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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은-그 꽃

기자명 김형중

심오한 인생을 노래한 철리시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순간의 꽃’

고은(1933~현재)은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한국의 국민 시인이다. 굴곡이 많은 한국현대사의 중심에서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하여 네 차례나 투옥된 민주투사이다. 그는 민중과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실천하는 양심과 지성을 통해 드러낸 작가의 정신이 투철한 시인이다. 시인의 평가는 시로써 한다. 고은은 시집, 소설, 수필, 평론 등의 저술이 150권이 넘으니 대단하다. 그의 시가 모두 명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독자의 사랑을 받는 절창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가 만약 지금과 같이 왕성한 필력으로 100세까지 살면 세계 최고 다작 시인으로 노벨상을 수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열다섯자에 불과한 ‘그 꽃’
그 꽃은 ‘사람꽃’이 아닐까
바쁜 삶 속에서 여유 갖고
자기 살펴보면 인생 보여

일본의 전통시인 하이쿠가 5-7-5의 음절로 17자시인데, 고은의 ‘그 꽃’은 15자 밖에 안 되는 짧은 시다. 긴 여운을 남기는 심오한 인생을 노래한 철리시(哲理詩)이다. 여인의 치마와 시는 짧아야 좋다는 말이 있다. 시는 압축과 운율이 생명이다. 뱀처럼 길면 긴장감이 감소한다. 고은은 이름도 두 자다. 이름이 그럴싸하게 곱고 예쁘지 아니한가? 고은의 대표시가 ‘문의 마을에 가서’라고 하지만 필자는 ‘그 꽃’이 좋다.

물론 시인은 그의 산문집인 ‘오늘도 걷는다 -내 시의 꿈’에서 “나의 작은 노래(선시)들이 한국 고대 가요의 단조로운 단형(短型)이나 옛 선승들의 임종게의 서너 줄을 닮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사실인즉 그것들과도 별개이다. 시인 게리 스나이더는 나의 선시(禪詩)를 두고 어떤 것과도 가령 하이쿠나 그리스의 단시 따위와도 다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고 자기 시의 독자적이고 독창적인 시론을 밝히고 있다. 또 거기서 “꽃을 바치는 마음이 바로 시의 마음이라고 나는 믿는다”고 하였다.

시인은 ‘그 꽃’에서 산을 올라갈 때는 못 본 꽃이 여유를 가지고 내려올 때는 예쁜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노래하고 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이가 들어 철이 들고 깨닫고 보면 지나온 세월에서 후회스러운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동안 안 보였던 일, 못 보고 스쳐 지나갔던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생각한다고 한다. 깨닫고 보면 평소에 보지 못한 인생의 이면(裏面)이 보인다. 자신의 삶이 잘 나갈 때나 높은 자리에 올라갈 때는 주위의 남의 어려운 모습이 안 보인다. 자신의 잘난 모습만 보인다. 마음이 없으면 안 보인다. 마음이 어두우면 안 보인다. 철이 들고 깨달으면 그때부터는 다 보인다. 망나니처럼 말썽만 부리던 사람이 철이 나면 제법 사람 노릇을 한다.

혜민 스님은 멈추면 보인다고 하였다. 헐떡거리며 바쁘면 주위를 살필 수가 없다. 앞만 보고 달린다. 바쁜 삶 속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잠시라도 자신을 살펴보는 선정을 하면 어려운 삶 속에서도 아름다운 인생의 모습이 보인다. 여유가 있고 깨달음을 얻으면 귀가 먹어도 들리고, 눈을 감아도 보인다. 천이통이 열리고 천안통이 열린다.

원래 ‘그 꽃’이란 시는 2001년 ‘문학동네’에서 펴낸 짧은 시 모음집인 ‘순간의 꽃’ 시집 속에 있는 시로써 작품에 별개의 제목이 없다. 그러던 것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자연스럽게 ‘그 꽃’이란 제목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그 꽃’은 어떤 꽃일까? 비탈길 언덕에 핀 야생화일까. 장미화일까. 국화일까. 아니면 진리의 꽃인 대방광화엄부처님일까. 마음이 안정되어 여유가 있어 심안(心眼)이 열리면 각자에게 그 꽃이 보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화두처럼 생각하던 ‘그 꽃’이 ‘사람꽃’을 상징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부처이다. 아니면 석가의 임인 소외받고 무시(無視)받고 있는 민초 중생 아닐까.

김형중 동대부중 교감·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282호 / 2015년 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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