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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자비손’ 권현옥 산부인과의원장

부처님 땅서 생긴 병고 어루만지며 약사여래 닮아가다

▲ 부처님 탄생지 네팔 룸비니의 어린 환자들을 보며 ‘108 자비손’을 설립한 권현옥 원장의 더 큰 서원은 네팔 룸비니에 여성병원을 세우는 일이다.

영남지역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표 시장인 진주 중앙시장에는 각종 진료과목을 간판으로 내건 병원들이 밀집된 골목이 있다. 이 가운데 일반 병원과는 다른 특별한 공간을 가진 한 의원이 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랄 만큼 해외 의료봉사의 기록과 사진들이 빼곡하게 장엄된 곳, 권현옥산부인과의원이다.

친구·부모 등 3번의 죽음과 직면
호국사서 부처님 만나고 ‘환희’
친구와 약속 떠올리며 봉사 발원
네팔·인도 오지서 의료봉사 활동

소리 잃은 아이·죄인 같던 엄마
첫 진료 인연 맺은 가족들 기억
‘108 자비손’ 창립으로 이어져

진주 중앙시장 병원 밀집골목서
봉사 사진 가득한 산부인과 운영
병원 내 불화 장엄된 기도공간도

진료실 책장 위에는 아쇼카 왕의 석주를 본뜬 조형물이 놓여 있고, 맑은 눈망울을 가진 짙은 피부색의 어린이 사진이 걸려 있다. 병원 내에는 불상과 불화, 스님들의 글씨 등이 정성스레 장엄된 작은 기도 공간도 있다. 이곳의 주인공은 부처님의 탄생지 네팔 룸비니를 비롯한 네팔·인도 오지에서 10차 의료봉사를 회향한 ‘108 자비손’ 대표 권현옥(여련화, 53) 산부인과의원장이다.

▲ 봉사로 찾아간 곳서 모은 불상들.

“부처님의 나라에서 10번 의료봉사를 하겠다고 세운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위기의 순간마다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주신 수없이 많은 인연 덕분입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결코 갈 수 없는 길이었어요. 이제야 비로소 친구와의 약속을 지킨 것 같습니다.”

권 원장은 12년 전 유방암으로 세연을 다한 대학동료 고 전지혜씨를 떠올렸다. 절친했던 두 사람은 언젠가 자녀들이 성장하고 여유가 생기면 함께 해외 의료봉사를 다니자고 약속한 사이였다. 하지만 친구는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권 원장의 친정 부모도 세연을 다했다. 갑작스레 세 사람의 죽음과 마주한 권 원장은 삶의 허무함 속에 갇혀 버렸다. 세상 모든 일에 대한 의욕을 상실한 채 하루하루를 살던 날, 우연히 진주성 내 호국사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의 상호를 마주했던 그 순간을 권 원장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한참을 울었어요.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서 부처님을 바라보는데 미소가 그토록 평안할 수 없었습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됐지요. 그날 이후 매일 호국사에 갔어요. 돌이켜 보면 그 시간은 나 자신과의 대화였습니다.”

▲ 권현옥산부인과의원에는 불상과 불화, 스님들의 글씨 등이 정성스레 장엄된 작은 기도공간이 있다.

호국사가 스스로를 찾는 공간이었다면 지리산 길상선사에서는 참회와 서원의 도량이었다. 조용히 혼자 기도할 수 있는 곳을 물어 찾아간 길상선사에서 원담, 원행 스님의 지도아래 그는 오롯이 불교를 공부했다. 그리고 3년 뒤 진중하게 출가를 발원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수행하고 봉사하라”였다.

“제가 잘 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답은 의료봉사였어요. 친구와의 약속을 더 이상 미루지 말자는 생각이 번뜩 들더군요.”

그는 ‘이왕이면 부처님의 나라에서 10번 해외 의료봉사를 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마침 현대자동차에서 인도로 가는 해외 의료봉사팀에 덜컥 지원해 따라나선 것이 2008년의 일이었다. 당시의 봉사 장소는 인도 남부의 첸나이였고 그렇게 6개월 간격으로 세 차례 첸나이 봉사에 동참했다. 하지만 절반은 실망이었다. 부처님 나라 인도에 갔지만 정작 불교 사원도, 불교 신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불교 성지를 가야되겠다는 생각에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네팔의 룸비니였다. 무엇보다 첸나이에서 만난 네팔 여성들을 통해 네팔은 여성 인권이 매우 낮고 의료 시설도 열악하다는 상황을 접하고는 그해 겨울 네팔로의 의료봉사를 결심했다.

“혼자 나서기에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첫 의료봉사는 경상대와 로터리클럽, 한국경남여의사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네팔 포카라로 향했습니다. 포카라 의료봉사 일정을 마치고 홀로 큰 가방 3개를 다시 짊어진 채 10시간의 버스에 몸을 실어 룸비니로 향했습니다.”

▲ 권 원장이 처음 진료한 환자 가족들.

2009년 12월31일, 비로소 부처님의 땅에서 그의 첫 의료봉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룸비니 대성석가사를 진료소로 정하고 시작한 첫 진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첫 환자는 귀가 들리지 않고 말 못하는 5살짜리 여자 어린이였고 두 번째 환자는 1 살의 구개열 언청이 남자 아기였다. 얼굴 전체를 검은 천으로 가린 두 아이 어머니의 눈에는 빛이 없었다. 권 원장은 장애인을 낳았다는 이유로 죄인 취급을 받아왔을 여인의 인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메여 왔다. 진료를 마치면서도 처음 만난 두 환자를 기억 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그날 밤 기도 끝에 ‘무조건 살리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일을 계기로 시작된 것이 의료봉사 후원단체 ‘108 자비손’이었다.

“여자 어린이에게는 보청기를 마련해주고 남자 아기에게는 수술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국 지인들에게 십시일반 후원을 요청했습니다. 108명의 후원자가 모였고 두 어린이에게 한국의 온정을 선물했어요.”

진료실 뒤에 걸려 있는 사진의 주인공은 바로 그의 룸비니 첫 환자인 여자 어린이 ‘마씨다’였다. 그는 “사실 6개월 꼬박 일해서 일주일의 의료 봉사에 모든 돈을 쓰고 돌아온다. 힘든 시간들이 두려워 짐을 쌀 때마다 울곤 했다”고 밝히면서도 “해외 의료봉사의 어려움과 마주할 때마다 첫 환자 마씨다를 떠올리며 용기를 낸다. 이제 마씨다와 가족들은 룸비니에 가면 가장 먼저 달려와 인사하는 진짜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가 됐다”며 미소를 지었다.

▲ 처음 본 초음파 진료가 신기한 시람들.

여성으로, 의사로, 불자로 그의 원력은 룸비니에 머물지 않았다. 권 원장이 찾아가는 의료봉사 현장은 한 결 같이 부처님의 땅이었다. ‘금강경’이 설해진 기원정사가 있는 인도 쉬라바스티에서는 한국사원인 천축선원이 진료실이 되어 주었다. 마야 부인의 고향으로 알려진 네팔 데바다하의 야소다라초등학교에서 네 차례에 걸친 의료봉사도 교사와 학생, 주민들이 함께한 훈훈한 추억이 됐다. 최초의 비구니스님인 마하파자파티의 후손들이나 다름없는 비구니스님들이 머무는 사원을 찾아간 일도 잊을 수 없다. 네팔 마이트리야 스님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룸비니 무료병원 IBS에서 진료를 하게 된 것도 거듭 감사할 일이다. 특히 봉사 현장마다 권 원장이 한국 지인들의 도움으로 마련해 간 초음파 측정기의 위력은 대단했다. 권 원장은 “네팔 여성 환자들은 초음파 측정기를 처음 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에는 겉옷을 올리는 일조차 두려워했지만 이제 여성 환자들이 먼저 옷을 풀고 대기할 정도”라는 에피소드도 전했다.

그에게 위기의 순간은 헤아릴 수 없지 많았다. 그 중 7차 봉사를 마치고 돌아올 때는 ‘이대로 해외봉사를 끝내야 하는가’의 기로에 놓일 만큼 절박했다. 정말 돈이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척간두에 선 심정으로 귀국했을 때 그는 ‘제29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 수상’이라는 낭보를 접했다. 상금 3000만원의 큰 상이었다.

“수상 소식을 듣는 순간 ‘가피’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그 상을 받지 못했더라면 의료봉사가 끝났을지도 모른다”며 눈물겨웠던 당시의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 여러 단체에서 보내 온 수상 소식들이 그의 오지 봉사가 지속될 수 있는 끈이 되어 주었다. 지난 2월, 10차 봉사에서는 네팔 랑그랑 지역에서는 이대로 끝났을지도 모를 봉사를 연장하는 계기와 만났다.

▲ 수백명이 몰린 네팔 랑그랑 의료봉사.

“랑그랑은 룸비니보다 100배 열악하다는 얘기를 듣고도 부처님 사리가 모셔진 곳이라 꼭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의료봉사 소식을 듣고는 주민 수백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무질서한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그 때 저는 사람들 앞에서 ‘여러분이 질서를 지키면서 진료를 도와준다면 다섯 번 이곳을 찾아오겠다’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순서를 정하고 6시간 동안 마지막 한 사람까지 무사히 진료를 끝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요. 10회의 봉사를 마쳤지만 다시 네팔로 향할 이유가 랑그랑에서 생긴 겁니다.”

이제 그에게는 의료봉사와 더불어 한 가지 서원이 더 있다.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에 여성병원을 건립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병원이 없어 여성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번 생에 안 된다면 다음 생애라도 지을 것”이라고 굳게 결심했다. 결코 서두르지 않겠단다. 이미 언젠가는 해 낼 수 있다는 원력이 완전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항상 되새기는 ‘입보리행론’의 구절이 그의 서원에 싹을 틔우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행복은 남을 위한 마음에서 오고 세상의 모든 불행은 이기심에서 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여전히 자신을 위해 살고 지혜로운 사람은 남을 위해 산다. 자신의 안락과 타인의 아픔을 완전히 바꾸지 않으면 윤회세계에서 영원한 안락은 없다.’ 후원 : 경남은행 568-21-0198560 권현옥

진주=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286호 / 2015년 3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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