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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용운 ‘선사의 설법’

기자명 김형중

임 사랑한 마음 노래한 설법시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 봐서, 나의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들였습니다.

‘님의 침묵’

사랑의 줄은 번뇌의 속박
끊음은 번뇌를 깬 깨달음
부정과 역설적인 표현이
만해시의 미학적인 특징

만해(1879~1944)는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전통적인 승려의 독신 수행을 부정하고 취처를 주장하는 이단적인 인물이다. ‘선사의 설법’에서는 선사의 설법 즉, 불교의 교법을 부정하는 살불살조의 독창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만해는 자신이 처한 현실 세상이 마왕이 지배하는 일제 식민지임을 직시하고 시대적 숙명과 굴종을 거부하고 분연히 일어나 그것을 초극하는 강한 의지를 ‘선사의 설법’ 시를 통해 게시한 것이다. 어쩌면 그는 한국불교사에서 최초로 현실과 현상을 무시하고 교리와 이론에 빠진 불교의 관념주의를 타파하고, 실천적 행동으로 역사적 현실의 갈등과 문제를 극복하는 살아서 꿈틀거리는 활선(活禪)주의자였다. 그의 불교관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지상정토주의이다.

‘선사의 설법’은 일념으로 임을 사랑하는 마음을 노래한 한 편의 설법시요 법문이다. 부처님이나 선사의 교법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라고 하였다. ‘사랑의 줄’은 번뇌의 속박을 뜻한다. ‘사랑의 쇠사슬과 줄을 끊음’은 번뇌를 타파한 깨달음이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선가의 전통적인 교법은 무아·무념·무심이다. 애착에서 벗어나면 해결된다. 집착을 내려놓으면 된다. 방하착(放下着)이다. 그러나 만해는 어떤 고통을 더 감수하더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임만은 잊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 선사는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라고 읊고 있다.

만해가 사랑하는 임은 죽음보다도, 종교적 신념보다도 높은 절대적인 임이다. 그 임은 잠시  이별한 임이요, 잃어버린 조국이다. 당시 김소월이 ‘진달래꽃’에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라.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라.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러 밟고 가시옵소서”하며 미련 없이 고이 보내는 임이 아니라, 꼭 만나야 하는 임이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임이다.

만해에게서 잃어버린 조국은 무엇으로 환치될 수 없는 절대적 종교 신념이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찾아와야 할 귀명원행(歸命願行)이다. 생사를 초월한 임에 대한 사랑이다.

만해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꾸짖는 비승비속적인 생활을 했던 조선의 유마힐이다. 그래서 그는 “대해탈은 속박에서 얻는다”고 하였다. 부정과 역설적인 표현이 만해시의 미학적 특성이다. 번뇌가 깨달음을 위한 씨앗이다. 생사가 열반이다. 만해는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유신(維新)이란 무엇인가, 파괴의 자손이요. 파괴란 무엇인가, 유신의 어머니다”라고 설파하였다.

“사랑할 임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목숨을 바쳐서 사랑할 임이 있다면 그 사람 삶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김형중 동대부중 교감·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280호 / 2015년 1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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