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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 이후 26명 사망…부당해고는 살인입니다”

김정우 쌍용차 노조 전 지부장

▲ 김정우 전 지부장은 왜곡된 사회 시스템을 방치하면 쌍용차 사태처럼 어느날 나의 문제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정우(54) 쌍용차 노동조합 전 지부장의 생의 초침은 2009년 뜨거웠던 7월에 멈춰서 있다. 회사 측이 노동부에 2405명의 정리해고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길고 긴 악몽은 시작됐다. 느닷없는 해고통지에 동료들은 공장점거 총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나 77일간의 점거투쟁은 헬기와 34개 중대를 동원한 경찰의 폭력 앞에 처참히 무너졌다. 평범했던 일상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가정은 파탄 나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동료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 해고 이후 5년6개월. 자살이나 병으로 26명이나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그는 2011년 7월 쌍용차 지부장이 됐다. 그리고 천막투쟁과 단식, 오체투지를 하며 치열하게 싸웠다. 쌍용차가 중국 상하이 자본에 팔릴 때 회사에는 1조2000억원이라는 잉여금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상하이 자동차에 쌍용차를 팔아버렸고 몇 년 뒤 상하이 자동차는 기술과 돈을 가로챈 뒤 회사를 떠나버렸다. 그 책임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이 짊어져야 했다. 회사 측은 회계조작과 분식회계를 통해 부실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노동자를 해고했다. 고등법원에서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때 복직의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고등법원의 판결을 정반대로 뒤집어버렸다. 지금도 두 명의 동료가 쌍용차 평택공장 70m 굴뚝에 올라 차가운 겨울바람과 맞서며 해고자 복직을 위해 싸우고 있다. 벌써 60일이 넘었다.

회사 분식회계 부실 부풀려
2405명 직원 무더기 해고

두 아이 남기고 떠난 부부
통장엔 단돈 4만원이 남아

덕수궁 대한문에 천막치고
동료들 영정 붙들고 투쟁

두 동료 70m 철탑 위에서
칼바람 맞으며 지금도 농성

불교상담치유와 템플스테이
상처입은 동료들에게 큰 힘

쌍용차는 노동자 우리 문제
누구에나 닥칠 수 있는 불행

-5년6개월 만에 사측과 협상이 시작됐다. 잘 진행되고 있나.
두 번째 협상을 했지만 성과는 없다. 우리 요구는 세 가지다. 해고자 187명의 전원복직, 손배소가압류해제, 그리고 유가족 대책 마련이다. 해결책은 사측이 쥐고 있다. 지금 두 명의 동료가 70m 굴뚝에 올라 칼바람 맞으며 농성 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해직자들이 복직 되면 티볼리를 사겠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티볼리가 제법 잘 팔리고 있다는 말도 있는데 복직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나.
전혀 그렇지 않다. 티볼리가 잘 팔려 흑자로 전환되면 그때 복직시키겠다는 것이 사측의 입장이다.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티볼리를 잘 팔려면 먼저 해직자를 복직시켜야 한다. 그래야 선순환이 되고 티볼리 구매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다.

-2009년 해직 이후 목숨을 끊거나 잃은 사람이 26명이나 된다.
14번째 돌아가신 분은 무급휴직자 아내였다.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10개월 후엔 당사자인 무급휴직자도 돌아가셨다. 사인은 생활고에 따른 과로사였다. 세상에 아이 둘만 남았고 당시 통장 잔고는 4만원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기력함에 대한 반성이 일었다. 2011년 9월 쌍용차 지부장이 됐다. 그 뒤로도 끊임없이 죽어나갔다. 한 달에 4명이나 운명을 달리할 때도 있었다. 거리로 뛰쳐나갔다. 2012년 덕수궁 대한문 앞에 천막을 쳤다. 그곳에서 죽은 동료들의 영정을 부여잡고 울며 싸웠다. 천막을 칠 때 경찰의 방해로 한 달이나 걸렸다. 그러나 그 천막은 1년이 채 되지 않아 원인 모를 불로 타버렸다. 그 불을 계기로 경찰이 천막을 전부 걷어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천막을 치지 못하게 화단을 조성해 버렸다.

-철거 과정에서 구속돼 10개월이나 옥고를 치렀다.
철거된 그곳에 겨우 한 평짜리 움막을 지었다. 그리고 그곳에 또 다시 영정을 모시고 싸웠다. 시민들에게 쌍용차 문제를 알리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이마저도 철거됐고 나는 구속됐다. 너무 억울해 하소연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 한 평의 움막이라도 필요했다. 그런데 그 마저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들이 보기엔 절규도 불온해 보였을 것이다.

김 전 지부장은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를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특히 전태일 재단 방문을 온 몸으로 막았다. 진보를 가장해 표를 얻으려는 행보에 분노가 일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라도 쌍용차 문제를 알리고 싶었다. 구속은 그에 대한 보복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쌍용차 문제가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것도 그런 연장선에 있다는 생각이다.

-해고 전과 후의 삶은 전혀 달랐을 것 같다.

해고 전에는 계돈을 붓고, 연금과 적금도 넣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신용불량자가 됐고 가정 파탄과 갖은 불화가 연이어 이어지고 있다. 주변 사람들도 불편해 한다. 사람 관계라는 게 주머니 사정 따라 좌우되는 것 아닌가. 직장에 다녔던 아내도 2010년 말에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 됐다. 지금은 포장마차를 하고 있다. 아내가 버텨 주니 싸울 수 있었다. 해고 당시 대학생이 둘이었다. 큰아들은 군 제대 후 꼬박 2년을 휴학하고 스스로 돈 벌어서 복학했다. 가수 꿈을 키우던 작은 딸은 집에서 받쳐주질 못하니 다니던 대학 그만두고 전문대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있다.

작은 딸은 한 때 한국의 대표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있었다. 그러나 해고와 더불어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됐다. 자식들의 꿈에 보탬이 되고 싶지만 그 꿈은 부모의 몫이 아닌 자식들 스스로의 몫이 됐다. 그래서 한없이 미안하다.

-비록 지부장이었지만 절망과의 싸움은 또 다른 고통이었을 것 같다.

무서웠다. 해고 이후, 가장의 삶은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갈 데가 없어져 버렸다. 자식이나 아내의 사소한 말 한마디가 능력 없는 가장에 대한 멸시로 느껴져 자살충동이 일어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해고 이후 5년6개월이 지난 것으로 아는데 웃어본 기억이 있는지.
없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 행복에도 웃어줄 수가 없었다. 유쾌하게 깔깔거리고 웃는 것은 술에 취하거나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작은 것의 행복이나 기쁨은 알게 됐다. 전에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은 타인의 아픔을 깊게 성찰하게 됐다. 성소수자의 문제, 노숙자의 문제, 비정규직의 문제가 다 나의 문제가 됐다.  타인의 아픔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긴 것도 기쁨이라면 기쁨일 것이다.

-아직도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정말 고마웠던 한 사람을 꼽는다면.
공지영 작가다. ‘의자놀이’라는 책 한 권이 쌍용차 문제를 세상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국형 정리해고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용기가 없으면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사회안전망이 전무한 우리나라에서 정리해고는 말 그대로 살인이다.

-복직하면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일단 쉬고 싶다. 그리고 여행하고 싶다. 해직자로 사는 동안 가족들이 전부 상처를 입었다. 사소한 일에도 서로 분노하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서라도 치유해야 한다. 불교계에서 마련해 준 심리상담도 받고 템플스테이에도 참여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겠지만 그래도 큰 도움이 됐다. 분노만으로 상대를 대할 수는 없다. 내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 심리치유와 템플스테이를 하며 나를 돌아보게 됐다. 단 한 시간이라도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과 거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2012년 스님과 불자들이 대한문 앞에서 100일 동안 십만 배 릴레이 기도를 했다. 도움이 됐나.
굉장한 위로가 됐다. 매일 저녁에 시작한 절을 새벽이 돼서야 끝났다. 그렇게 100일 동안 매일 1000번의 절을 했다. 절하는 동안 모든 상념을 잊을 수 있었다. 우리 곁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힘을 잃지 말고, 나태해지지 않게 더 정진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어떤 세상이 됐으면 좋겠나.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다. 자본가와 정부 권력의 무한횡포 악순환 고리가 언젠가는 끊어져야한다. 노동자들이 어느 날 이유 없이 쫓겨나 거리에서 잠을 자지 않는 세상. 제주 강정과 경남 밀양에서 80세도 넘은 할머니들이 경찰과 드잡이하지 않는 세상. 공부하는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로 하루를 채우는 않는 세상. 이런 부조리가 사라진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동료들이나 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60여일 동안 차가운 굴뚝 위에서 농성하고 있는 동료들이 기쁜 마음으로 땅을 밟았으면 좋겠다. 그 날을 위해 우리는 싸워 갈 것이다. 이글거리는 분노 속에 하루하루를 살았지만 그 분노를 조금이나마 풀어준 건 시민들이었다. ‘울지 마라’ ‘함께 하겠다’ 이 모든 말이 위로가 됐다. 시민들의 격려가 가장 큰 힘이었다. 부당한 정리해고는 살인이다. 이를 방치하면 어느 날 나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쌍용차 사태는 다른 사람이 아닌 곧 우리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김 전 지부장은 선풍기 소리나 에어컨 소리를 쉽게 듣지 못한다. 경찰의 공장진압 당시 낮게 깔려 ‘쉭쉭’ 소리 내던 헬기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5년6개월을 거리에서 보낸 그의 몸 상태가 궁금했다. 그는 과거에 비해 기억력 30%가 감퇴되어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한다고 했다. 뱃속이 차가워 음식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 그래도 그는 1월 살을 에는 추위에도 4일간이나 거리에서 오체투지 했다. 쌍용차 구로정비소를 출발해 광화문과 검찰·대법원·청와대까지 차가운 땅바닥에 몸을 던졌다. 그의 싸움은 평범한 일상을 회복하고자하는 몸부림이다. 그리고, 언제 우리 앞에 다가올지 모를 불행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편집부장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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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은 매달 한번 "김형규의 이 사람" 을 연재한다. 낮고 험한 곳에서 사회 부조리와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계획이다.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며 관음보살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1283호 / 2015년 2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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