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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경림과 신유림-신라 경주의 아란야

사찰림은 단순한 숲 아닌 불교적 우주관 응축된 현장

▲ 춤추는 소나무들로 이루어진 신유림. 이 숲의 위쪽은 선덕여왕릉, 아래쪽은 사천왕사의 가람터가 있다.

이 땅에 사찰 숲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사찰림의 기원에 얽힌 해답의 실마리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천경림(天鏡林)과 신유림(神遊林)으로 풀 수 있다. ‘삼국유사’ 권3 흥법3 아도기라(阿道基羅)에는 천경림과 신유림을 경주에 있던 전불(前佛)시대 7곳의 가람터(七處伽藍之虛) 중 첫 번째와 여섯 번째 절터로 언급하고 있다. 바로 ‘숲이 사찰’이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신라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아란야 용어 이땅에 도입

삼국유사 천경림·신유림을
전불시대의 가람터로 언급

불교의 원활한 정착 도우려는
종교적 목적으로 해석 가능

신유림에 건립된 사찰왕사는
사찰림의 형성과정 실마리

‘숲이 사찰’이었음을 나타내는 말은 아란야(阿蘭若)다. 이 단어는 aran.   ya(산스크리트어)나 aran ~  n ~ a(팔리어)를 음역한 말로 ‘한적한 삼림’이나 ‘마을에서 떨어져 수행자들이 머물기에 적합한 곳’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불교사전’은 아란야를 공한처(空閑處)나 원리처(遠離處)라고도 정의하고, 더 나아가 사찰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은 밝히고 있다. 결국 마을에서 떨어진 숲이 바로 사찰이었음을 아란야는 가리키는 셈이다.

아란야란 용어는 옛 기록에도 등장한다. ‘삼국유사’ 지론 4권에는 ‘삼장법사가 아란야법을 행하여 일왕사에 이르자 절에서는 큰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고 언급된 사례나 ‘월인석보’ 권7에는 “아란야는 한가롭고 적정한(조용한) 곳이라는 뜻이다. 또 말다툼이 없다는 뜻이니, 마을에서 5리나 떨어진 곳이라서 세간과는 힐난하지 아니하는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옛 기록을 참고하면 아란야는 불교의 전래와 함께 이 땅에 도입된 용어임을 알 수 있다.

전불시대 7곳의 가람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학계에서는 삼국 중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인 신라의 불교 수용과정에 발생했던 재래 신앙과 외래 종교 간의 갈등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석가모니의 탄생 이전부터 해동 신라 땅은 부처와 인연이 깊은 불국토(전불시대)였으며, 석가모니 이전에 존재했던 일곱 부처의 절터(7처가람 터)도 이미 있었다는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종교 간의 충돌을 줄일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왜 하필이면 숲이었을까? 그 답은 신라시대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경주의 계림과 나정 숲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다. 계림은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의 탄강설화가 전해지고 있는 숲이고, 나정 숲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탄강전설이 녹아 있는 숲이다. 한 씨족이나 한 부족의 근원으로 이들 숲을 언급한 이유는 그 당시 사람들이 성지(聖地)나 성소(聖所)로 여겼던 신성한 숲[神林]을 언급함으로써 신성도 함께 부여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권에서 고대 인류는 나무와 숲을 천지창조의 근원(우주수),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나 신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통로(세계수)로서 숭배하였고, 우리 역시 오늘날까지 서낭나무, 당산나무, 솟대와 같은 신수 숭배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우주수 또는 세계수의 대표적 사례는 단군신화에서 찾을 수 있다. ‘삼국유사’ 기이편 고조선조에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이곳을 신시(神市)라고 불렀는데 이 분이 환웅천황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신성한 박달나무[神壇樹]가 하늘과 땅의 연결 통로로 인식된 사례처럼, 나무와 숲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신성했고, 그래서 숭배의 대상이었다.

▲ 신단수의 원형이 남아 있는 원주 신림(神林)의 성황림(천연기념물 제93호). 당집 오른쪽에 남서낭인 전나무가, 왼쪽에 여서낭인 음나무가 있다.

신라 경주에는 계림과 나정 숲 이외에도 오리수, 한지수, 왕가수, 입도림, 남정수, 어대수, 고양수, 율림 등의 옛 숲이 천경림, 신유림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이들 숲 중에 왜 하필 천경림과 신유림이 일곱 부처의 절터로 지목되었을까? 아쉽게도 그 이유에 대해서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하늘을 비추는 숲[天鏡林]’과 ‘신들이 노니는 숲[神遊林]’이란 이름을 통해서 그 이유를 상상할 수 있다. 이들 숲은 그 이름처럼,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을 상징하는 고대신앙의 성지 또는 토착신앙의 성소였을 것이다. 천신이 내려와 지신과 결합한 장소로서 신성하게 여기던 숲을 전불시대의 가람 터라고 직시한 이유는 외래 종교인 불교의 원활한 정착을 도모하기 위한 종교적 목적이라고 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다. 그리고 비록 중국을 거쳐 신라에 전파되었을망정, 불교의 뿌리는 숲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 천경림과 신유림의 위치. 경주 중앙(O)의 첨성대 바로 아래쪽에 계림, 남남서쪽에 나정 숲, 서쪽에 천경림, 남동쪽에 신유림이 자리 잡고 있다.

천경림과 신유림은 어떤 숲이었을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천경림은 ‘경주 남천의 북쪽 언덕에 동서방향으로 약 500m의 길이로 형성’된 숲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숲의 북쪽에서 발견된 흥륜사지의 초석과 ‘신라 법흥왕 때 천경림을 크게 벌채·가공하여 동량재로 생산하였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비추어 볼 때, 꽤 굵은 나무들이 자라는 무성한 숲이었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다.

신유림은 경주시 배반동 낭산(狼山) 남쪽 신문왕릉 근처에 있던 숲이다. 신유림의 구체적 위상은 ‘삼국사기’로 확인된다. ‘삼국사기’ 권3 실성이사금조(實聖尼師今條)에는 “낭산에서 구름이 떠올라 바라보매 마치 누각과 같고, 향기가 짙게 퍼지며 오랫동안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왕이 말하되, 이는 반드시 선령(仙靈)이 하늘에서 내려와 놂이니, 아마 이 땅이 복지(福地)일 것이라 하여, 이로부터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는 세월이 흐른 뒤 천경림에는 아도의 건의에 따라 신라 최초의 가람인 흥륜사가 진흥왕 때(544년) 세워졌고, 신유림에는 문무왕 때(679년) 명랑법사에 의해 사천왕사가 건립되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기록에 비추어 볼 때, 이들 숲은 전불시대 이후에도 변함없이 신라인들에게 신성한 장소였던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신성한 숲의 위치이다. 계림이 첨성대와 월성 가운데 위치하고, 나정 숲은 첨성대에서 남서쪽으로 약 2km 지점에 있음에 비해 천경림은 첨성대에서 정서향으로 약 1.5k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첨성대에서 정서향에 자리 잡은 천경림과 달리 신유림은 첨성대 남동쪽 1.5km 지점인 낭산(狼山) 남쪽에 있다. 천경림과 신유림은 물론이고 계림과 나정 숲 같은 신성한 숲들이 첨성대를 기준으로 2km 내외의 거리에 서향이나 남향(또는 남동향)에만 자리 잡고 있을 뿐, 경주의 북부지역에서 나타나지 없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신유림에 건립된 사천왕사는 숲과 사찰의 관계뿐 아니라 사찰림의 형성과정을 엿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신유림은 선덕여왕의 미리 알아낸 세 가지 이야기[知機三事]와 관련이 있다. 선덕여왕의 지기삼사란 향기 없는 모란꽃 이야기, 왕이 생전에 자신이 죽을 날을 예언하며 도리천(忉利天)에 장사 지내달라고 한 이야기와 함께 여근곡에 적군이 몰래 침입한 사실을 미리 알아내 섬멸한 이야기이다. 이 세 가지 이야기 중에 사찰림의 기원과 관련 있는 이야기는 두 번째 이야기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덕여왕이 부처님의 나라인 도리천에 장사 지내달라고 당부하자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신하들이 어디가 도리천이냐고 물었더니 낭산(狼山) 남쪽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뒤 문무왕이 선덕여왕릉 아래쪽에 있는 신유림에 사천왕사를 건립하고 호국신인 사천왕을 모셨을 때에야 후손들은 여왕의 유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천왕이 거처하는 곳 위쪽이 부처님의 나라인 도리천이므로 사천왕사 위쪽에 있는 낭산이 바로 부처님의 나라라는 이치였다.

도리천과 사천왕의 관계는 불교의 우주관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우주가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의 삼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인식한다. 욕계 한가운데에는 수미산(須彌山)이 있다. 수미산 아래쪽에는 사람들이 축생(짐승)과 함께 사는 염부제(閻浮提)가 있다. 염부제 아래 가장 밑바닥에 지옥이 있고, 그 위에 아귀(餓鬼)의 세계가 있다. 수미산 중턱에는 인간세계보다 훨씬 살기 좋은 사천왕이 있고, 그 꼭대기에 도리천(하늘나라)이 있다. 사천왕은 500살 먹은 천인(天人: 사천왕)과 천사들이 살고 있으며, 도리천에는 제석천(帝釋天)이라는 1000살 이상 된 천주(天主)가 살고 있다고 한다. 불교적 우주관에 따르면 사천왕이나 도리천은 신들이 사는 신성한 곳이다. 결국 낭산은 불교적 우주관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신들이 노닐던 숲(신유림)에 호국신인 사천왕의 거처(가람)로 터 잡은 이야기는 사찰림이 단순한 숲이 아니고, 불교적 우주관이 응축된 현장임을 증언하고 있다.

전영우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  

[1282호 / 2015년 2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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