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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화 석포리-보문사-마애관음상

바다를 품은 섬에서 황금미소를 보다

▲ 마애관음상의 황금미소가 전하고 있다. 법(法)은 저 바다 속 깊은 곳에도 흐른다고.

"이런 좋은 경치는 실컷 원대로 봐둘 일이 제일 크고, 제일 마땅한 일이다."

뱃바람 차가운 한 겨울에도 바다 위 섬이 아늑해 보이는 건 바다가 섬을 품어서일까? 석모도 바람길을 따라 걷다보면 꼭 그래서만은 아닌 듯싶다.

겨울바람살에 흙속 깊이 몸을 사리고 있지만 저 갯벌에는 큰 집게발을 가진 농게, 한 밤의 사냥꾼 낙지를 비롯해 소라, 모시조개, 갯지렁이, 칠게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극히 작은 생물마저 마다않고 품은 섬이 있기에 가능했다. 서해안 중 단위 면적당 미생물 개체수가 가장 많은 갯벌이 석모도 갯벌이고, 여기 민머루 해변의 갯벌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하니 더 이상의 사족은 필요 없겠다.

▲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민머루 해변 갯벌에 얼음이 깔렸다.

▲ 보문사와 사하촌 전경.

저 뭍에서 이는 바람타고 왔을 풀씨도 보석처럼 빛나는 이 섬이 좋아 제 스스로 내려앉아 꽃을 피웠을 게다. 반 그늘지고 공기 중의 수분 많으면 잘 피어나는 앵초가 먼저 자리 잡았을 것이고, 서울 남산서 처음 발견돼 이름 붙여졌다는 남산제비꽃도 4월이면 여기 어디쯤서 하얗게 피어나겠지. 어느덧 소사나무들도 옹기종기 모여 서로의 가지를 기대며 댕댕하게 자라고, 그 지척엔 5월이면 암꽃과 수꽃이 한 나무에 따로따로 피는 굴참나무도 자리했을 터. 허나, 처음 이 섬을 찾은 솔씨의 생은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다.
참나무는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음수(陰樹)지만 소나무는 햇볕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양수(陽樹) 아닌가. 솔씨가 10년을 살아 소나무가 되었다 해도 참나무 가지가 햇볕을 가리면 생을 거둬야만 했다. 숲의 천이(遷移)를 소나무인들 피할 수 있으랴! 하여, 다른 나무들은 잘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서라도 소나무는 살아야 했다.

보문사 일주문을 지나 만나는 10m 높이의 푸른 소나무 앞에 걸음을 멈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줌의 햇볕을 얻기 위해 제 몸을 비튼, 나름의 고행 끝에 얻은 생명 아닌가. 그래도 아침, 저녁으로 찾아와주는 박새 소곤거림에 고독하지만은 않았을 게다. 목과 뺨이 장밋빛인 멋쟁이새며 곤줄박이도 하늘길 가다 저 가지에 앉아 쉬어갔겠지.

섬은 이렇게 온새미로 갯벌과 숲을 키워갔다.

낙가산 정상 바로 아래 툭 튀어 나온 바위, 그 누군가 ‘눈썹바위’라 이름 했단다. 1928년 주지 선주 스님 원력으로 화응 스님이 저 암벽에 관음상을 새겼다. 근대 마애불이라 해서  섣불리 볼 편견은 접어라. 거기서 기도한 불자들의 ‘효험’ 입소문이 퍼져 남쪽 금산 보리암, 동쪽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한국 3대 해수관음 성지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극락보전에서 마애관음상까지는 418개 계단을 밟고 올라야 친견할 수 있다. 번뇌 하나 누르듯 계단을 꼭꼭 밟아가며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며 산을 오르는 불자들이 평일임에도 줄을 잇는다. 첫 계단을 밟는다.

▲ 바다와 마주한 보문사 도량 전경.

이 절을 창건하고 저 산 봉우리를 낙가산이라 칭했다는 회정 스님은 이 섬을 어찌 알고 여기에 보문(普門. 635년)을 세웠을까? 금강산 보덕굴(북쪽의 관음 상주처)에서 정진하던 회정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는 남쪽으로 걸음했다. 강원도, 아니 지금의 경기 북부에도 도량 세울만한 좋은 터는 많이 보았을 게 분명한데 이곳 강화도까지 건너와 이 섬에 이르렀다. 어떤 인연이 스님의 발걸음을 이 섬으로 이끌었을까? 선정에서 이미 보았던 것일까?

한 가지 상기할 건 이 섬은 본래 세 개의 섬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1970년대 간척사업으로 하나의 섬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7개 마을로 이뤄진 이 섬은 강화군 삼산면에 속한다. ‘삼산(三山)’이라 한 건 해명산과 상봉산 그리고 낙가산 3개의 봉우리가 산(山)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정 스님이 지금의 낙가산 아래 도량을 찾았을 땐 세 섬 중 하나,  작은 섬이었다.


절이 제법 모양새를 갖춰갈 즈음(649년) 어부의 그물에 예쁘게 생긴 작은 돌덩이들이 올라왔다. 고기가 아니라 돌이었으니 처음엔 실망했을 터. 돌을 다시 바다에 버리고 그물을 던졌지만 같은 돌 무더기가 다시 올라와 도로 바다에 던졌다. 그날 밤 어부는 꿈에서 한 노승(노인)으로부터 ‘귀한 불상이니 명산의 절에 모시라’는 당부를 듣는다. 어부는 다시 바다로 나가 그물을 던져 돌을 건져 올렸고 이 돌을 낙가산 보문사에 전했다.

지금의 석굴 법당에 안치한 ‘귀한 돌’이 그 때의 돌이다. 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불, 제화갈라보살 그리고 18나한상이다. 회정 스님이 보문사를 창건하지 않았다면, 해명산과 상봉산 사이의 산봉우리를 낙가산이라 이름 하지 않았다면, 저 불상은 적어도 이 도량에 없다. 어쩌면 회정 스님이 길을 따라 이곳에 올 때까지 바다가 불상을 품고 있었을 지 모른다. 남쪽의 관음 상주처가 완성될 때를 말이다.

▲ 눈썹바위에 이르려면 418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다소 가빠진 호흡을 크게 한 번 돌려야 할 즈음 딱 맞게 쉼터가 있다. 얼핏 봐도 수백여개의 작은 병들이 쉼터 난간에 매달려 있다. 소원·소망을 적은 쪽지가 담긴 병이다. 먼저 와 있던 보살님도 손주 이름 적어넣고 있다. 쓸 데 없는 일이라 핀잔 말라. 그들은 자신의 바람을 스스로 새겨보는 것뿐이다. 뭍에서 배타고 바다 건너 와서는 다시 400개 가까운 계단을 밟고 올라와 마애불 뵙기 직전 ‘손주 건강하길 바라는’ 소망 하나 적어넣는 일이다.

▲ 낙가산 정상에서 본 석모도 해안.

시나브로 해는 황해의 수평선으로 떨어져 갈 즈음 마애관음상이 나퉜다. 한 마디로 위풍당당하면서도 소담한 멋진 마애불이다. 한참을 넋 잃듯 바라만보다 108배를 올렸다. 회정 스님의 원력, 선주·화응 스님의 신심에 드리는 감사의 절이다. 절이 끝날 무렵 마애관음상은 황금빛 미소를 자아냈다. 그 환희심 형언키 어려우니 직접 가보시라!

▲ 섬이 바다를 품었기에 황해의 노을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돌아섰다. 히야! 썰물 갯벌에 드러난 바다 속 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고, 그 너머에 붉은 노을이 깔리고 있다. 보문(普門)이 활짝 열리고 있음이다! 신라의 회정 스님도 저 노을을 보고 불사 결단을 내렸을 게 분명하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아니다. 그만한 선업을 쌓았을 것이라 믿고 누릴 일이다. 박재삼 시인 말처럼 ‘제일 크고 마땅한 일’이다

… 이런 좋은 경치는/ 실상 이 세상에서만 있는 것을 느끼면/ 죽어서는 못보는 원통함에/ 실컷 원대로 봐둘 일이/ 제일 크고, 제일 마땅한 일이다. (박재삼 시 ‘제일 크고 마땅한 일’ 일부)

섬이 바다를 품은 게 분명하다. 뭍에서 날아온 생명의 씨앗을 섬이 키워내지 않았다면 이런 장관은 빚어지지 않는다. 뱃전에서, 바람길에서 본 섬들이 아늑해 보인 건 이 때문이다. 보현사 북소리 둥둥하더니 이내 웅건한 종소리가 황해로 퍼져간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강화 외포리 선착장. 석모도 석포리 선착장까지는 배로 10분. 보문사까지는 약 8.6Km. 일주문서 마애불까지는 쉬엄쉬엄 걸어가도 30분이면 충분. 진덕이 고개서 산길을 따라 해명산을 지나 낙가산을 오르며(약 3시간) 내려다 보는 해안 경치는 일품. 낙가산에서 하산한 후 보문사 일주문으로 들어서서 마애불을 친견한다면 환희심은 두 배. 상봉산까지 오른 후 보문사로 걸음 한다면 기쁨 세 배. (보문사 032-933-8271. 외포리 선착장 032-932-6007. 석모도 가는 첫 배는 오전 7시. 30분마다 배가 있다. 마지막 배는 계절마다 다르다.)

이것만은 꼭!
 
◀ 은행나무=일주문을 지나 만나는 수령 400년의 은행나무는 강화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 높이만도 20m.

 

 

 

 

 
▶ 천인대 오백나한=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에는 1000명이 앉아 설법을 들을 수 있다 하여 천인대라 이름했다. 오백나한은 2009년께 조성. 나한의 표정이 재밌다. 와불전도 천인대에 자리하고 있다.

 

 

 
◀ 법왕궁 불상=신라 선덕여왕 때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는 불상은 보문사 석실에 안치돼 있다.

이외에도 전체 신장 10m의 와불과 용트림을 하는 듯한 밑동 지름 2.1m의 향나무, 지름 69Cm, 두께 20Cm의 맷돌도 볼만하다.

 

[1279호 / 2015년 1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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