라이라마 일본법회에 통역으로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통역은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정성을 다해 준비했고, 4년 정도 통역을 했다. 언젠가 통역을 마쳤을 때 달라이라마는 내 목에 카닥을 걸어줬다.

20년 전에 달라이라마는 하루를 오전과 오후로 나누고, 일주일 내지 열흘 동안 법문을 했다. 빠른 말씀과 힘 있는 말씀을 아쉽게도 세월이 빼앗아갔지만, 여전히 달라이라마의 말씀에는 정법을 향한 간절함이 묻어 있다. 기억력이 쇠퇴하셔서 인용하고 싶은 게송을 가끔씩 묻기도 하시지만, 자비심은 오히려 크게 자라 중생의 고통에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오랫동안 달라이라마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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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로운 눈빛마저 감동적”

이정순 한국티베트센터 광성사 이사장

 
2007년 2월 달라이라마 첫 친견 날이 바로 어제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2005년, 2006년 몇 번이나 다람살라를 방문했지만 달라이라마를 만나지 못했다. 2007년 2월 한국티베트센터 신도 몇 분 그리고 딸과 함께 바라나시에서 열린 관세음보살 관정법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먼발치에서 본 달라이라마의 모습은 한없이 인자하고 법문을 설하는 음성은 저절로 환희심이 일어났다.

28일간의 인도 남부 법회 동안 나는 참 행복했다. 소남걀첸 스님의 인솔아래 달라이라마 친견이 이루어졌다. 6명이 달라이라마를 가까이에서 친견하는 순간, 달라이라마와 눈이 마주치면서 한없이 자애로운 눈빛 가운데 나의 전부를 꿰뚫어 보는 듯한 강한 빛 같은 눈빛을 함께 보았다. 나는 달라이라마의 손을 잡고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내가 만난 티베트인들이 달라이라마 앞에 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였는데, 그 얘기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의 과거, 현재, 전부를 다 꿰뚫어 본다는 강한 느낌에 나는 달라이라마 앞에서 다 내려놓을 수 있었다. 흐르는 눈물과 함께….

그 후 몇 번의 친견이 있었지만 첫 친견 때와 다름이 없었다. 달라이라마 앞에서면 가슴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환희심으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2016년 1월 부다가야에서 열릴 칼라차크라 법회에 꼭 참석해 나의 스승 달라이라마를 다시 뵙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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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와 하나된 참 스승”

이상규 전 환태평양변호사협회장

달라이라마에게서 형식이나 의례적인 면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항상 겸손하고 따뜻했으며 이 모든 행동은 온전하게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듯 했다.

2004년 12월과 2006년 2월 두 차례 달라이라마를 만났다. 2004년은 달라이라마를 친견하기 위해 인도를 방문한 것이었고, 2006년은 인도성지순례 중 우연히 만났다. 특히 두 번째 만남에서는 당신의 일정까지 바꾸어 나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작은 인연도 소중히 생각하는 정말 감동스러운 분이다.

달라이라마는 절을 할 때 다른 사람보다 훨씬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고, 스케줄이 밀려있다는 비서진의 독촉에도 바깥문까지 전송하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등 마음의 근원에서 퍼 올린 것 같은 자애로움과 따스함으로 사람을 대했다. 가까운 장래에 또 만났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씀에는 깊은 신뢰감이 느껴졌다.

달라이라마의 말씀은 하나하나가 모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였으며, 비유가 너무 적절해서 부처님의 대기설법을 듣는 듯 했다. 불교에 관한 일반적인 질문에서 생명공학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질문이 나와도 전혀 막힘이 없었고, 설명은 화두를 깨치듯이 정곡을 찔러 모든 것이 명료하기만 했다.
깊은 명상을 통해 진리와 하나가 된 참 스승의 진면목을 보는 것 같았다.

 

[1276호 / 2015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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