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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개인-하

“당신이 적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최고의 스승입니다”

▲ 달라이라마와 조계총림 방장 보성 스님이 2003년 12월29일 북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남걀사원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늘날 수많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그 어느 때 보다 많습니다. 이것은 사랑과 자비가 세상을 지배해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불쾌한 사건은 뉴스가 되고 자애로운 행위들은 일상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당연시 되고, 그래서 대체로 무시되는 상황을 설명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물질주의적 사회서
‘돈과 권력’을 갖고 있다면
친구가 많은 것처럼 보여

그러나 그들은 결코 당신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어

당신의 돈과 권력 없어지면
그 사람들을 찾을수 없게돼

지금까지 자비의 정신적 혜택에 대해 주로 논의해 왔는데 그것은 또한 육체적 건강에도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정신적 안정과 육체적 건강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분노와 불안은 우리를 병에 더 잘 걸리게 합니다. 반대로 마음이 평온하고 긍정적인 사고에 빠져 있으면 우리의 몸은 쉽게 질병의 먹이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타고난 자기중심의 본능을 갖고 있고 그것이 타인에 대한 사랑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갈망하고 있고 그것은 오로지 평온한 마음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으며 그러한 마음의 평정은 오로지 자비로운 태도에 의해서만 가져올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자비를 어떻게 길러낼 수 있을까요? 자비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명백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개발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사고와 행동을 바꾸는데 일상생활의 모든 사건들을 활용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자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명확해야 합니다. 자애로운 감정의 여러 형태는 욕망, 집착과 섞여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녀에게 느끼는 사랑은 종종 그들의 정서적 욕구와 강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온전히 자애롭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한편으로 결혼에 있어서 부부간의 사랑은, 특히 서로가 상대의 깊은 내적 성격을 아직 잘 모를 수도 있는 초기에는 진정한 사랑보다는 집착에 의해 좌우됩니다. 욕망이 너무 강한 경우 우리가 집착하는 사람은 실제로는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도 좋게 보입니다.

진실한 자비심은 단순한 정서적 반응이 아니라 이성적 분별에 근거한 단호한 헌신입니다. 그래서 타인에 대해 진실로 자비로운 태도는 상대방이 부정적으로 행동하더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런 종류의 자비심을 기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다음 사항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아름답고 상냥한 사람이든, 아니면 남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이든 궁극적으로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입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행복을 원하지만 고통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고통을 극복하고 행복해지려는 그들의 권리는 우리의 권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보편적 이타주의에 자신의 마음을 길들임으로써 타인에 대한 책임의식을 기르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도록 그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바람입니다. 이러한 바람은 특정인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적용됩니다. 그들도 당신과 똑같이 즐거움과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들 사이에 차별을 둔다든지 부정적인 행동을 한다고 관심을 돌려버려야 할 논리적 근거는 없습니다.

인내와 시간만 있다면 이러한 종류의 자비심을 기르는 것은 당신의 능력범위 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물론 자기중심주의 즉,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감에 대한 우리 인간의 독특한 집착은 근본적으로 자비심을 억제하는 작용을 합니다. 진정한 자비심은 이런 종류의 자기 집착이 제거될 때 비로소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시작해서 진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자비심의 가장 큰 장애 요소인 분노와 증오를 제거하는 것으로써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이들은 지극히도 강력한 힘을 지닌 감정들로, 우리의 마음 전체를 압도할 수 있습니다.

먼저 분노가 값어치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는 게 유용할듯 합니다. 때때로 어려운 상황으로 의기소침해졌을 때, 분노는 더 많은 기운과 자신감, 결의를 불러일으키면서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정신 상태를 조심스럽게 관찰해야 합니다. 분노가 추가적인 에너지를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에너지의 속성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맹목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분노의 결과가 긍정적인지, 아니면 부정적인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분노는 우리 두뇌의 가장 소중한 부분인 합리성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노의 에너지는 언제나 신뢰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엄청나게 많은 파괴적이고 불운한 행동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분노가 극단으로 치달으면 마치 미친 사람처럼 되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도 손상을 주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분노와 마찬가지로 강력하지만 훨씬 더 통제된 에너지를 길러내는 것이 가능하고 그 에너지로 어려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이 통제된 에너지는 자비로운 태도뿐만 아니라 합리성과 인내로부터도 발생합니다. 이러한 것은 분노에 대한 가장 강력한 해독제가 됩니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특질들을 유약함의 표시로 오판합니다. 저는 그러한 오판의 반대가 진리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내적 강인함의 진정한 징표입니다. 자비는 속성 상 온유하고 평화롭고 부드럽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강력합니다. 쉽게 인내력을 상실하는 사람들의 경우 불안하고 불안정합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분노가 올라오는 것은 유약함의 직접적인 징표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먼저 발생하면 겸손하고 진실된 태도를 견지하고 결과가 공정하게 되도록 마음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약점을 이용하려고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초탈한 태도가 오히려 부당한 공격을 부추긴다면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는 자비심을 견지하면서 실천해야 합니다. 당신의 견해를 표현하거나 강력한 대응책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분노나 악의 없이 실행해야 합니다. 적대자가 당신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그들의 파괴적인 행위는 결국 자신들만을 손상시키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당신이 채택한 수단들은 침착하게 선택되었기 때문에 그것들은 좀 더 효과적이고 정확하고 강력할 것입니다. 분노의 맹목적인 에너지에 바탕을 둔 보복은 목표를 명중시키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자비와 이성, 인내를 단순히 생각만 하는 것만으로는 그것들을 길러내기에 충분하지는 않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해야만 합니다. 어려움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이들을 실천에 옮겨보는 시도를 해야만 합니다. 누가 그러한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의 친구는 물론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적들이 그렇게 해줍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최고의 어려움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배우겠다는 태도를 견지한다면, 적들을 최고의 스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비와 사랑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는 관용의 실천은 매우 중요하고 이를 위해 적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적을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적이 친구가 되는 일이 사적인 생활과 공적인 삶에서 종종 발생합니다. 분노와 증오는 항상 해롭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단련시켜서 그것들의 부정적 힘을 줄이지 않으면 이들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어지럽게 하고 고요한 마음을 기르려는 우리의 시도를 방해합니다. 진정한 적은 분노와 증오입니다.

우리 모두가 ‘친구’를 원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옳습니다. 저는 종종 진실로 이기적이고 싶다면 당신은 아주 이타적이어야 한다고 익살을 부렸습니다. 타인을 잘 돌보아주고 그들의 행복을 염려하고 도와주고 봉사하고 더 많은 사람과 친구가 되고 더 많이 미소 지어라, 과연 그 결과는 어떨까요? 당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려는 수많은 손을 발견하게 됩니다. 반대로 타인의 행복을 등한시 하면 결국에 당신은 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툼, 분노, 질투, 격렬한 투쟁을 통해 우정이 생겨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애정만이 우리를 진실로 막역한 친구가 될 수 있게 합니다.
오늘날의 물질주의적 사회에서 돈과 권력을 갖고 있다면 많은 친구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당신의 친구가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의 돈과 권력의 친구일 뿐입니다. 당신이 부와 영향력을 잃게 되면 그 사람들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일들이 잘 되어갈 때 우리는 스스로 처리해 나갈 수 있고 그래서 친구가 필요 없다고 자만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의 지위와 건강이 기울어갈 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재빨리 깨닫게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누가 정말로 도움이 되고 누가 쓸모가 없는가를 알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을 대비하고 필요할 때 우리를 도와주는 진실한 친구를 만들기 위해 스스로 이타주의를 반드시 길러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때때로 웃지만 저 자신은 항상 더 많은 친구를 원합니다. 저는 미소를 사랑합니다. 이 때문에 저는 어떻게 더 많은 친구를 만드는지, 어떻게 더 많은 미소 특히 진실한 미소를 짓는지를 알아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냉소적인 미소, 인위적인 혹은 외교적인 미소 등 다양한 종류의 미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미소들은 만족감을 주지 못하고 있고 때때로 의혹이나 불안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러나 진실한 미소는 실제로 우리에게 신선함을 주고 있고 그것은 인간에게만 독특한 특질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미소가 이런 것이라면 우리 스스로 그러한 미소가 나타나게 될 이유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짧은 글의 주제를 넘어 저의 생각을 잠시 확대해서 좀 더 넓은 견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개인의 행복은 깊고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류 공동체 전체의 전반적 향상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동일한 필요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만나는 그 누구라도 어떤 상황에서든 형제나 자매로 느끼는 것이 가능합니다. 아무리 새로운 얼굴일지라도, 복장이나 행동 양식이 아무리 다를지라도 우리와 타인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는 없습니다. 외형적인 차이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근본 성품은 똑같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인류는 하나이고 이 조그마한 행성은 우리의 하나뿐인 집입니다. 인류 공통의 자산인 지구라는 집을 지키고자 한다면 우리 각자는 보편적인 이타주의를 생생하게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로지 이 감정만이 서로를 속이고 악용하도록 만드는 ‘자기중심주의’라는 동기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저는 누구를 만나든 오랜 친구처럼 대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의 실천’입니다.

<출처=달라이라마오피스 홈페이지>
 번역=백영일 번역전문위원

[1286호 / 2015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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