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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거위를 살린 비구(하)

이익 앞엔 염치도 모르는 세상
피 흘리며 통곡하지 않으려면
어리석다 할 만큼 계율지켜야

“좋은 말로 할 때 내놔.”
“누가 당신 구슬을 가져갔다고 이러십니까?”“당신 말고 누가 있어. 그럼 딴 사람이 훔쳐갔단 말이야?”

장인은 눈알을 부라리고 곧장 대문을 닫아버렸다.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그래, 꼭꼭 잘 숨겨봐라.”

장인은 씩씩거리며 비구의 옷을 벗기려 들었다. 하지만 비구는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속살을 내보이지 않았다. 주먹을 휘두르고 발로 차도 비구는 끝내 옷을 벗지 않았다.

“지금 나와 싸워보겠다는 거냐?”
“당신과 싸울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구슬을 훔치지 않았다면 옷을 벗어서 증명해.”
“남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비구는 어떤 곤란한 상황에서도 항상 옷으로 몸을 가리고 속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죽어도 벗지 않겠다고?”
“결백을 증명하려고 벌거숭이가 되느니 차라리 위의를 지키다 비구답게 죽겠습니다.”

장인은 밧줄로 비구를 묶고 몽둥이로 후려졌다. 그 매를 맞으며 비구는 부처님을 떠올렸다.

‘부처님은 모든 생명체를 친자식처럼 생각하는 분이시다. 그런 분의 제자인 내가 어찌 생명체를 해칠 수 있으랴.’

모진 매질에도 도무지 반응이 없자, 장인은 몽둥이를 던지고 비구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난들 이러고 싶겠소? 그 구슬이 없으면 난 굶어죽습니다. 가난이 죄군요, 가난이 죕니다. 이 가난 때문에 스님에게 이리 몹쓸 짓까지 하니. 그러니 제발 구슬을 돌려주시오.”
“저는 정말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자비심을 버리지 말고 부디 저를 그만 괴롭히십시오.”

장인은 눈물로 호소하였다.

“임금님께서 곧 구슬을 찾으실 거요. 그 일만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한군요. 스님은 출가자 아닙니까? 출가한 사람이 무슨 욕심이 남아 이럽니까?”

비구가 미소를 지으며 장인에게 말하였다.

“저에게 아직 욕심이 남아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구슬은 아닙니다. 제가 욕심내는 건 지혜로운 자들의 칭찬이고,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이고, 또 모든 고뇌로부터 해탈하는 법입니다. 제가 욕심내는 건 생사를 초월한 진리의 길이지 당신의 구슬이 아닙니다. 저는 낡은 옷을 걸치고 걸식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나무그늘 아래에서 삽니다. 이것이면 저는 만족합니다. 뭐 하러 도둑질을 하겠습니까.”
“더 말해봐야 소용없겠군.”

장인은 밧줄을 더욱 단단히 옥죄고 사정없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쓰러진 비구의 코와 입에서 피가 터지고, 눈과 귀에서까지 피가 흘렀다. 그때 구슬을 삼켰던 거위가 흘린 피를 빨아먹으려고 비구에게 달려들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장인은 몽둥이로 거위를 내려쳤고, 거위는 즉사하였다. 비명소리에 놀라 몸을 일으킨 비구는 거위가 죽은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모진 매질에도 미소를 잃지 않던 그가 슬퍼하자 장인은 의아하였다.

“이 거위가 뭐라고 이럽니까? 당신 가족이라도 됩니까?”

그때서야 비구는 모든 사실을 말하였고, 장인은 거위의 배를 갈라 구슬을 꺼냈다. 피 묻은 구슬을 손에 들고 장인은 큰 소리로 통곡하였다.

“당신은 거위의 생명을 보호하려고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는데, 나는 이 구슬 하나 때문에 온갖 몹쓸 짓을 저질렀군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사람도 고깃덩어리로 보는 세상이니, 거위 한 마리 살리자고 목숨 건 비구가 어리석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선 소신과 원칙은 고사하고 염치도 모르는 세상이니, 비구의 위의를 따지며 옷깃을 풀지 않은 비구가 고지식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피 묻은 마니주를 손에 쥐고 통곡하지 않으려면 그 비구의 어리석음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계율, 그것은 나만의 행복이 아닌 모두의 행복을 위해 꼭 필요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282호 / 2015년 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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