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어리석음 일깨우는 지혜의 동물
중생 어리석음 일깨우는 지혜의 동물
  • 권오영 기자
  • 승인 2014.12.30 17: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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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불교

▲ 만봉 스님의 십이지신도 양.

2015년은 양띠해이다. 양은 유순하고 인내심이 강해 예로부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왔다. 십이간지의 여덟 번째에 해당되고, 시각으로는 오후 1시에서 3시, 달로는 6월에 해당하는 시간신이며, 방향으로는 남남서를 지키는 방향신이다. 양은 무리를 지어 군집생활을 하면서도 동료 간의 우위 다툼이나 싸움을 하지 않는 온순한 성격을 지닌 동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까닭에 양은 평화와 순종을 상징해 왔다. 또 반드시 갔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습성을 가지고 있어 때론 강직함을 상징했다.

유순하고 인내심 강해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
본생경·잡보장경 등서
어리석은 중생에 비유

장성 백양사 이름에는
설법 듣고 업장소멸한
흰 양의 전설 담겨있어
이성계 꿈에도 양 등장
조선 개국을 암시해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양은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다. 양은 유목문화에 친숙한 동물로 농경문화의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농가에서 양을 기르기가 쉽지 않았다. 대신 민화나 민속 등에 등장하는 양은 주로 산양이나 염소였다. 호랑이와 용, 말 등 다른 동물에 비해 양이 민속 문화나 문화재에 등장하는 횟수가 적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불교경전에서 양은 어리석은 중생을 경책하는 비유로 활용됐다. 부처님은 양의 비유를 통해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들을 일깨웠다.

‘본생경’에 따르면 꿀 묻은 풀을 아무 생각 없이 쫓던 양이 결국 산지기에게 붙잡히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본 왕은 “조심성 많은 양도 꿀 때문에 잡혔다”며 “실로 이 세상에 미각에 대한 욕심만큼 두려운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탐심에 사로잡힌 중생의 어리석음을 양의 비유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잡보장경’에서는 양과 여종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느 마을에 성실하고 얌전한 여종이 있었다. 주인은 여종에게 보리와 콩을 관리하는 일을 보게 했다. 그런데 여종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집에서 기르던 숫양이 보리와 콩 한 말을 훔쳐 먹었다. 이 때문에 여종은 주인에게 의심을 받았고 꾸중도 들었다. 화가 난 여종은 ‘내가 주인에게 꾸중을 들은 것은 모두 이 양 때문’이라고 생각해 막대기로 양을 때렸다. 영문을 알지 못하고 두들겨 맞던 숫양도 여종을 뿔로 들이받았다. 둘 사이는 극도로 나빠졌다. 어느 날 여종이 손에 촛불을 들고 있었는데, 그때 양이 쫓아와 그녀를 들이받았다. 그 바람에 촛불이 떨어져 양의 털에 불이 옮겨 붙었다. 양은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순식간에 마을 곳곳에 불이 옮겨 붙었고, 산과 들에까지 불길이 번졌다. 마침 그 산에는 원숭이 500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거세진 불길을 피할 수 없어 한꺼번에 타죽고 말았다. 양과 여종의 싸움이 마을과 산을 모두 태운 것도 모자라 무고한 생명마저 빼앗고 말았다.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자신들 뿐 아니라 그 주변에까지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드러낸 이야기다.

협동심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양의 이야기도 경전에 나온다. ‘본생경’에 따르면 어느 마을 호숫가에 영양과 거북, 딱따구리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영양이 호숫가에 물을 먹으러 나왔다가 사냥꾼이 놓아둔 덫에 걸리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접한 딱따구리는 거북과 함께 영양을 구해내기로 하고, 사냥꾼이 오는 시간을 지연하는 동안 거북에게 이빨로 덫을 끊으라고 했다. 딱따구리가 사냥꾼의 집 앞에서 그가 나오는 것을 방해하는 동안 거북은 죽을 힘을 다해 덫을 끊어 영양을 구해냈다. 그러나 곧 거북은 지쳐 쓰러졌고, 영양 대신 거북이 사냥꾼에게 잡히게 됐다. 다시 영양은 꾀를 내 사냥꾼을 유인해 숲속에서 길을 잃게 했다. 호숫가로 돌아온 영양은 갇혀 있던 거북을 구해내 세 친구는 모두 무사히 도망갈 수 있었다. 사냥꾼에 비하면 세 동물 모두 약한 존재에 불과했지만 지혜를 모아 협동하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양은 사찰 설화에도 등장한다. 고불총림 백양사의 본래 이름은 백암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백암사로 불렸다. 그러나 조선 선조 때 환양 선사가 흰 양을 제도한데서 유래해 백양사로 고쳐 불리게 됐다. 어느 날 환양 스님이 백암산 학바위 아래서 제자들에게 ‘금강경’을 설법했다. 이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법회 3일째 되던 날 백학봉에서 흰 양 한 마리가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열심히 듣더니 눈물을 흘리고 사라졌다. 7일간 계속된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본래 하늘나라의 한 신으로서 죄를 짓고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받아 백양이 되었다. 그런데 스님의 설법을 듣고 죄를 뉘우치고 업장소멸을 하게 돼 다시 하늘로 올라가게 됐다”며 감사의 절을 했다. 다음날 꿈에서 깨어난 스님이 절 밖으로 나가자 흰 양이 죽어 있었다. 이후 스님은 흰 양을 기려 절 이름을 백양사로 고쳐 부르게 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양은 출세와 행운의 의미도 깃들어 있다. 고려 말 이성계는 어느 날 밤 양을 잡으려다 그만 뿔과 꼬리를 자르는 꿈을 꾸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무학대사에서 꿈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러자 무학대사는 “‘양(羊)’의 글자에서 뿔과 꼬리를 떼면 ‘왕(王)’자가 된다”며 훗날 이성계가 왕이 될 운명을 타고 났음을 예언했다. 무학대사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고, 이후 ‘양 꿈’은 행운을 부르는 길몽으로 해석됐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76호 / 2015년 1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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