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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불교문화, 여성들의 답사

기자명 조승미
  • 법보시론
  • 입력 2015.03.23 15:12
  • 수정 2015.05.19 10:07
  • 댓글 0

길 위의 인문학이 시대의 한 조류가 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길 위로 나와서 함께 무언가를 듣고 찾아다닌다. 무슨 무슨 아카데미, 학교, 답사회, 여행 등등. 봄이 되니 더 많은 프로그램들이 쏟아진다.

먹고 사는 문제 외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우리사회가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진 듯하다. 물론 아직도 대중문화는 무얼 먹을까, 어디에 맛있는 것이 있을까 하는 욕망을 채워주기 더 바쁘지만, 한편에서는 어디에서 새로운 것을 배울까, 무엇을 느낄까 하는 대중의 욕구도 커지고 있어, 이에 부응하여 이와 같은 인문학 대중화가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매김하는 중인 것이다.

인문학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르네상스라고 불릴 정도로 붐을 이루고 있다고 평가된다. 물론 대학에서의 인문학은 소위 구조조정 1순위로서 ‘말살의 위기’에 여전히 봉착해 있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급감하고 폐쇄되는 학과가 많아지고, 연구자들이 설 곳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학 담장을 넘은 인문학은 이처럼 대중화의 봄을 맞이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길 위의 인문학 문화가 창출되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길’이 문화화가 된 것은 제주부터 시작하여 전국적으로 확대된 이른 바 ‘둘레길’ 걷기와도 관련이 있는 듯 하다. 쉴 새 없이 너무도 빨리 달려야 했던 한국 사람들이 느리게 걷기를 통해 치유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빠르게 통과하기 위해 뚫어졌던 길이 아닌, 자연에 순응하여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그 길 자체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발견하기 시작하였다. 길이 달라지니까 길을 걷는 방식이 달라지고, 길에서 경험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길 위의 인문학은 단지 교양을 지적으로만 얻는 것이 아닌, 직접 걸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감성의 가치와 함께 체험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차이가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길 위에서’ 인문학을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길 위에 있는’ 것을 성찰한다는 점 또한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길 위에 있는 것’은 주류 문헌에서 배제되고 밀려나 있는 것이 많다. 관념보다는 생활 속에 있었던 것이 많으며, 엘리트층보다는 민중의 문화와 관련된 것이 많다. 그리고 여성들이 지켜온 아주 오래된 신앙문화의 유적 또한 포함된다.

불교 또한 이 땅에서 오랫동안 민중의 삶과 함께 해 온 유적이 길 위에 남아있다. 또한 그  속에는 여성을 신성하게 여겨 온 오래된 신앙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한편, 여성들로 하여금 길로 나아가게 한 것 또한 바로 불교였다. 유명한 불교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홀로 전국을 여행했던 고려시대 여성이 있었으며, 조선시대 유교 가부장제 속에서도 여성들이 길을 떠나고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대체로 불교를 통해서였다.

이처럼 불교는 한국 여성의 삶 그리고 길 위의 문화와 오랫동안 함께 해 왔는데, 이제 그 유적을 찾기 위한 여정에도 또한 불교여성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종교와 젠더 연구소에서 주최한 불교여성문화답사 프로그램이 그 첫 시도로 열린 것이다.

논자가 첫 번째 안내자가 되어 지난 주 서울 근교의 여성과 산신 그리고 불교문화 유적을 함께 답사하였다. 민중들은 불상을 할미라는 이름의 여신으로 믿고 신앙하기도 했으며, 사찰의 산신도가 아무리 남성노인 일변도가 되었어도, 여전히 여성 산신도가 모셔져 신앙되고 있는 작은 암자의 사례들을 볼 수 있었다.

길 위에서 우리는 그동안 잃어버렸던, 그리고 이제까지 봐왔던 것과 조금은 다른 불교문화를 만날 수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길 위에서 그 흔적들을 발견해 모은다면 지금과 다른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승미 서울불교대학원대 연구교수 namutara@gmail.com

[1287호 / 2015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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