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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보 78호 반가상의 국적문제

형식·양식에 따른 기준의 충돌…미술사 논쟁 대표적 사례

▲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삼국시대(6세기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높이 83.2㎝.

미술사에서 ‘형식(形式, form)’과 ‘양식(樣式, style)’은 가장 기초적인 개념이다. 그렇기에 또한 그만큼 궁극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형식’이란 불상을 예로 들면, 서있는 자세인가 앉아있는 자세인가, 또는 옷자락을 계단식으로 깊게 표현했는가 아니면 물결문양처럼 얕게 새겼는가 등을 ‘구별’하는 기술방식이다. 여기서 ‘구별’이라고 했는데, 이는 ‘구분’과 의미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다. 섞여있는 사물들을 나눈다는 개념은 비슷하지만, ‘구별’은 차이점을 바탕으로 나눈다는 의미에 중점이 실린 표현이고, ‘구분’은 그렇게 나뉘어서 공통점을 지닌 무리로 그룹 지어진 것에 중점이 실린 표현이다. 예를 들어 셰퍼드, 푸들, 아메리칸 쇼트헤어, 스코티시폴드라는 네 마리의 네발달린 짐승이 있다고 할 때, 이들 네 마리는 두 종류로 나누어 구별할 수 있다. 셰퍼드와 푸들은 개로, 아메리칸 쇼트헤어와 스코티시폴드는 고양이로 나누는 것이다. 개와 고양이의 차이점에 중점을 둔 것인데, 이를 형식이라 한다.

형식은 형태를 ‘구별’하는 방식
양식은 공통점에 따른 ‘구분’
실과 바늘처럼 이어지는 개념

반가사유상, 국적 논쟁의 중심 
양식 구분 따른  고구려설 대두
주관적이나 설득력 있는 분석

옷주름 형태 근거한 백제설 우세
새로운 출토작들 신라설에 무게 
사상적 배경도 중요한 키워드

하지만 이렇게 구별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개와 고양이라는 두 그룹이 생겨나게 되고, 그것은 곧 셰퍼드와 푸들이 지닌 개로서의, 아메리칸 쇼트헤어와 스코티시폴드가 지닌 고양이로서의 공통점을 인정한 것이 된다. 말하자면 여기서 개나 고양이는 구분의 개념이 되는 것이고, 이는 미술사에서의 양식 개념과 유사하다. 따라서 구별과 구분은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형식과 양식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자연과학에서는 개와 고양이의 정의가 명확한 것에 비해, 인문학인 미술사에서는 인위적으로 분류된 형식요소들 간의 공통점이 매우 주관적이어서 흔히 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을지가 쟁점이 된다. 예를 들어 색이 어두운 동물과 밝은 동물로 구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대표적인 사례를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의 국적 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상은 국보 83호 반가상의 출현에 즈음하여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후치가미 사다스케(淵上貞助)라는 사람이 초대 조선총독인 데라우치에게 기증한 것이었다. 그는 1886년에 부산에 건너와 사업을 벌이다 이후 경성거류민회장(京城居留民會長)을 지낸 인물로서, 1906년(광무10)에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활판본으로 간행했고, 1914년에는 그의 집에서 ‘조선서화입찰회’도 열었다고 하니 조선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반가상의 출처는 밝히지 않았고, 1916년 데라우치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총독부박물관에 기증하여 지금에 이른다.

이 상에 대해 세키노 타다시(關野貞)는 그의 저술에서 신라작으로 소개하고 있으며, 더불어 이 반가상이 안동에서 출토된 것이라는 증거가 제시되기도 하여 대체로 신라작으로 평가되는 듯 했다. 하지만 이후 양식 분석을 통해 백제 제작설도 대두되어 점차 양분된 견해를 이루게 되었다. 출토지라는 것은 때로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될 수도 있지만, 그 내용이 대부분 구전된 내용이어서 신빙성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이런 경우는 양식분석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우선, 백제 제작설이 대두된 배경에는 일본인 학자들의 견해도 한몫 했다. 세키노는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상을 일본 호류지(法隆寺) 금당의 금동석가삼존상 및 약사상과 그 맥을 함께 한다고 분석했음에도 신라작으로 소개한데 반해, 이후 학자들은 호류지 금당의 조각상들이 백제 출신의 장인인 도리불사(止利佛師)의 작품임을 들어 국보 78호 역시 백제작으로 보고자 했던 것이다. 호류지 금당의 금동상들은 일본 아스카 양식을 대표하는 불상들이고, 이는 중국의 북조(北朝), 특히 북위(北魏, 386~534) 양식이 백제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장인인 도리는 백제 무령왕릉 출토의 무령왕비 팔찌 안에 새겨진 ‘다리작(多利作)’이란 명문을 통해, 백제의 동일한 브랜드 네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을 만큼 고대사 연구에 있어 중요하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서산마애불의 좌협시 반가상이나, 동경국립박물관 오쿠라(小倉) 컬렉션에 포함된 전(傳) 공주 출토 반가상 등과의 유사성은 78호 반가상이 백제작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게 했다.

▲ 국보 78호 반가상의 직접적인 조형적 모델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동위시대의 흥화2년명(540) 반가상.

그러다 국보 78호 반가상의 국적논의를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올린 계기는 이 상이 고구려의 작품임을 추정하는 논의가 시작되면서였다. 이 논의의 핵심은 국보 78호 반가상을 북위 이후 동위(東魏, 534~550) 양식으로 보고, 우리나라 삼국 중에서 동위양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구사한 나라는 고구려이므로, 이 상도 고구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북위·동위 양식을 구분하고, 고구려의 양식을 동위양식에 기반한다고 정의하는데 있어 바로 북위·동위 양식이라는 것이 바로 양식논쟁의 한 사례라 하겠다. 나아가 일본의 아스카 양식이라는 것도 백제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고구려의 동위 양식에 기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의에서 동위 양식은 ‘환미(丸味)·평면성·선적구성의 공존’으로 요약되고 있는데, 때로 이러한 표현은 너무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나아가 이 기준에 부합하는 상들이 상당수 고구려 불상이라고 제시했지만, 삼국시대 불상 중에서 고구려 불상으로 확정할 수 있는 불상이 사실상 연가7년명 금동불입상 외에는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고구려 불상 그룹으로 구분된 불상들 역시 주관적으로 선정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럼에도 주관적인 서술에 머물 수 있는 양식 개념을 최대한 설득력 있게 분석하고 적용하려고 한 시도는 반가상의 국적문제에 있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고구려 제작설로 정립되어 현재까지 유효하다.

▲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뒷면의 ‘U’자형 옷주름.

이를 통해 백제설을 새롭게 보완하는 정교한 논의도 촉발시켰다. 국보 78호 반가상은 뒤에서 보면 양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천의자락이 ‘U’자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옷자락 표현은 주로 백제작품에서 보인다는 주장이다. ‘환미, 평면성’ 등은 때로 주관적인 해석일 수 있는데 반해, ‘U’자형 옷자락은 눈에 확연히 구분되는 형식적 요소이다. 이러한 요소는 일본에서 백제 전래품으로 평가되는 불상들에도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이어서, 기존의 백제설을 가시화시켜줌과 동시에 보다 객관적인 설명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이와 함께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상에 대한 과학적 조사도 이루어졌다. 학자들은 국보 78호 반가상을 동위양식, 83호 반가상을 북제(北齊, 550~577) 양식으로 분류하고, 78호상을 더 앞선 작품으로 보는데 이견이 없었는데, 이들 반가상에 대한 X레이 조사결과 그 주조기법은 78호상이 오히려 발전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미술사학자들이 78호 반가상을 더 나중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게 된 것은 아니다. 주조기법은 더 떨어지는 사람이 만들었더라도 양식은 그 시대상을 벗어날 수 없다는 방법론적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근래 양식론이 너무 추상적이라며 무용론을 제기하는 경우도 볼 수 있지만, 만약 양식론이 아니라면, 우리는 연대가 밝혀지지 않은 작품을 무슨 수로 특정 시기에 위치한다고 추정할 수 있을까? 또한 그렇게 위치지을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작품을 시대상과 연관지어 해석할 수 있을까?

▲ 傳경주 송화산 출토 석조반가사유상.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삼국시대(신라), 현존 높이 125㎝.

이후 새롭게 출토되고 발견된 반가상들은 78호 반가상이 신라작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리게 했다. 경주 송화산 출토의 석조반가상은 팔과 머리가 결실되었지만, 전반적으로 78호 반가상과 흐름을 같이하며, 신라에서도 다양한 반가상 양식이 존재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충주 봉황리의 햇골산 마애불은 그 지역이 삼국의 각축장이어서 다소 논의가 있지만, 신라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면서 그 마애불 중의 주존인 반가사유상 역시 78호 반가상과의 연계성 속에서 검토됐다. 무엇보다도 신라의 화랑제도와 미륵과의 연관성은 아직도 상당수의 반가상이 신라에서 제작되었을 것임을 짐작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왜 78호와 83호와 같은 대형의 금동반가상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기인한다. 이는 불교미술의 해석에 있어 양식·형식의 문제와 더불어 사상적 배경이 중요한 키워드임을 각인시켜 준다.

어쩌면 국보 78호 반가상의 쟁점은 ‘동위양식은 고구려 불상인가’하는 양식분석과 ‘U자형 옷자락은 백제보살상의 특징인가’하는 형식 분석과의 충돌로 정리할 수 있다. 사실상 이 두 접근은 큰 범주에서는 모두 양식논쟁이다. 환미·평면성이라는 것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러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몇 가지 시각적 형식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U’자형 옷자락도 그것이 백제에서만 나타난다면 단순한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백제양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개념이 된다. 하나의 ‘형식’이 특정한 시대(시간), 혹은 특정한 나라(공간)를 상징하는 ‘양식’이 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 바로 미술사 논쟁의 한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사상과 도상의 문제가 덧붙여지면 논의는 보다 정교하게 객관화될 수 있을 것으로 미술사학자들은 기대한다.

주수완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indijoo@hanmail.net


[1285호 / 2015년 3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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