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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청소년포교-보령 세원사

아이들 마음에 뿌린 불법 씨앗, 사찰 밝히는 꽃으로 만개

▲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PC방, DVD실, 독서실 등을 갖춘 보령시청소년문화의집은 지역 청소년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2012년 5월2일, 보령 세원사 주지 정운 스님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지역에서 20여 년 동안 청소년 육성과 선도보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스님은 불교 불모지인 보령에 세원사를 세운 뒤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에 매진해왔다. 보령시청소년자원봉사센터와 보령시청소년문화의집 등을 운영하며 자칫 엇나갈 수 있는 청소년들이 바른길을 걸을 수 있도록 지도하는 한편 마음껏 뛰어놀며 재능을 키워나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을 설립해 탈선 예방 캠페인 등에 앞장서기도 했다. 당시 스님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기의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대통령 표창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스님, 그리고 세원사는 “더욱 노력하겠다”는 약속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청소년들을 위한 다채로운 활동들을 펼쳐나가고 있다.

1989년 가건물에서 출발
청소년포교에 초점 맞추고
어린이법회에 영어강의도
학부모 찾아와 신도 증가

시내에 봉사센터 개원한 뒤
청소년 관련 사업 본격 추진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지면서
시에서 먼저 사업 제안하기도

2005년 청소년문화의집 개원
‘청소년포교 거점’ 자리매김

보령시에서 스님은 ‘청소년 전문가’로 통한다. 세원사는 조계종 포교원이 인가한 ‘어린이청소년포교중심도량’이다. 유독 불교세가 약한 충청남도 보령에서 스님과 세원사가 갖는 의미는 그래서 남다르다. 특히 관공서에서는 ‘청소년 관련 사업은 정운 스님이 최고’라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이러한 인식은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낸 결실로, 스님이 보령에 자리를 잡았을 무렵에는 지금과 상황이 많이 달랐다.

▲ 단아한 느낌을 자아내는 세원사 전경.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한 스님은 전국비구니회 소임을 맡던 중 건강이 악화돼 요양 차 보령으로 향했다. 어느 날 시내버스 안에서 한 아주머니가 스님을 “아줌마”라고 불렀다. 이 지역에서의 불교 위상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상황에 맞닥트린 스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 학업을 이어가고자 대만 유학을 준비했지만 고민 끝에 이를 포기하고 포교에 전념하겠다고 서원했다. 지인의 도움으로 고추밭이었던 지금의 세원사 터를 마련한 뒤 슬레이트 지붕에 블록벽으로 30여 평 건물을 지었다. 스님은 당시부터 포교의 대상을 ‘청소년’으로 특정했다. 성인신도를 늘려 세원사를 빠르게 성장시켜나갈 수도 있었지만 ‘그동안 스님으로서 받은 것들을 환원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보일러를 가동해도 냉기가 가시지 않는 법당에서 아이들을 모아 법회를 열었다. 한문과 영어도 가르쳤다. 곧 입소문을 타고 아이들이 하나둘 늘었다. 아이들이 늘어나자 학부모가 세원사를 찾았다. 아이들을 잘 이끌어줘서 고맙다며 쌀과 고춧가루 등을 가져왔다. 세원사의 첫 초하루법회에는 단 3명이 참석했지만 인근 화력발전소에 근무하는 직원들까지 아이들을 따라오면서 법회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93년, 스님은 가건물이나 다름없었던 법당을 허물고 새 법당을 세웠다.

건립불사가 마무리되고 정운 스님은 다시 한 번 고민했다. 세원사의 지리적 여건상 많은 아이들을 데려오기 힘들었고, 경제적 여건상 많은 아이들을 만나기 어려웠다. 그때, 사찰 밖으로 눈을 돌리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1995년 청소년교화연합회 보령지부를 설립하고 아이들의 자원봉사활동을 지도했다. 시내에 청소년자원봉사센터 사무실을 마련해 접근성을 강화했다. 자신부터 전문성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에 1997년 청소년지도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 2012년 거리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그렇게 3년 동안 청소년들을 지도해온 결과, 보령시에서 먼저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운영을 의뢰해왔다. 청소년교화연합회 보령지부는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으로 지정받았다. 스님은 세원사 시주금 대부분을 상담복지센터와 유해환경감시단 등 청소년사업에 투여했다. 공양주도 두지 않고 직접 반찬을 만들며 절약한 돈은 갖가지 사업으로 전환돼 보령지역 청소년들에게 돌아갔다. ‘환원’에 대한 스님의 발원은 그만큼 굳건했다.

시간이 흐르자 보령시 관계자들의 인식이 서서히 바뀌어갔다. ‘시에서 해야 할 일을 스님이 직접 자부담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자성과 그에 따른 감사의 마음이었다. 때마침 정부 차원의 청소년문화의집 건립 계획이 발표됐고, 보령시에서 스님에게 관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스님은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직원들과 함께 청소년문화의집 프로그램을 구성해나갔다. 댄스, 드럼, 기타, 가야금, 풍선아트 등의 강의를 만들고 PC방, DVD실, 독서실을 마련했다. 상담복지센터와, 자원봉사센터, 유해환경감시단도 입주시켰다.

▲ 세원사에서는 매주 토요일 청소년 도예교실이 열린다.

청소년문화의집이 지역 청소년문화 중심지로 발돋움하자 스님은 그때까지 축적한 역량을 세원사에 연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2006년 세원사 경내에 ‘도예와 차문화 명상센터’를 건립하고 관련 지도자를 육성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명원문화재단 다도예절문화원 보령지부를 설치해 차 문화 보급에 적극 나섰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청소년문화의집 도예교실은 명상센터에서 진행되도록 했다. 덕분에 세원사의 주말은 늘 도자기를 배우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1989년, 세원사가 가건물에서 출발했을 때는 그야말로 손에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 스님과 함께할 신도도, 사찰의 규모를 키워나갈 자금도 없었다. 그럼에도 스님은 ‘환원’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욕심을 버린 채 청소년 사업에 정성을 기울였다. 어쩌면 무모했을지도 모르는 이 선택은 결과적으로 세원사 발전의 커다란 원동력이 됐다. 스님이 지도했던 청소년들은 이제 성인이 돼 어엿한 세원사 신도가 됐다. 청소년 사업을 진행하면서 불교적 색채를 드러내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불자가 된 청소년들도 적지 않다. “스님 옷자락이 보이게 하는 것만 해도 큰 포교”라는 스님의 믿음이 실제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게다가 법회에 참석하는 대부분이 청장년층이라는 점은, 스님이 30여 년 동안 지역에 뿌렸던 불법의 씨앗이 활짝 만개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처럼 세원사는 지역의 청소년포교 거점도량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스님은 이제 ‘학교 밖 청소년’으로의 사업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 갖가지 이유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바른 길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청소년문화의집은 이미 포화상태라 보령시와의 협의를 통해 여법한 공간을 조성하려고 계획 중이다. 잠시 숨을 고를 만도 하건만 스님의 열정과 노력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매년 부처님오신날 즈음. 보령시 곳곳에 ‘세원사에 가면 문화가 있다’는 플래카드가 나부낀다. 경내에는 연꽃과 단주를 만들고 차도 마실 수 있는 체험부스가 가득 들어선다. 아이들은 먼 길 마다하지 않고 세원사를 찾는다. 스님으로서 받은 것을 청소년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마음이 오늘의 세원사를 만들었다면, 이제부터의 세원사는 이들 청소년들이 만들어나갈 것이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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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서 무덤까지’ 사찰 속 시스템 구축해야”

세원사 주지 정운 스님

▲ 정운 스님
“이웃종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신도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왔지만 불교계는 아직 그러한 체계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신도들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찰과 함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강구해야 합니다. 청소년 포교는 그러한 시스템의 허리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태어나 성장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으며 결국 죽음에 이르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사찰이 함께하는 시스템은 정운 스님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그래서 스님은 세원사 신도가 아이를 낳으면 영유아 수계식을 열고 이름도 지어준다. 지금까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청소년 사업 역시 스님이 구상하는 시스템의 연장선상에 있다. 어린이집이나 노인요양원을 운영하는 사찰은 있지만 청소년 관련 시설은 찾기 어려운 현실에 주목, 어린이와 노인을 연결한다는 의미도 담았다.

스님은 “불교는 어느 종교보다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며 “청소년포교에 초점을 맞추겠다면 교구본사 차원에서 법인을 설립한 뒤 국비를 지원 받아 문화유산을 체험하게 하는 방식부터 시작하면 된다. 결코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월정사 성보박물관의 예를 들었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은 2년 연속 ‘박물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에 선정돼 박물관 콘텐츠와 인문학이 연계된 교육프로그램 운영에 대한 사업비를 지원받는다. 스님은 “이 프로그램 참가를 위해 강원도 내 청소년들이 월정사로 모이게 되는데, 이는 풍부한 불교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모범사례”라며 “사찰이 먼저 손을 내밀면 사회는 이에 화답할 것이고, 결국 불교의 미래인 청소년들도 사찰에 모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스님들이 사찰 내에서만 머무르려고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사찰 밖으로 나갈 것을 주문했다. 스님은 “편해보겠다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결국 아무도 찾아오지 않게 된다”며 “대우받고 싶다는 마음을 던져버리고 지역과 사회로 적극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1287호 / 2015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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