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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잔재와 미국 사대주의

“우리는 비록 전쟁에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조선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은 더 걸릴 것이다.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놨다.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가 남긴 말이다. 그는 조선을 잔인하게 수탈했던 인물이다. 일본으로 쫓겨 가는 순간까지 저주를 그치지 않았다. 그의 저주는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 일본의 광기와 맞닿아 있다.

그러나 그의 말과 달리 우리는 부강해졌다. 단군 이래 가장 부유한 시대를 보내고 있다. 우리의 문화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퍼지고 있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일제의 잔재는 이제 설 곳을 잃은 듯 보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친일청산이 다시 화두가 돼 버렸다.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서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어디에 그렇게 많은 친일인사들이 박혀 있었는지 봇물이 터진 듯하다.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가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느낌이다.

최근 일어난 리퍼트 미국 대사 피습사건은 이런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를 뼈아프게 각인시켰다. 3월5일 리퍼트 대사는 김기종씨에게 불의의 습격을 당했다. 그로 인해 얼굴과 팔에 큰 상해를 입었다. 국민으로서 미안하고 쾌유를 기원하는 것 또한 당연한 도리다. 그러나 병원에 입원한 리퍼트 대사에게 보인 개신교가 중심이 된 일부 우익의 행동은 우리의 국격을 의심케 했다.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한다며 병원에 떼로 몰려와 기도를 하고 부채춤에 난타공연까지 그야말로 난장판을 벌였다. 개고기를 전달한 사람까지 있었다. 박 대통령의 친인척은 병원 앞에 멍석을 깔고 석고대죄 단식을 하는 촌극을 보였다. 개신교가 중심인 된 일부 우익이 미국을 좋아하는 것은 새삼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미 대사의 쾌유를 성원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행동은 과공(過恭)을 넘어 사대주의에 가깝다. 이들은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고 나라의 품격을 세계의 조롱거리로 전락시켰다. 외신들은 한국의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해하기 힘든 행동에 대해 ‘광기’라고 표현했다. 남의 나라 공무원에게 보여준 한국인들의 ‘광기어린 행동’은 유례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동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남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언론이었다.

“한국에서 보여준 미국 숭배 광기는 한국의 보수적인 이데올로기가 미군을 남한의 구세주로 생각하도록 가르쳤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우리는 해방 70년이 되도록 일제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해방의 혼란기에 친일부역자들이 우익으로 둔갑해 독립투사를 빨갱이로 매도해 처단하는 역주행의 역사는 지금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그림자로 우리 발목을 붙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미군정을 거치며 보수화됐고 6.25한국전쟁을 거치며 더욱 공고해졌다. 그리고 식민교육의 그늘을 벗지 못하고 이제 자국민에게 미국숭배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괴로움을 제거하기 위해 무명(無明)을 타파할 것을 가르쳤다. 괴로움의 근원, 즉 진실을 알아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 김형규 부장
지금 정부는 일본 국사교과서가 아니냐는 비난을 받고 있는 교학사 교재를 국정교과서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돼있다. 만약 이를 막지 못한다면 역사의 진실은 사라지고 우리의 미래는 자주성을 잃은 채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베 노부유키의 저주처럼 서로 이간질하는 노예적인 삶을 영원히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리퍼트 대사 피습을 계기로 보여준 개신교가 중심이 된 일부 우익의 광기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뼈아픈 교훈이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86호 / 2015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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