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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지상주의와 토끼 뿔

기자명 서재영
  • 법보시론
  • 입력 2015.03.16 15:32
  • 수정 2015.06.11 10:48
  • 댓글 2

지난 달 말 ‘종교를 걱정하는 불자와 그리스도인의 대화’라는 포럼에 참석했다. 불교, 천주교, 개신교를 대표하는 학자가 한국의 종교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입체적으로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첫째 마당은 포럼의 대표인 조성택 고려대 교수님이 열었다. 논자는 한국불교가 직면하고 있는 난맥상의 중심에는 깨달음지상주의가 있다고 했다. ‘깨달음은 사람이 사는 일에 답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한국불교는 깨달음지상주의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불교의 사회적 실천이 약화되고, 은둔적 도인불교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종교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애정 어린 대안을 모색하는 포럼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소박한 견해를 덧붙이고자 한다.

우선 논자가 지적하는 그와 같은 깨달음지상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재가자의 경우 기복신앙에는 열정적이지만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출가자 또한 깨달음을 위해 전 존재를 내던지는 수행자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일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달콤한 캔디명상은 유행하지만 생사해탈을 목표로 구경각을 추구하는 수행자는 기린의 뿔처럼 귀한 것이 현실이다. 물론 깨달음지상주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불교 난맥상의 중심’으로 지목될만한 그런 현상은 토끼 뿔처럼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불교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세속화와 황금만능주의다. 세간으로부터 지탄받고 있는 모든 문제는 종권과 돈에 관한 문제이거나 비윤리적 행위에 관한 것들이다. 만약 수행이 불교의 주류담론을 형성하고, 선승들이 불교를 좌우한다면 논자의 비판은 옳다. 하지만 수행은 더 이상 한국불교의 중심의제가 아니며, 종단에서 수좌들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왜소해지고 있다. 따라서 깨달음지상주의가 중심적 문제라는 비판은 본말이 전도되었다. 지금은 종교가 시장이 되고, 기도와 명상마저 상품으로 소비되는 시대이다. 황금만능주의가 문제의 본질인데 그 반대편에 있는 깨달음지상주의를 비판한다면 세속화로 치닫는 불교의 현실을 변론하게 되고, 황금만능주의의 병폐를 사면하는 담론으로 호도될 수도 있다.

한국불교의 위기는 오히려 깨달음지상주의의 부재에 있다. 황금만능주의와 세속화는 세간의 가치에 의해 승가와 교단이 잠식당했음을 의미한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출가정신의 회복, 출세간의 가치관을 올곧게 확립하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그런 전통을 회복하기 위해 봉암사 결사에서 ‘부처님 법대로’를 외쳤고, ‘깨달음에서 한 발짝이라도 물러서면 불교가 아니라’고 했다. 불교가 처한 위기의 본질이 출가정신의 부재와 세속화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황금만능주의는 세속의 가치에 매몰되어 밖을 향해 질주하는 삶이다. 세속주의는 욕망을 추구하는 삶이고, 그 욕망의 대상은 돈과 권력의 모습으로 외재한다. 그래서 중생의 삶은 끝없이 밖에 있는 황금을 향해 질주한다. 그와 같은 세속적 질서와 그릇된 가치관이 빚은 병통을 치유하기 위한 처방이 출세간의 길이다. 출세간의 길은 밖을 향한 무한질주에서 안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황금의 공성(空性)을 깨닫고 내면으로 돌아와 정주하는 삶이 출세간의 길이다. 자신의 성품을 바로 보면 불성을 지닌 존재이고, 부처님과 같이 위대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견성(見性)이다. 그런 깨달음이 철저할 때 내면의 빈곤은 지혜로 충만해지고 밖을 향한 질주는 멈추게 된다. 조사들이 회광반조(廻光返照)를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를테면 깨달음이란 세속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결박당한 자아를 해방하고, 밖으로 질주하는 가치관을 치유하기 위한 명약인 셈이다. 따라서 세속주의가 문제의 본질인 상황에서 깨달음지상주의를 단죄하는 것은 병을 치유할 약사발을 엎어버리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물론 필자의 우려는 논자의 글을 곡해하여 생긴 기우라고 믿는다. 아무쪼록 이번 포럼을 통해 한국의 종교가 앓고 있는 질병을 진단하고 명약이 처방되기를 기대한다.

서재영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puruna@naver.com

[1286호 / 2015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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