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 아미타불의 인지법행-상

기자명 이제열

성불에 이르기 위한 수행과정이 인지법행

▲ 아미타팔대보살도. 일본 덕천사미술관 소장.

일반불자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대승불교의 가르침 가운데에 인지법행(因地法行)과 과지법행(果地法行)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 말은 주로 부처와 보살의 수행과 관련된 것으로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구법이 인지법행이라면
중생 제도는 과지법행

아미타불의 정토세계는
무량한 자비심의 극치

광활한 법행·발원 특징
중생구제 방편도 구체적

먼저 인지법행이란 불교의 궁극적 목표인 성불을 위해 짓는 여러 수행과 그에 따르는 과정을 뜻한다. 여기서 인지는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원인이라는 의미이고 법행은 진리와 부합되는 행동을 일컫는다. 과지법행은 인지법행을 통해 성불한 이가 중생을 위해 갖가지 방편을 펼쳐 제도하는 행위다. 이때 과지는 인지를 통해 얻게 되는 결과로서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것을 의미한다. 부처는 이 과지에서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온갖 방편을 구사한다.

흔히 불교의 목표를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이라고 하는데 이때 상구보리가 인지법행에, 하화중생은 과지법행에 해당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지법행을 거쳐 과지법행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근거해서 대승의 경전들을 살펴보면 경전에 소개되고 있는 주요 부처님들에게는 저마다 인지법행이 있고, 과지법행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인지법행은 무려 3아승지겁 동안 십바라밀을 닦은 것이고, 과지 법행은 보리수에서 성불한 후 평생 중생들을 위해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것이다. 대승 ‘열반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과지법행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으며, 미래세가 다하도록 계속될 것이라고 나온다.

약사여래불에게도 인지법행과 과지법행이 있다. 약사여래불의 인지법행은 과거 무량겁전에 12대원을 발하고 수행한 것이며, 과지법행은 동방에 유리광정토라는 불국토를 세워 중생들을 성불시키는 것이다. 미륵불도 마찬가지이다. 주목할 것은 이들 모든 부처님의 인지법행과 과지법행이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발원내용이 모두 비슷하고 수행도 육바라밀이나 십바라밀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 바라밀을 수행해 부처를 이루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내용들이다.

이런 점은 아미타불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다른 부처들처럼 인지법행으로 과지법행을 성취했다. 그러나 아미타불의 법행은 그 어떤 부처님과도 비교할 수 없는 광활함을 갖추고 있다. 발원의 종류도 많고 중생들을 섭수해 정토에 이르도록 하는 방편과 과정이 구체적이라는 점이 다른 부처님들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아미타불에게 있어 인지법행은 법장비구(法藏比丘)로부터 출발한다. 법장비구가 수행을 통해 이룬 것이 아미타불이며 극락정토이다. 법장비구의 발원과 수행은 인지법행이고, 아미타불과 극락세계는 과지법행이다.

그렇다면 법장비구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대승불교에는 불보살의 계보를 밝힌 특이한 경전이 있다. ‘비화경(悲華經)’이 바로 그것인데 이 경전에는 법장비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가 설명돼 있다. 아득한 옛날 산제람(刪提嵐)이라는 세계에 무쟁념(無諍念)이라는 전륜성왕이 있었다. 그 전륜성왕에게는 보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출가해 보장여래(寶藏如來)라는 부처님이 되었다. 어느 날 무쟁념 국왕은 자기 신하의 아들이기도 한 보장여래에게 나아가 설법을 듣고는 다음과 같은 원을 발하였다.

“제가 이제 진실한 보리도를 행하여 성불할 적에 내 국토가 청정하여 모든 더러운 냄새와 기운이 없을뿐더러 삼악도가 없고 중생들의 수명이 무량하며 다른 세계의 중생들도 내 이름을 듣고 선의 근본을 닦아 내 국토에 나기를 바라는 이는 목숨을 마치고 반드시 다시 태어나게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때 보장여래는 무쟁념의 원을 듣고 “그대는 제1항하사 아승지겁을 지내고 제2아승지겁에 들어갈 때에 안락이라는 이름의 국토에서 부처를 이루리니 이름을 아미타여래라 할 것이다”라는 수기를 내렸다.

그 후 무쟁념 국왕은 세자재왕여래(世自在王如來)라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했을 때 교시가(憍尸迦)라는 국왕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왕위를 버리고 출가해 법장이라는 이름의 비구가 됐다. 결국 법장비구는 과거 무쟁념 전륜성왕의 후신인 것이다. 이때 법장비구는 과거에도 그랬듯 부처님 앞에서 거룩하고 위대한 원을 세웠는데 그 원이 곧 48대원이다.

‘비화경’에 의하면 당시 무쟁념 국왕에게 4명의 아들이 있었다. 후에 이 4명의 아들 모두 성불해 불도를 이루고 중생들을 제도하는 보살이 됐다. 첫째 아들은 관세음, 둘째 아들은 대세지, 셋째 아들은 문수, 넷째 아들은 보현이 됐다는 것이다. 사바세계의 스승이 되는 석가모니불은 다름 아닌 보장여래의 아버지였던 보해대신이었다. 아미타불과 석가모니불 그리고 대승의 주요 보살들과의 관계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형성됐다.

그러나 법장비구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믿음과 관련해 의혹을 갖게 한다. 법장비구를 비롯한 여러 등장인물들이 과연 실재하느냐하는 것이다. 만약 이들이 실재 인물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믿음도 자연스레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믿음이란 비록 증명할 수 없더라도 실재한다는 가정 아래 성립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미타불의 근거가 되는 법장비구와 그 밖의 인물들에 대해 그 실재성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 그 분들이 태어나 활동했다는 근거가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비화경’에 나오는 여러 불보살의 내력도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아미타불의 전생이 되는 인지법행으로서의 법장비구 전기는 다분히 신화적이라 할 수 있다. 마치 흥부전이나 심청전처럼 현실감이 없는 것이다.

이같은 법장비구의 일화는 분명 아미타불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는데 있어 장애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아미타불 전생인 법장비구와 그 밖의 인물들이 실재했다면 그분들을 향한 믿음도 훨씬 강해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같은 내용들이 아미타불의 믿음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다른 각도에서 아미타불의 인지법행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1285호 / 2015년 3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