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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남지심 통일바라밀숲 대표

“가야할 목적지와 방법 알았으니 본전은 뽑은 셈이죠”

▲ 남지심 대표는 “보살의 길은 생명을 살려내고 세상을 변화시킬 지혜를 기르고 실천하는 일이다. 보살의 길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향은 회전취향(廻轉趣向)을 줄인 말이다. 자기가 지은 공덕을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고승 담란(476∼542) 스님은 회향에는 왕상회향(往相廻向)과 환상회향(還相廻向)이 있다고 했다. 왕상회향은 자신의 공덕을 모든 중생에게 회향해 함께 정토에 이르는 것이고, 환상회향은 다시 예토(穢土)로 돌아와 모든 중생을 교화해 함께 불도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완전한 회향은 자신이 쌓은 선근공덕을 되돌리는 것뿐만 아니라 일체중생과 함께 깨달음을 이룰 때 완성된다. 대승보살의 제일행원이 바로 회향이다. 자신만을 위하는 단파(短波)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그 어떠한 위치에서도 항상 남을 위한 이타적 방향으로 전환할 때 회향은 참의미를 갖는다.

허무감에 절망하며 보낸 젊은날
‘화엄경의 세계’서 목표 발견해
나를 완성하는 보살의 길 발원

“불교 전하는데 매진” 서원한 후
‘우담바라’ 등 불교소설 집필
우리는 선우 등 재가운동 주도

남·지·심(72·여량), 이름 석자에서 회향의 참의미를 본다. 그는 40여년 전 ‘보살의 길’을 발원한 후 문학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 왔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치열하게 실천했으며, 불교의 미래를 위한 희망을 길러내는데 정성을 다했다. 칠순이 넘은 지금도 초발심 당시의 지극함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극한의 어려움 앞에선 문수보살의 지혜가 되고, 포기하고 싶을 땐 지장보살의 행원이 되며, 솟구치는 삼독(三毒)에는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되어 온전히 보살의 길로 향한다. 그의 30년 지기(知己) 천양희 시인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품에 안을 듯 넉넉한 그의 마음에는 어떠한 외풍이 휘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은 굳은 불심이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자랑스러운 첫째 도반을 꼽으라니 바로 ‘남지심’을 꼽는다.

세간의 ‘남지심’은 밀리언셀러 작가로 통한다. 부처님의 결에 따라 소설을 썼으니 불교계에서는 신심 돈독한 불자작가로 이름난 지 오래다. 1980년 첫 소설 ‘솔바람 물결소리’로 문단에 데뷔한 후 불교를 작품에 담아내는데 평생을 바쳤다. 소설 ‘우담바라’는 속된 말로 ‘대박’을 쳤다. 150만권 이상 팔린 ‘우담바라’는 영화로까지 제작돼 불교가 세간에 다가가는데 크게 기여했다.

70평생의 길이 그러했으니 세간은 여전히 그를 유명 불교작가로 기억한다. 그러나 교계에서의 ‘남지심’은 작가로서의 명성뿐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행원보살’이다. 실제 그는 1991년 ‘우리는 선우’의 창립을 주도하면서 미래불교·지성불교·생활불교라는 3대 발원아래 새로운 재가불교운동을 주창했다. 또 국제개발NGO ‘자비를 나누는 수레꾼’을 만들어 캄보디아와 미얀마, 몽골 등 불교국가에 학교를 건립하고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천직이 작가이다 보니 후진 양성에도 마음이 쓰였다. ‘불교문학창작교육원’을 설립해 신진 불교작가 양성에 매진한 것이다. 최근에는 다가올 통일시대를 대비해 불자 새터민 청년들을 길러내는 ‘통일바라밀숲’에 농익은 열정을 쏟고 있다.

‘성공’이란 말이 자연스러운 그의 인생에선 ‘시련’이란 말을 찾기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70평생, 그에게도 큰 아픔이 있었다. 불법을 만난 후 순탄하기만 했던 그의 인생, 일흔 언덕에 막 들어설 무렵 병마가 찾아왔다. 폐암이었다. 병명을 확인하는 순간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가족도 형제도 아니었다. 그의 손길이 가장 절실한 북한 출신의 아이들이었다. 통일바라밀숲에서 조심조심 자유를 누리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수술을 하자는 의사의 권유마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 잘못돼 병실서 생을 마감하느니 남은 시간 아이들과 보내고 싶었다. 보살의 길을 걷겠다 했으니 마음이 먼저 아이들에게 향하고 있었다. 가족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이란 인연의 굴레로 ‘수술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가족들의 성화에 떠밀리듯 수술대에 올랐고 다행히 병마는 완전히 떠났다. ‘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는 ‘보왕삼매론’의 가르침은 병마를 털어낸 그에게 더욱 단단한 원력을 보시했다.

“선생님과의 인연이요? 이생에선 다시없을 인연입니다.”

황현우(30·외국어대4) 통일바라밀숲 회장이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속내를 보였다. 어머니 그 이상의 존재라는 의미다.

“선생님의 아픔을 듣고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친구들이 없었지요. 글쎄요? 선생님의 사랑은 이 땅에서 우리들이 살아가야할 삶의 이유이고 목표가 된 것 같아요. 학업을 마치게 되면 통일바라밀숲이라는 든든한 둥지를 떠나야 하는데 마음은 항상 선생님 곁에 머물 겁니다. 선생님은 우리들에게 어머니 그 이상의 존재니까요.”

그는 생(生)을 거두어 가려는 암 앞에서도 초연할 수 있었다. 항상 그의 몸과 마음을 사랑과 자비로 이끌어 준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그의 모습을 보면 전생부터 불자였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생에 불법(佛法)을 만난 것은 제법 늦은 나이였다. 32살이 되어서야 부처님을 뵈었다. 부처님을 뵙기 전, 그는 운무의 골짜기에 빠진 것 같은 허무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던 절망의 시기였다. 희망이 없으니 미래도 없었다.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목표도 찾을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자신에게 끝없이 소리치며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삶이란 무엇인가?’ 답을 찾을 수 없으니 그 무엇도 무의미했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이었다. ‘화엄경의 세계’라는 책을 만났다.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완전히 몰입했다. 특히 ‘십지품(十地品)’에 이르러 견성한 보살이 환희지를 거쳐 이구지, 발광지, 염혜지, 난승지, 현전지, 원행지, 부동지, 선혜지, 법운지를 넘어 성불에 이르는 장엄한 여정을 보는 순간, 캄캄했던 길에 빛이 깃들었다. 운무가 걷혔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답이 보살의 삶이었음을 깨달은 순간이다.

“보살의 여정이요? 이 장엄한 드라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견성한 보살이 성불에 이르는 전 과정은 설명을 통해 알게 됐지만 동시에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이르는 길을 설명을 통해 듣는 것과 비슷하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살의 길을 따라 가지 않고서는 부산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보살의 길’, 그것은 인생의 전부가 되었다. 그렇게 살리라 발원했다. 목표가 확연해지니 희망이 보였다. 보살의 삶을 실천하는 것은 이생의 목표가 되었다. 스스로를 완성해가는 것 이상의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확신했다. 불자로서의 발심을 다지며 보살의 삶을 따라갔다.

그는 4년 후 새로운 희망에 도전한다. 일간지에서 소설가 박완서씨가 나이 40이 넘어 등단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소설작법도 습작경험도 없던 그였지만 불과 보름 만에 장편소설 한 편을 탈고했다. 원고를 싸들고 조계사 대웅전에 계신 부처님 앞에 섰다. 지극정성을 다해 108배를 올렸다. 그리고 “평생 불교를 알리고 전하는데 매진할 것”이라고 서원했다. 그 길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응모했다. 며칠 후 꿈은 현실이 되었고 ‘당선’이라는 연락이 왔다.

그의 데뷔작 ‘솔바람 물결소리’는 이렇게 탄생했다. ‘솔바람 물결소리’는 책으로 출간된 뒤 43쇄를 찍을 만큼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속편인 ‘연꽃을 피운 돌’ 역시 39쇄를 기록했다. 그의 이름 석자를 세간과 출세간에 각인시킨 ‘우담바라’는 밀리언셀러의 대기록을 세웠다. 스스로를 완성해가는 길을 걷겠다는 발심과 평생 불교를 알리는데 매진하겠다는 서원은 그렇게 영글었다.

그 즈음 그는 새로운 재가운동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하는 불교와 현실의 불교는 너무나 달랐다. 추상적인 가르침에 머물면서 이기적 기복에 매달리고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는 당시 불교의 모습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동떨어져 있었다. 그와 생각을 같이하는 재가불자들이 속속 결집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우리는 선우’다. 어찌 보면 ‘우리는 선우’는 그가 발원한 보살의 길을 대중결사모임으로 확대한 셈이다. 이후 만들어진 ‘자비를 나누는 수레꾼’이나 ‘불교문학창작교육원’, ‘통일바라밀숲’ 역시 단체의 이름과 역할만 다를 뿐 불교를 알리고 전한다는 면에서 일맥상통한다.

새로운 재가운동은 최근 인재불사로 이어지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사람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법. 그가 ‘불교문학창작교육원’, ‘통일바라밀숲’을 시작한 이유다. 목표도 구체적이다. 불교작가 30명과 새터민 청년불자 33명을 길러내는 것이다. ‘불교문학창작교육원’을 통해 벌써 5명이 등단했고, 10여명이 교육을 받고 있다. ‘통일바라밀숲’에서는 새터민 대학생 28명에 대한 장학금과 밑반찬 등 생활지원과 함께 원융적 사고를 지닌 지도자로 육성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재능있는 청년들에게 부처님 사상을 심어줘 그들로 하여금 좋은 문학을 하게하고, 향후 맞이할 통일시대를 대비하게 한다면 그거야 말로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일 아닐까요. 마치 한 알의 밀이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썩어서 생명을 틔우면 많은 생명이 탄생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미력한 힘이지만 부처님 일에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불교는 나에게 살아가는 의미의 전부이고 살아가는 목적의 전부이며 살아가는 방법의 전부니까요. 가야하는 목적지를, 그 목적지에 이르는 길을 알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금생에 본전은 뽑은 셈이죠.”

그는 말한다. “보살의 길은 생명을 살려내고 세상을 변화시킬 지혜를 기르고 실천하는 일”이라고. 이를 위해 마음 한 켠에 혹시 자리 잡을 수 있는 방일함을 멀리하고, 진실하고 또 진실해서 거짓이 끼어들 자리가 없도록 가꾸며, 그 진실이 마음에 자리잡아 삼독(三毒)이 끼어들 여지가 없도록 온전히 가꾸며 살 뿐이라고 했다.

부처님은 ‘우다나’에서 “나 자신이 되어 나의 길을 걷는 것은 즐거움이다. 두려울 것도 없이, 걱정스러울 것도 없이, 언제나 매 순간 자신의 길을 걷는 즐거움 속에서 깊은 충만을 느낀다”고 했다. 되풀이되는 범속한 일상을 온전한 자신의 길로 채워가기에, 남지심 대표의 오늘은 늘 새롭고 좋은 날이다. 내일도 그렇게 좋은 날이 되리라.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287호 / 2015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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