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은 실재하는 자성이 없으며 찰나찰나는 생멸작용 이름일 뿐
망상은 실재하는 자성이 없으며 찰나찰나는 생멸작용 이름일 뿐
  • 박상준 원장
  • 승인 2015.01.06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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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치는 홍진 속 느려터질 때도 있는 세상길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다 잘못되고 말았다. 마음을 달래가면서 일을 즐기고 시 한수 읊조리고 술 한 잔 꺾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는데, 거문고 뜯고 독서하는 일이 비록 멋진 일이기는 하지만 즐거움은 오히려 투호 살 하나에 양보해야 한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깜깜하여
오욕락 운동장서 악연만 지어
윤회 벗어날길 구하지 않으면
지져지고 볶아짐 면키 어려워


잔치가 벌어졌던 금곡(金谷)과 난정(蘭亭)은 지금 황폐해졌으니 허허로운 명성이 있다 해도 사람과 더불어 함께 사라져버렸다. 대나무 숲 아래에서 무심해진 노승을 만나면 그 스님의 눈동자에 무어 중요한 것이 있으리오. 한가한 틈을 빼앗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질없이 입만 수고롭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세간을 벗어나는 일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애석하게도 이 시대의 사람들은 깜깜해져서 깨닫지 못하고 오욕락의 운동장에서 가지가지 악연을 짓고 있다. 펄펄 끓는 물속과 치솟아 오르는 불길 속에서 생사를 벗어나고자 하는 한 생각을 일으키면 좋으련만 불 속에서 연꽃을 피워내는 것과 같아서 이런 일은 실로 얻기가 어렵다. 진실로 생사윤회를 싫어하면서 두려워하는 생각을 깊이 일으켜 벗어나는 길을 구하지 않으면 지져지고 볶아지는 것을 면하기가 어렵다.

세간의 총명하다는 선비들은 태어난 이래 단지 세간의 공명부귀와 처자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즐거움만 알 뿐이어서 이것으로 세상 살아가는 인생의 가치로 여기고 있으니, 그저 이것만 알 뿐 이것을 크게 벗어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생사를 곧장 벗어난 옛날의 호걸들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것을 간파했을 뿐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연등 부처님의 처소에서 실로 수기를 받은 바가 없으니 만약 수기를 받은 바가 있다면 아(我)에 집착하는 것이 된다”고 하셨다. 부처님이 되어서도 아(我)에 집착할까봐 두려워했거늘 더구나 생사의 일로 벌어지는 업의 경우야 말해서 무엇하리오.

“다만 있는 것을 텅 비우고자 원할 뿐 절대로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지 말라”하였으니, 이 말은 방거사의 집안에서 비법으로 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처님과 조사들도 모두 그러하셨다. 전대의 성인들께서 알아차리신 것을 번갈아가면서 서로서로 전수하신 것이다.

망상은 실재하는 자성이 없다. 만약에 자성이 있다면 부처와 조사가 출현할 곳이 없다. 찰나찰나는 생멸작용의 이름이니 생멸이 없는 이치를 깨친 사람만이 찰나를 볼 수 있다. 이 말이 천하의 사람들을 다 죽일 수도 있으리라.

여환삼마제(如幻三摩提)와 금강왕보각(金剛王覺)으로 손가락 튕기는 순간에 무학(無學)의 경지를 뛰어넘을 수 있다. 이 법의 신속함이 이와 같다.

앙산 스님이 꿈에 도솔천에 올라갔을 때 백추를 친 일과 문수보살이 철위산에 들어가 갇혔던 공안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세존께서 유독 마왕의 궁전에서 심지법문을 설하셨으니 정토가 따로 없다고 비웃어서야 되겠는가.

모든 병은 무지와 애욕에서 생긴다. 무지와 애욕이 생기지 않으면 전도몽상이 사라진다. 이것을 모든 법이 생겨남이 없는 열반이라고 한다. 나는 찰나의 의미를 ‘생겨나는 그 자체에 사라짐이 들어있다’고 설명하는데 어리석은 사람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어리석은 사람에게 말해줄 수 있겠는가.

꿈·허깨비·물방울 기포·그림자·이슬·번개·아지랑이·거울 속의 모습·물속의 달그림자 비유가 있다. 이 열 가지 비유가 도에 깨달아 들어가는 기본인데 알아차리는 사람이 드물다.

망상이 생기자마자 열반의 경지가 나타나고 번뇌가 일어나자마자 불도가 완성된다. 이 법은 오안(五眼)이 완전하게 밝아진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다. “심장의 기운이 스러지면 누가 이 몸의 주인인가. 백년 지나고 나면 허명도 부질없는 것을”이라고 했는데, 여래께서 20년 동안 집착을 타파한 말씀이 이 말을 벗어나지 않는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77호 / 2015년 1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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