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변방서 새 역사 창조 꿈꾸는 모두에게 보내는 독려

상도선원 선원장 미산 스님
‘변방을 찾아서’ /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미산 스님은 “주류에 대한 동경을 원력으로 승화할 것”을 당부했다.

이 세상이라는 연극 무대에 오른 모든 이들이 주인공을 꿈꾼다. 주인공 혼자만의 힘으로 무대가 성립될 수 없음에도 모두가 ‘언젠가는 나도 주인공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삶의 무게를 감내하고 있다. 그만큼 주목받고자 하는 욕망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고, 더불어 주인공이 됐을 때 성취감과 자기 존재감을 만끽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자기 역할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 주인공, 아니 자신이 속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류의 편에서 살아가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그러한 사고는 곧 우리사회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갈등상이 형성되는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주류와 비주류, 중심부와 주변부는 현재 우리 눈앞에 펼쳐진 현상 그대로 화석화되고 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금의 수도 서울이 우리 역사 속에서 처음부터 중심부가 아니었듯, 또한 정치 지형에서 여당은 항상 여당이고 야당은 항시 야당으로 살아가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만일 주류와 비주류가 고정된 것이었다면 우리사회에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 과정을 거쳐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불교 선수행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중국 당나라 때 고승 임제선사가 ‘어디를 가든지 그곳에서 주인이 되면 서 있는 그곳이 진리가 되리라(隨處作主 立處皆眞)’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임제는 그래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역설했다. 깨달음에 방해가 된다면 일체의 권위와 도그마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 가르침은 스스로가 비주류의 삶을 산다고, 또 변방에 머물러 있다고 해서 패배주의에 젖어들지 말고,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와 문명을 창조하라는 질책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변방을 찾아서’ / 신영복 지음 / 돌베개
변방은 새로운 역사․문화 창조 공간
우리시대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류를 향해, 중심부의 삶을 위해 질주할 때 그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邊方)’을 주목한 이가 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20일을 복역한 후 출소해 현재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신영복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변방을 단지 주변부가 아닌 창조의 공간이자 새로운 역사가 도래할 곳으로 보았다. 때문에 지금 각자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다가올 시대와 문명의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변방성이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글씨가 현판이나 표지석으로 있는 여덟 곳의 변방을 찾아 이야기로 풀어낸 이 책 ‘변방을 찾아서’를 통해 그 가능성을 내보였다. 책은 해남 땅끝마을 서정분교를 시작으로 강릉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충북 제천 박달재, 오대산 상원사,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작은 비석이 있는 경남 봉하마을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글씨가 있는 여덟 곳을 답사해 그 글씨가 쓰여진 유래와 글씨의 의미, 그리고 글씨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존 벗어난 새 수행지도 도전에 용기
동국대와 인도․스리랑카에서 공부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1년간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는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체계적 학문연구에 몰두해온 상도선원 선원장 미산 스님은 이 책에서 변방이 새로운 역사와 문화 창조의 공간임을 엿보게 한 대목에 주목했다.
스님은 인도, 스리랑카, 영국, 미국에서 12년에 걸쳐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와 조계종 총무원 부장과 중앙승가대 교수로 재직하는 등 그동안 오랜 시간을 중심부에서 주류로 생활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 주류에서 벗어나 출가수행자로서 꼭 해야 할 시대적 과제를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수행체계 확립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가지 않았고, 누구도 섣불리 손대지 않은 일이기에 그야말로 ‘변방’에서 새 역사 창조를 꿈꾸고 있는 셈이다.
스님은 “기존 수행법들의 장점을 담아 큰 틀에서 현대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수행지도를 그려보고자 하는 도전을 시작하면서 그 가능성을 믿고 추진하게 독려해 준 책”이라고 소개했다. 새로운 수행지도를 그리는 일이 지금은 변방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지만, 그것이 대중적 공감을 얻었을 때는 곧 새로운 수행문화를 창조한 중심부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바로 그 출발점에 선 스님에게 큰 힘이 돼 주었다.
“지금 우리사회에 여러 불교수행법이 있는데 이 수행법들이 상호 유기적이지 못하고, 연관성도 갖지 못한 채 서로 내 것만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현상을 진단한 스님은 그 원인을 수행과 관련한 큰 지도를 그리지 못한 데서 찾았다. 그래서 스스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주류의 혜택을 많이 받았으니, 이제 변방에서 출가자가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서겠다”고 결단을 내린 스님에게 변방이 역사와 문화를 창조하는 공간임을 강조한 이 책은 마치 천군만마의 응원군과도 같았다.

변방에 섰음을 인식하는 순간 개혁 시작
현재의 스님 마음을 독려해주는 책에서 먼저 공감한 부분은 변방을 변방이라고 인식하고, 중심부에 대한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갖지 말라는 대목이었다.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가장 결정적인 전제가 있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 변방은 그야말로 변방에 지나지 않는다. 중심부에 대한 허망한 환상과 콤플렉스를 청산하지 못하는 한, 변방은 중심부보다 더욱 완고하고 교조적인 틀에 갇히게 된다.’
저자의 이러한 설명을 “패배의식에 젖어 주류에 대해 무작정 비판의 날을 세우는 사람들을 향해 자성을 촉구하는 말이기도 하다”고 분석한 스님은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한참 운동권에서 열심히 했던 사람들이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시각으로 변방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패배의식과 열등감에 젖어 비판으로 일관하는 이들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불교계를 비롯해 각자의 활동 범주에서 주류가 되지 못한 것에 한을 품고, 그러한 논리에 갇혀 의식을 고착화시키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스님은 그동안 주류에서 주목받으며 활동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주어지는 혜택도 충분히 누렸다.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을 스스로 내려놓고 재야에서 학문연찬 및 수행프로그램 개발과 보급에 주력하겠다고 결심한 스님은 여기서 “주류에 안주하면 의식이 침잠되거나 창의․창조적인 것이 발현되지 않는다”며 주류에 대한 경책도 잊지 않았다. 또한 변방에 있는 이들에게도 “건강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일 때 어느 시점에 발아가 시작되면 그곳이 중심이 되는 것이므로 패배의식에 젖어 있지 말고, 변방에 있음을 바로 인식하라”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문명도 생물, 변화해야 생존한다
우리 자신을 포함해 모든 생명이 항상 변화하는 것처럼 주류와 비주류, 즉 중심부와 주변부도 변화하고 바뀌기 마련이다. 그래서 스님은 무상의 원리를 바탕으로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곳이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 저자의 주장이 마음에 와 닿기도 했다.
‘변방이 왜 항상 다음 문명의 중심지가 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변방에 대한 즉물적 이해를 넘어 그것의 동학(動學)을 읽어 내는 것이기도 하다. 동학은 운동이고 운동은 변화이다. 문명도 생물이어서 부단히 변화하지 않으면 존속하지 못한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은 부단히 변화한다. 변화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중심부가 쇠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곳이 변화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스님은 저자의 이 이야기에서 무상의 원리가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음을 읽었다. 스스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변방에서 새로운 문화 창조의 발을 내딛은 스님은 “모든 존재 현상은 변화하기 마련인데, 변하는 것에 즉각적으로 적응하면서 창조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낼 때 결국 변방이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응할 것을 강조했다. 그렇게 적응할 때 창조가 가능하고, 변화를 창조로 바꿀 때 비로소 변방이 중심부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문명도 생물이기 때문에 변화해야 생존하고, 나아가 변방을 중심부로 바꿀 수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스님은 이 대목에서 “물론, 이론과 실제는 다르고 누구나 다 그렇게 하지는 못한다”면서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새로운 변화를 끌어내는 사람을 위인이라고 부른다”며 세간을 살아가는 모두가 변화를 통해 존재를 확인하는 시간을 갖기를 희망했다.

변방은 새로운 가능성의 출발점
일반적으로 변방은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부로 인식된다. 주로 낙후된 지역이다. 때문에 변방에 대한 주류사회의 관심은 사회적 약자와 마이너리티에 대한 온정주의적 시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저자는 스스로 ‘변방을 낙후되고 소멸해가는 주변부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의 전위(前衛)로 읽어 냄으로써 변방의 의미를 역전시키는 일이 과제가 될 것’이라고 화두를 던지고 있다.
스님은 바로 지금 그 화두를 풀어내고 있는 중이다. 스님이 지금 시도하는 일은 간화선, 위빠사나, 티베트수행 등 주류 수행에 비해 변방임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안 담론을 통해 대중과 공감할 수 있는 수행지도가 완성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변방이 곧 중심부가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님의 노력은 변방이 곧 새로운 가능성의 출발점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스님은 또 상원사 종소리를 듣고 ‘소리의 뼈는 침묵이라는 시구를 남기고 요절한 시인의 죽음이 생각났다. 지혜의 끝 역시 침묵이 아닐까. 그러나 내가 따라가 본 종소리의 끝은 침묵이 아니었다. 그것이 침묵이고 고요이고 적멸이긴 하지만 그곳에서는 감동의 장(場)이 펼쳐지고 있었다’고 한 저자의 표현에 눈길을 멈췄다. 자애미소 명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애미소 명상을 할 때 ‘옴∼’ 소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종을 쳐주면 그 여운을 따라가고 종의 여운이 완전히 끝나면 소리도 사라지는데, 그때 비로소 침묵을 알아차리게 된다”고 설명한 스님은 “그것이 곧 알아차림이 되고, 그때 인식의 영역이 생겨나면서 소리의 근원을 찾게 된다”며 침묵에서 인식의 영역이 생겨나는 것처럼 변방에서 새로운 문명이 생겨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중심부 동경을 원력으로 승화하라
고향이 전주인 미산 스님은 저자가 마지막 3년을 복역한 전주교도소 이야기를 전하는 대목에서도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광주항쟁 최초 희생자 이세종씨의 추모비에 글을 쓴 저자는 ‘우리 감방에서 내가 가장 오래 복역했지만 차마 출소 사실을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함께 노래를 불렀다.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내게 전주는 햇볕과 평화의 땅이었다’고 회상했다.
평소 이 노래의 노랫말을 좋아하는 스님은 2절의 가사 중 ‘무욕의 땅을 찾아’까지 연상하면서 그때 그 감방안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춥고 외진 곳으로 인식될 수 있는 변방에서 욕심을 내려놓는 무욕을 배우고, 따뜻한 평화의 중심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일에 더 정진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스님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주류가 되고 싶어 하고, 자신만의 목표를 세우고 성취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세속적 욕망인 그것을 보살의 원력으로 바꿀 수 있도록 사유하는 과정이 필요한 시대”라고 역설했다.
특히 스님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방에서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을 할 때 중앙에 대한 환상과 막연한 동경의식도 희석시킬 수 있다”며 동경을 원력으로 승화할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그러한 원력이 곧 직장이나 가정의 가치를 올곧게 유지할 수 있는 장치라고 덧붙였다.
스님에게 책은 어떤 사유과정이나 사유의 결과를 드러내는 도구와 같다. “저자의 경험을 함께 할 수 있고, 깊이가 있는 책은 공명이 된다. 마음에 거울이 비추듯 반영이 되는 것”이라는 스님은 습관적으로 한 달에 몇 차례씩 서점을 찾는다. 스님의 서점 나들이는 영국 유학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기도 하다.
오랜 외국생활 중 현지인들이 발음하기 쉽도록 사용하기 시작한 이름 ‘미산’은 ‘큰 산’이자 ‘온전한 산’이다. 그래서 미산 스님이 책을 펼쳐든 상도선원 3층 도서관 ‘수미재’는 서재이면서 미산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리고 지금은 변방에 머물러 있는 그곳에서 수행법을 망라한 새로운 수행지도 그리기의 큰 꿈이 움트고 있다.
sjs88@beopbo.com

*********************************************************************************************

미산 스님이 추천하는 책

 
‘심리치료에서 지혜와 자비의 역할’
Christopher K. Germer․Roanald D. Siegel 지음/ 서광 스님․김나연 옮김/ 학지사

심리치료와 불교의 마음수행은 정서적 고통을 극복하려는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심리치료사에게 연민심과 지혜는 정말로 가치 있는 특질인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기연민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세계에 알리고 있는 인물인데요. 그 과정에서 자비가 지혜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체계적으로 살피고 있습니다. 지혜와 자비는 새의 양 날개와 같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학술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수행을 했을 때 생리적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도 볼 수 있습니다.

 
‘자비의 심리학’
Lorne Ladner 지음/ 박성현 외 5명 옮김/ 학지사

임상심리학자이자 티베트 불교 수행자인 론 래드너 박사는 이 책에서 미지의 영역이었던 자비를 매일의 삶으로 가져와 자비가 미칠 수 있는 직접적이고 강력한 혜택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비의 심리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루는 것, 즉 적극적으로 자기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유연하고 개방적인 접근법을 독자에게 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접근법은 동양과 서양의 마음에 대한 각자의 장점이 조화를 이룬 것으로, 인간의 마음과 정서를 이해하기 위한 불교와 서양 심리치료의 깊은 대화를 이끌어 내고 있기도 합니다.

 
‘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 민음사

이 책은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20세기가 석유라는 에너지를 기반으로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경제 체제였다면, 지금은 오픈소스와 협력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말합니다. 또 공감하는 인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강조하며, 경제사에 ‘공감’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제시해 새로운 해석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온난화 등 현재의 문제들을 개인이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의 공감이 필요한 시대에, 저자는 근원적 문제들에 대한 공유와 확산이 이뤄지지 않으면 공멸로 갈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몸의 인지과학’
프란시스코 바렐라․에반 톰슨․엘리노어 로쉬 지음/ 석봉래 옮김/ 김영사

세계적인 인지과학자 프란시스코 바렐라와 그의 제자 에반 톰슨, 그리고 인지과학자 엘리노어 로쉬가 현상학, 정신분석학, 불교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의 경험과 과학 간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한 인지과학의 걸작입니다. 날카로운 학문적 통찰과 분야를 넘나드는 융합적 사고를 통해 과학적인 마음의 구조와 경험적 마음 사이에 공통된 기반이 있음을 치밀하게 입증해가는 책입니다. 저자는 불교와 과학이 어디까지 서로 공유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불교와 과학을 논한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조금 어렵지만, 살펴볼 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1287호 / 2015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