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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보시-상

부의 잉여가 가져올 고통 덜어 낼 방안은 ‘버리는 것’

▲ 일러스트=김주대 문인화가·시인

중국 청해성에 속해 있는 시닝의 타얼사는 티베트 불교 개혁의 주역이고 달라이라마 제도를 만들었다고 하는 총카파를 기념하며 만들어진 사원이다. 총카파의 탄생지에 만들었다는 대금와전(大金瓦殿)은 지붕의 기와를 전부 금으로 칠을 했다고 하여 더 유명한데, 안내자에게 들으니 기와를 칠하는 데 금 850kg이 들었다고 한다. 거의 1톤에 가까운 금을, 실내의 불상이나 전을 장식하는 데 쓴 게 아니라 비바람에 일 년 내내 노출된 기와에 칠해놓았다는 말에 다들 당혹의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뿐만 아니라 절 안에 있는 수많은 ‘걸게그림’과 벽화는 보석과 보석가루들을 써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티베트에 가서 보니, 다른 절들도 양상은 비슷했다. 무소유를 강조하고, 아름다운 형상이 아니라 형상 없음 속에서 여래를 보라고 가르치는 불교 사원이 왜 이처럼 당혹스러운 장식을 했던 것일까?

타얼사의 황금기와 장식은
과도한 숭배로 비춰지지만
남을 해하는데 사용될 부를
미리 소모하는 의미가 담겨

이 물음에 불교와 절이 타락해서라고 답하는 것이나, ‘교주’에 대한 과도한 숭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은 너무 안이하다. 그 ‘장식’은 이런 대답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과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총카파의 상을 순금으로 만들었어도 될 거대한 양의 금을 하필이면 기어코 풍화되어 없어질 지붕에 발라놓은 것은 그런 통념으론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과도하고 소모적인 장식의 이유에 나름대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인류학자들이 연구한 원시사회의 ‘비합리적’ 선물제도 덕분이었다. 북미인디언인 치누크족의 말로 ‘먹여주다’ ‘소비하다’를 뜻하는 ‘포틀래치(potlach)’란 말은 인디언사회나 다른 많은 ‘원시사회’에 존재하는 경쟁적인 선물게임을 지칭한다. 자신이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상대에게 선물해야 ‘이기는’ 게임. 이는 선물의 형태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게임이라고 할 것이다. “난 이 정도도 남들에게 줄 수 있어!” 남에게 주는 것뿐 아니라 보라는 듯 담요나 집을 태워버리고 귀중한 물건을 바닷물 속에 처박아버리기도 한다. 이까짓 거 다 없애버려도 충분할 만큼 자신이 능력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매년 포틀래치가 벌어지면 엄청난 양의 재물이 파괴되고 소모된다. 하이다족에선 이를 ‘부를 죽이는 것’이라고까지 표현하며, 틀링깃족이나 침시아족 등 많은 부족들이 이에 대해 ‘재산을 죽이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부와 재산을 최대한 선물하고 파괴하는 자가 최고의 명예를 얻는다. 이런 이가 대개 추장이 된다.

모든 데서 이해관계만을 보는 어떤 인류학자는 이를 명예나 권위를 얻어 추장이 되기 위한 ‘책략’이나 ‘투자’로 해석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추장이 되었을 땐, 정치적 권위를 얻는 대신 경제적 부를 모두 상실한 상태가 된다. 반대로 경제적 부를 모으고 아끼려는 자는 절대로 정치적 리더가 되지 못한다. 그는 ‘인색한 자’라는 가장 모욕적인 평을 얻고 이웃으로부터 비난받고 소외된다. 한때 캐나다 정부에선 법으로 금지하기도 했던 이 비합리적 선물게임의 기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잘 알겠지만 정치적 리더가 경제적 부마저 갖고 있으면, 그 부를 이용해 사람들을 사거나 끌어들여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유지하고 보호하려 할 것이며, 정치적 지위를 이용해 경제적 부를 늘리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력이 탄생하게 된다. 반면 인디언들처럼 정치적 지위를 얻으려면 경제적 부를 완전히 포기해야 하고, 경제적 부에 애착이 있으면 정치적 지위에 접근할 수 없게 하는 경우, 지도자의 지위는 부족민의 신뢰를 잃는 순간 지속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정치적 지위를 이용해 부를 모으는 것도 불가능하다. 포틀래치는 부가 정치적 지위를 보호하고 정치적 지위가 부를 확대하는 순환을 끊어주는 것이다. 그것은 선물을 통해 각자의 능력과 관대함을 시험하고, 경제적 부와 정치적 지위가 결합되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다.

포틀래치가 ‘재산을 죽이’는 또 하나의 이유는 부의 축적 자체를 저지하고 정기적으로 재산을 소모해버리는 ‘순수소모’ 자체에 있다.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의 부가 축적되기 시작하면, 그 부는 무엇에 사용하게 될까? 남에게 빌려주어 이자를 얻거나 남을 고용하여 자기에게 필요한 일을 하도록 하는 데 사용될 게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축적된 부의 격차는 점점 커질 것이고, 결국 부자와 빈자의 격차가 커지며 계급대립이 생겨날 것이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정기적으로 필요 이상의 부를 소모해서 ‘죽여 버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축적’이 당연시된 자본주의 사회에선 이해하기 힘든 일일 게다.

타얼사에서 거대한 양의 금을 풍화되어 없어질 지붕의 기와에 칠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그대로 축적되어 버린다면, 남을 힘들게 할 목적으로 사용될 게 분명한 부를 소모해버리기 위해, 절에서 보시를 받아 마멸의 장소인 지붕을 장식하는 데 사용한 게 아니었을까? 장식만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바타유는 정확히 이런 관점에서 티베트사회를 분석한 적이 있다(‘저주의 몫’). 그에 따르면 가령 1917년 1년간 라싸 정부의 총 세입은 약 72만 파운드였는데, 이중 군사비로 쓰인 게 15만 파운드, 행정비용이 50만 파운드였고, 나머지는 종교행사비용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시기, 정부의 지출과 무관하게 사원에서 승려들이 소비한 금액은 100만 파운드가 넘었다고 한다. 정부예산 전체보다 많은 돈을 사원에서 쓴 것이다. 이런 식의 소모를 통해 부가 축적되어 ‘성장’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티베트의 사원에서 사용한 돈이 단지 소모적 장식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버려진 아이나 의지할 곳 없는 노인을 부양하고, 일찍 출가하는 이들을 모아 먹여 살리는 등의 ‘보시’를 역으로 대중들에게 베풀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사는 데 비추어 보면 ‘쓸모없는’ 장식에 부를 이렇게 소모해버리는 것은 아무리 인디언 얘기를 끌어들인다 해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가난한’ 나라 티베트에서 말이다.

그런데 잉여의 부를 소모하지 않고 축적하여 다른 데 사용했던 경우를 비교해 보면, 이런 소모가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바타유도 이를 위해 티베트사회와 이슬람사회를 대비하여 분석한다. 외부의 침입이 있어도 군대를 만들지 않거나 최소 규모로만 유지한 티베트와 달리 이교도와의 성전(聖戰)이 중요했던 이슬람사회는 모든 쓸데없는 소모나 낭비를 저지하여 부를 축적했고 그렇게 축적된 부는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이는 종교생활마저 군사적 필요성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빚었다고 한다. 요컨대 “이슬람이 전쟁을 위해, 근대 사회가 산업발전을 위해 잉여[적 부]의 전부를 축적한 반면, [티베트, 몽골의] 라마교는 잉여를 명상의 세계를 위해, 세계 속에서 인간의 자유로운 놀이를 위해 바쳤던 것이다.”(152쪽)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286호 / 2015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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