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제1칙 무제와 달마의 문답(1)

‘무공덕’을 꿰뚫는다면 직접 달마 만났다고 인정해주리라

▲ 원오 선사는 공덕에 대한 일체의 말과 생각이 끊긴 상태에서 “어째서 공덕이 없는가?” 하고 참구할 것을 재촉한다.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김명국의 ‘노엽달마도’.

‘벽암록’ 제1칙은 양나라 무제와 달마대사와의 문답이 주된 내용이다.

보리달마(菩提達磨)는 중국 선종의 초조(初祖)이다. 전해 오는 기록에 따르면 그는 남인도 향지국 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의 법을 이었다. 인도에서 선의 제28조인 그는 6세기경에 선법(禪法)을 전하기 위해 해로로 중국 남쪽에 도착했다. 그는 양나라 황제 무제와 문답을 나누었으나 아직 시절 인연이 무르익지 않은 것을 알고 양자강을 건너 낙양 근처의 숭산으로 들어갔다. 그곳의 소림사에서 9년간 오로지 면벽(面壁)하면서 중국에 선의 뿌리를 내렸다.

절 지은 공덕 묻는 양무제에
달마대사 “공덕 없다” 답변
언어 뛰어넘는 진리의 표출

수영방법 이론적으로 알아도
실제 수영 잘하는 것과 별개

달마, ‘머릿속 깨달음’ 경책
선은 온몸으로 깨달음 체험

원오극근, ‘무공덕’ 참구 재촉
화두 깨치면 그가 곧 ‘달마’

양나라 무제(464~549)는 불심천자(佛心天子), 황제보살이라 불릴 정도로 불교를 신봉하고 보호한 왕이다. 그는 수많은 사원과 불상을 조성하고 불서(佛書)를 찬술하는 등 대단한 불사와 보시를 행하였다. 또한 불교 교리에 통달했으며 직접 경전을 강의하기도 했다.

양무제의 불교 행적 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사항은 계율을 철저히 지킨 점이다. 스스로 육식과 술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승려들이 고기와 술을 먹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단주육문(斷酒肉文)’을 발표하여 금지령을 내렸다. 더구나 종묘에 산 제물을 바치는 것은 중국의 전통적인 관행이었음에도 이를 폐지하고 과일과 채소만을 사용함으로써 신하들의 격렬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또한 그는 사신공양(捨身供養)을 네 번이나 하였다. 원래 사신공양이란 부처님께 공양하기 위해 또는 불법을 보호하기 위해 육신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몸을 불태우는 소신(燒身) 공양도 그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양무제가 행한 사신공양은 황제의 옷 대신에 법복을 입고 사원의 노비가 되어서 청소·빨래 등의 봉사활동을 하고 재물을 보시하는 것이었다. 노비에서 황제로 복위하는데 몸값으로 사찰에 많은 재물과 거액의 금전을 지불하였다. 한 번 복위하는데 1억만 전이라는 큰돈을 내었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런 불심천자 양무제가 불교의 발상지 인도에서 유명한 대사가 왔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는 큰 기대를 가지고 달마대사를 궁궐로 초청했다. ‘벽암록’ 제1칙의 본칙에 대한 ‘평창(=해설)’에서 원오 선사는 달마대사와 양무제가 처음 만났을 때 주고받은 문답을 소개하고 있다. 무제는 달마대사를 만나자마자 의기양양하게 물었다.

“짐은 절을 짓고 승려를 양성했습니다. 무슨 공덕이 있습니까?”

달마대사는 말했다.

“공덕이 없습니다(無功德).”

‘선한 일을 하면 좋은 과보를 받는다’는 선인락과(善因樂果)의 이치는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기본이다. 황제의 신분으로 불교의 흥륭에 대단한 기여를 했던 양무제, 그는 당연히 큰 공덕이 있다는 대답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날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무공덕(無功德)” 곧 “공덕이 없다”는 벽력같은 일갈이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다. 그 순간 무제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으로 “아니, 내가 잘못 들었나? 공덕이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문답에서도 달마대사의 대답은 무제에게는 완전히 동문서답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천하를 통치하는 불심천자 양무제와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와의 역사적인 문답의 결말은 양무제가 완패를 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왕법(王法)이 불법(佛法) 위에 군림하던 시대에 달마대사가 목숨을 보존한 것은 역시 불심천자 양무제의 자비심 때문이었으리라.

‘방광반야경’을 강의할 정도로 불교 이론에 정통해 있던 양무제가 어째서 달마대사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야만 했을까? 그것은 선(禪)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무제에게 달마대사가 자신의 선적(禪的) 경계에서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달(진리)을 가리키는 손가락(교리)에만 묶여 있던 양무제로서는 달마대사가 보여 주는 달 그 자체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고 영문을 몰랐던 것이다.

▲ 양무제와 달마의 대화는 역사적 진실 여부를 떠나 중국에 선이 처음으로 전래됐을 때 불교계의 혼란스러운 정황을 잘 보여 준다.

양무제와 달마대사의 문답은 역사적 진실 여부를 떠나서 중국에 선이 처음으로 전래되었을 때 불교계의 혼란스러웠던 정황, 곧 불교 교학과 선법(禪法)이 갈등을 빚는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그것은 달마대사가 살해 당할 위기를 몇 번이나 겪었다는 평창의 다음의 일화에서도 짐작이 간다.
“후위(後魏, 북위)의 광통 율사와 보리류지 삼장은 달마대사와 토론을 했다. 달마대사는 상(相)을 배제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켰다. 도량이 좁았던 그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여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켜 여러 차례 독약으로 죽이려 했다. 그러기를 여섯 번에 이르자 달마대사는 교화의 인연도 다하고 법을 전할 사람도 생겼기에 마침내 더 피하려 하지 않고 단정히 앉아 입적했다. 웅이산(熊耳山) 정림사(定林寺)에서 장례를 치렀다.”

그러면 달마대사가 전한 선법이란 어떤 것일까? 원오 선사는 대사가 중국에 온 이유를 이렇게 제창하고 있다.

“달마대사는 우리 중국에 대승의 근기를 갖춘 사람이 있음을 멀리서 아시고 마침내 바다를 건너고 먼 길을 걸어와, 불타의 정신(心印)을 마음에서 마음으로 직접 전하여 미혹으로 헤매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것은 ‘문자에 매이지 않고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서 본성을 보아 부처가 된다(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는 것이다.”

달마대사가 전한 선법은 ‘문자에 매이지 않고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서 본성을 보아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선에서는 보통 ‘문자에 매이지 않고(不立文字)’ 다음에 ‘교외별전(敎外別傳)’을 하나 더 추가하여 선이 지향하는 바를 천명한다. ‘교외별전’은 ‘교리를 초월해서 깨달음의 체험에 의해 진리를 전한다’는 의미이다. 이들 구절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바는 깨달음은 경전 속의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전이 가리키고 있는 진리를 직접 체득(體得)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언어 이전의 소식’의 체득이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달마대사의 “공덕이 없다”는 말도 언어나 문자를 매개로 분석해서 나온 답이 아니라 언어를 뛰어넘어 직접 본 진리를 그대로 표출한 말이다. 말하자면 깨달음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 준 것이다. 이런 선적 경지에서 나온 대답을 불교 교리라는 언어의 숲 속에 주저앉아 최상의 진리에 도달하고자 했던 양무제가 무슨 수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불교를 교학적으로만 아는 사람과 선 수행자의 차이는 수영하는 법을 이론적으로만 아는 것과 실제로 수영을 할 줄 아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수영하는 법에 대해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은 물에 뜨는 법이나 헤엄치는 방법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생각대로 잘 헤엄쳐지지가 않는다. 일단 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물을 보기만 해도 겁이 난다. 물에 들어가서도 이론대로 몸을 움직여 보지만 헤엄은커녕 물에 뜨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알음알이로만 아는 수영’이다. 그는 수영에 관한 말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진짜 수영은 모른다. 그러나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실제로 물에 들어가 직접 몸을 움직여서 각고의 노력 끝에 헤엄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것이 ‘몸으로 체득한 수영’이다.

마찬가지로 불교 교리만으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이들은 말이나 문자로 표현된 깨달음의 세계를 지레짐작해서 “아,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아는 깨달음이란 역시 ‘알음알이로만 아는 깨달음’이다. 하지만 선에서의 깨달음이란 말이나 문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안 머릿속의 깨달음이 아니다. 본인이 직접 온몸으로 체험한 깨달음이다. 이 깨달음을 위해 선 수행자는 밤낮으로 묵묵히 가부좌하고 앉아 육체적 고달픔은 물론 끈질긴 망상과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 내며 온몸으로 화두를 든다.

그런데도 달마대사가 “공덕이 없다”고 한 것을 ‘유루의 공덕(번뇌의 때가 묻어 있는 공덕)’이니 ‘무루의 공덕(번뇌가 전혀 없는 청정한 공덕)’이니 하면서 이론으로 그 뜻을 찾는다면 선(禪)은 이미 거기 없다. 그러면 “공덕이 없다”는 달마대사의 대답에 대해 원오 선사는 어떻게 제창하고 있을까?

“일찌감치 구정물을 정면에서 뒤집어씌워 버렸다. 이 “공덕이 없다”를 꿰뚫는다면 직접 달마대사를 만났다고 인정해 주겠다. 말해 보라. 절을 짓고 승려를 양성했는데 어째서 전혀 공덕이 없는가? 그 뜻은 어디에 있는가?”

“일찌감치 구정물을 정면에서 뒤집어씌워 버렸다”는 것은 달마대사가 “공덕이 없다”고 함으로써 상대로 하여금 공덕에 대한 일체의 말과 생각을 끊게 했다는 뜻이다. 원오 선사는 이렇게 공덕에 대한 일체의 말과 생각이 끊긴 상태에서 “어째서 공덕이 없는가?” 하고 일념으로 참구하고 또 참구할 것을 재촉한다.

그리하여 불현듯 그 뜻이 뚫린다면 그는 1500년 전의 달마대사를 지금 이 자리에서 직접 만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가 곧 달마대사이고, 달마대사가 곧 그이다. “공덕이 없다”를 꿰뚫을 자 없는가?

무공덕(無功德)! 무공덕! 온 천지에 무공덕의 비가 내리네.

오곡도명상수련원 원장 www.ogokdo.net

[1279호 / 2015년 1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