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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은- ‘새노야’

기자명 김형중

인간과 자연 교감 충만한 자연시

새노야 새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새노야 새노야!
기쁨 일이면 저 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

새노야 새노야!
산과 바다에 우리가 살고
산과 바다에 우리가 가네.

새노야 새노야!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
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네.

‘새노야’

고은(1933~)의 시는 난해하지 않고 쉽다.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운율이 춤을 춘다. 그가 젊은 나이에 출가하여 불도를 닦은 공력으로 시 속에 녹여낸 심오한 선사상과 기발한 돈오(頓悟)의 깨달음이 솟구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불명은 일초(一超)이다. 단번에 뛰어넘어 여래의 지위에 이른다는 일초직입여래지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생의 나쁜 업 내가 받고
공덕은 중생에게 회향하는
보살의 자비심이 담긴 시
자연은 죽어 돌아갈 본향

‘새노야’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어부의 유유자적한 모습을 노래한 시이다.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어 살아가는 자연친화적 교감이 충만된 자연시요, 서정시이다. 이 시의 성공은 한자말이 없는 순수한 우리 모국어로 청정무구한 자연을 노래한 것이다.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시이다. 그리고 반복되는 시구을 통한 리듬의 운율성이 뛰어나다. ‘새노야’를 합창하면서 노를 저어가는 모습이 연상되는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4연으로 구성된 우리 전통시의 운율인 3-3-5의 음보를 이루고 있다. 각 연마다   ‘새노야 새노야’로 시작하고, 각 연마다 끝에 ‘가네’, ‘받네’, ‘가네’, ‘주네’ 등 비음의 부드러운 운율을  배치하여 시의 리듬을 살리고 있다. ‘새노야’는 시인의 고향인 군산 바닷가에서 어부들이 부르던 뱃노래말 후렴구라고 전한다.

필자가 이 시를 처음 접하고 드는 의문점이 있었다. “기쁜 일이면 저 산에 주고, 슬픈 일이면 내가 받네”와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고, 슬픈 일이면 님에게 주네” 이다.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내용이다. 당연히 기쁜 일이면 내가 받고, 님에게 줘야 하는데, 저 산에 주고 바다에 준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화엄경 보현보살행원품 회향분(回向分)’을 읽으며 그 의문이 풀렸다. “만약 여러 중생이 나쁜 업을 쌓아 모음으로써 불러들이는 온갖 극심한 괴로움의 과보를 내가 다 대신 받아 그 중생이 모두 해탈을 얻어 끝내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도록 한다. 보살은 이와 같이 지은 공덕을 널리 중생에게 돌려주는 것이니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여도 나의 이러한 공덕을 돌려줌은 다할 수 없다.”

중생의 나쁜 업을 내가 받고 한량없는 공덕을 중생에게 회향하는 보살의 자비심이 시 속에 담긴 것이다. 최상품 선시는 불교나 선의 용어를 드러내지 않고서도 선리(禪理)나 선취(禪趣)가 깃들어 있는 시이다. 당나라 왕유의 선시가 그렇고, 일본 하이쿠가 그렇다.

‘화엄경’의 세계는 세상이 온갖 꽃으로 장엄된 부처님의 나라이다. 우리의 마음은 바다처럼 청정하고 고요한 해인삼매(海印三昧)이다. 아름다운 자연은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이요, 또 죽으면 돌아가야 할 본향(本鄕)이므로 오염돼서는 안 될 정토이다. 그래서 “기쁜 일이면 산에 주고, 기쁜 일이면 바다에 주네”가 된 것이다.

가수 양희은이 맑고 고운 목소리로 부르는 ‘새노야’를 들으면 ‘세상에 저토록 아름다운 소리가 있을까. 저토록 아름다운 노랫말이 있을까’하고 감탄을 한 적이 있다. 고은은 ‘화엄경’이란 소설을 쓴 작가이다. 만해의 후예로서 과연 천하에 시불(詩佛)이라 부를 만하다.

김형중 동대부중 교감·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284호 / 2015년 3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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