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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미타불의 인지법행-중

기자명 이제열

아미타불은 수행과 깨달음 드러낸 방편

▲ 오타카지 소장 ‘관경십육관변상도’.

아미타불의 전신인 법장비구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은 앞서 밝힌바 있다. 또 법장비구와 관련된 일화들 역시 다분히 신화적 성격을 띠고 있다. 만약 법장비구가 실존 인물이었다면 아미타불을 신앙하는데 엄청난 힘을 발휘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더욱 큰 믿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중 어떤 부처님을 더 신뢰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석가모니불이다. 석가모니불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실존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공의 인물인 법장비구와 그를 둘러싼 수행의 과정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미타불의 전신 법장비구
부처님 전생담과 닮은 꼴

가공인물 법장비구 통해
수행과 성불의 길 드러내

‘심청전’에서 효가 중요하듯
법장비구 서원과 구도 중요

그에 대한 답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로 법장비구는 역사적 실존 인물인 석가모니불의 대승적 전개라고 이해할 수 있다. 법장비구는 석가모니불과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석가모니불의 구도정신과 수행동기를 더욱 확대시키고 장엄해 중생들로 하여금 불법의 이치를 깨닫게 하기위한 방편이다. 석가모니불이 성불하게 된 것은 금생의 출가와 수행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성불은 다겁생래(多劫生來)에 닦아 온 보살도의 결과로 한량없는 세월동안 육바라밀·십바라밀 같은 수행을 했기에 가능했다. 일반인들은 석가모니불의 성불은 사마타와 위빠사나 같은 명상을 통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명상은 성불에 중요한 수행덕목은 될 수 있어도 전체가 될 수는 없다. 성불은 명상만이 아닌 바라밀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법장비구는 이런 석가모니불의 수행과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석가모니불이 전생에 보여준 발심과 구도의 모습이 법장비구를 통해서 비슷하게 그려지고 있다. 석가모니불이 연등불을 만나 서원을 발하고 수기를 받는 것처럼 법장비구도 세자재왕불을 만나 서원을 하고 수기를 받는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법장비구는 서방에 극락정토를 세우고 모든 중생을 그곳에 태어나게 하겠다고 원을 세운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장비구는 석가모니불의 전생을 새롭게 각색하고 법장비구가 지니고 있는 진실을 중생들에게 한껏 드러내기 위한 방편의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도 해소되지 않는 과제는 있다. 법장비구의 배경이 되는 석가모니불의 전생은 과연 실제적 사건이냐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불이 코끼리로도 태어나고 비둘기로도 태어난 일화나 설산동자 또는 선재동자가 되어 수행한 일화들이 그렇다. 석가모니불의 전생 구도행위가 실제 이야기였다면 법장비구의 구도행위에도 모순이 덜해진다. 하지만 석가모니불의 전생구도 행위가 법장비구처럼 똑같이 설화적 성격을 띠고 있다면 사실에 입각한 설득력은 떨어지고 만다.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번째 답변이 필요하다.

석가모니불의 전생담과 비슷한 법장비구의 이야기는 중생들에게 세상의 진실을 깨우쳐 주기 위해 만든 모델이다. 불교에서 볼 때 중생들은 미혹한 존재이고 나약한 존재다. 이들은 무명과 번뇌 속에 업을 짓고 오욕락을 탐하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마음의 무한한 공덕과 청정과 광명을 등진 채 어둠 속에서 태어나 어둠 속에서 스러져 간다. 오로지 세상의 어둠을 뚫고 광명으로 나아간 이는 부처님 밖에 없다. 부처님은 무명과 번뇌와 업의 그물로부터 벗어나 대 자유를 얻고 세상을 불쌍히 여기며 중생들을 제도하는 분이다. 이때 부처님이 바라본 인간의 본질은 부처님과 같은 존재이다. 겉으로는 어둠과 고통 속에서 헤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중생이 부처님과 더불어 아무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부처님의 눈으로 보기에 그러할 뿐 중생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꿰뚫어 보긴 어렵다. 중생들은 미혹하여 자신의 본성은 물론 세상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는 안목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혹에 잠겨있는 중생들을 향한 설법과 사건이 필요하다. 특히 중생을 깨우칠 때에는 사건과 경험을 수반하였을 때 실감이 증폭된다. 상대방에게 그냥 착하게 살면 복 받는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실제로 착하게 살던 사람이 복 받은 이야기를 하면 훨씬 설득력이 높아지고 실천으로 이끌기도 수월하다. 부처님이 중생들을 깨우치게 하는 방식도 이와 같아서 중생들에게 그냥 수행을 말하지 않고 어떤 인물을 설정하고 그 인물이 걸어 온 과정을 만들어서 수행을 말하였던 것이다. 부처님으로서는 이 세상에 부처님처럼 발심을 하고 수행을 한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 부처님의 수행은 전생의 일화처럼 진실하고 처절한 심경 속에서 구현된 것이다. 비록 석가모니불의 전생과 법장비구의 일화가 설화의 성격을 띠고는 있지만 이는 부처님 내면에 깃들여져 있는 무형의 인물이며 사건들이다. 우리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인해 발심과 서원을 하고 수행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다면 이 세상에는 발심도 서원도 수행도 존재할 수 없다. 석가모니불의 전생담과 법장비구의 구도과정은 부처님 내면에 깃들여져 있던 수행 원리와 깨달음의 원리를 방편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중생들로 하여금 그 원리들을 세상 속에서 실제적 사건으로 실현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형식은 설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부처님은 이를 통해 인간이 걸어야 할 진실을 밝히고 이와 같은 설화들이 세상 속에서 실제로 구현될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예를 들어 ‘심청전’에 있어 심청전이 사실이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심청의 효심이다. 심청은 가공인물이지만 효심은 인간의 내면에서 발현해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마찬가지로 법장비구의 일화에서 법장비구는 가공의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가 발한 서원과 구도심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다.

이제열 법림법회 법사 yoomalee@hanmail.net


[1287호 / 2015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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