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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구와의 만남과 이별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03.09 15:18
  • 수정 2015.10.22 12:10
  • 댓글 0

얼마 전 절에서 기르던 강아지(진구)를 강원도의 한 거사님에게 보냈습니다. 진구가 떠나던 날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떠날 준비를 마친 상태였습니다. 순간 울컥했습니다. 보내기로 마음먹었지만 여전히 진구의 흔적을 찾고 있었습니다. 진구를 돌보던 보살님에게  지금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한다고 하니 놀라면서 눈물을 글썽입니다. 주차장에 내려가 보고 싶다는 것을 ‘가는 모습을 보면 진구에게 더 좋지 않을 것’이라고 제가 말렸습니다. 그래도 발길을 돌리지 못합니다. 내려가서 이별인사를 하고 왔습니다. 저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속으로는 그 장면을 보고 싶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절에서 기르던 진돗개 진구
두 달여 만에 다른 곳 보내
슬퍼하는 학생과 서먹해하다
노트에 사과의 글 적어 화해

이별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많이 아쉽습니다. 보고 싶기도 하고 아침이면 화장실을 가기 위해 기다리던 진구의 모습이 떠오르고 뒷마당에 가면서 따라오라고 자꾸 뒤돌아보며 기다려주는 모습이 그립습니다. 그저 좋아서 달리고 달리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진구의 이미지가 손상될 수도 있어서 그 이유는 밝히고 싶지 않습니다.

진구는 작은 개가 아니라 갈수록 커지는 진돗개였고, 이곳은 시내여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 위험합니다.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키우고 싶어서 경기도에서 개집에 담아 기차를 타고 데려왔습니다. 온 식구들의 걱정과 사랑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두 달 여 동안 모이면 진구 이야기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했고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보내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제 방에 하루 재웠더니 방에서 냄새가 난다고 해서 부모와 함께 절에 사는 여고생이 있는 방에서 진구를 키웠었습니다. 보내고 나서 점심때가 되었는데 아이가 울면서 찾아왔습니다. “스님 점심 먹고 할 이야기가 있어요!” 아 차! 싶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진구가 그냥 강아지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공양하고 따로 앉아서 한참을 대화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이 아이는 강아지가 떠날 것이라는 것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별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갑자기 떠나게 한 것이 마음이 너무 아픈 이유라고 합니다. 그러니 할 말이 없습니다. 저는 그것은 학생의 입장이고 진구의 입장에서는 헤어지는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고 새로운 주인과 새로운 땅에 가 있을 때에 여기의 식구들과 헤어지는 장면이 가슴에 남는다면 그곳에서 마음잡는 데 더 어렵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것이 너무 슬프다고 했습니다. 아버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충분히 이별의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쉬웠는데 이번에 진구와의 이별이 그런 느낌을 갖게 되어서 더 슬프다는 거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 생각만 했구나 싶었습니다. 저도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릴 때에 양친이 몇 개월 사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때 기억나는 장면은 제가 어리다고 담장 밖에서 홀로 기다려야 했던 모습입니다. 그 때에 아버님 곁에서 그 모습을 보며 슬퍼할 수 있었더라면, 충분히 울 수 있었더라면 하는 마음이 갈수록 더 커집니다.

저는 감정적인 갈등관계를 너무 힘들어 합니다. 그리고 그런 만남이나 자리는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분위기를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한 번 슬픔 속에 빠셔서 마음 놓고 울어본 적도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감성적으로는 깊은 접촉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어릴 적 경험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친 다는 것을 8주간의 상담을 하면서 나 자신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알았다면 그 학생에게 이별의 시간을 충분히 갖게 했어야 하는데 습관의 힘은 이성의 힘에 비해 승률이 늘 높습니다.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저를 외면하는 학생과 며칠 동안 감정을 삭이고 있습니다. 서로가 먼저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어제가 그 아이 생일이라고 합니다. 뭐든지 인연을 기다려야 하나 봅니다. 외국서 사온 작은 노트와 사과의 글로 화해를 하였습니다. 진구와의 이별의 상처가 생일날 사과와 용서의 마음으로 치유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1285호 / 2015년 3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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