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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선으로 비유한 옛 사람들 시가 진짜 선임을 전혀 모른 것

옛사람들이 시를 논하면서 모두 선(禪)으로 비유를 하였는데 이것은 시(詩)야말로 진짜 선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구절을 시로만 보려 하면
꼬마 아이가 어른 이야기
뜻 모른채 읽는 것과 같아
이태백 선 몰라도 도 경지

도연명(陶淵明)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꽃을 따 들고(采菊東籬下)/ 무심하게 남산을 바라보네(悠然見南山)/ 산 기운은 저녁 무렵에 더 아름답고(山氣日夕佳)/ 날던 새들이 둥우리로 함께 돌아오네(飛鳥相與還).

이 시의 끝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가운데 참된 의미가 들어있건만(此中有意)/ 말을 꺼내려 하면 이미 말을 잊어버린다네(欲辨已忘言) .
이와 같은 등등의 구절을 시로만 보려 한다면 마치 꼬마 아이가 어른들이 들려주는 상대인구을기(上大人丘乙己)를 뜻도 모른 채 읽는 것과 같은 것이다. [중국에서 어린 아이를 어르고 달랠 때 공자님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해주는 말이다. 껍데기 시어로만 시를 보는 것은 어린 아이가 어른에게 ‘상대인구을기’를 불러주는 것과 같다. 역자주]

당나라 사람들 중에는 유독 이태백(李太白)의 시가 현묘한 경지에 나아갔으니 그가 선을 알지는 못했지만 도의 경지에 나아갔다. 왕유(王維)와 같은 경우는 불교용어를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다투어가면서 훌륭한 선시라고 자랑을 한다. 요컨대 어찌 선시가 아니리오만은 다만 문자선일 뿐이어서 도연명과 이태백이 문자를 뛰어넘은 경지에 나아간 것과는 같지 못하다. [감산대사가 선시를 바라보는 눈의 크기는 선의 세계보다 크다. 불교용어에 시선이 유도되지 않는 냉철한 안목도 함께 갖추고 있다. 이태백은 선시를 쓴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감산대사가 자신의 시를 진정한 선시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그냥 무심하게 웃으리라. 역자주]

내가 젊었을 때 진사왕(陳思王)의 ‘낙신부(洛神賦)’를 읽었다. 그 내용 중에 “날렵한 자태는 놀라서 날개를 펼친 기러기와 같고 흘러내리는 몸매는 용이 노니는 것과 같다(翩若驚鴻 婉若遊龍)”는 말이 있는데, 낙신을 형용하는 말이다. 놀라서 날개를 편 기러기는 볼 수 있지만 노니는 용은 어떤 모습인지 아직 모르겠다고 늘 여기고 있었다. [‘낙신부’는 칠보시(七步詩)로 잘 알려져 있는 진사왕 조식(曹植)의 작품이다. 중국의 위나라 222년에 조식이 조정에 진출했다가 자신의 땅으로 돌아가는 길에 낙수를 지나게 되었다. 낙수의 여신에게 연모의 정을 느끼게 되었지만 사람과 신의 세계가 달라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심정을 표현했다. 여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구절로 가득차 있다. 감산대사는 여신보다는 노니는 용의 진짜 자태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바닷가에서 홀연히 피어오르는 구름을 보고 의문이 해소된다. 역자주]

그런데 바닷가에서 거처할 때였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아침노을이 허공에 걸려있고 해의 붉은 기운이 아직 비치지 않고 있었다. 만리에 구름이 없어서 바다와 허공이 한 색깔로 이어져 있었다. 홀연히 태허공에 조각구름들이 갑자기 일었다. 바닷물이 하늘에서 거꾸로 흘러내리는데 마치 은하수가 구천에 걸려 있는 모습과 같았다. 크게 기이하다고 여기고 있는데 갑자기 한 마리의 용이 나타났다.

구름 속에서 꿈틀거리는데 머리에 뿔이 나있고 비늘도 달려있는 것이 손바닥에 있는 물건처럼 분명하였다. 허공에서 바다로 떨어져 내리는데 그 꿈틀거리는 모양이 미묘해서 말로 설명할 수 없었고 세간에 있는 물건으로는 비유할 수가 없었다. 비로소 옛사람들의 말이 그저 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에 생각을 해보니 용의 경우뿐만 아니라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자 할 때 위의를 갖추는 것도 이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대인(大人)의 발자취를 용상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79호 / 2015년 1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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