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금당에서 바라본 세상
쌍계사 금당에서 바라본 세상
  • 하림 스님
  • 승인 2015.03.30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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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정상탑이 있는 쌍계사의 금당(金堂)에 올랐습니다. 마당에 올라서는 순간 금당까지 길게 놓인 바닥의 돌이 혜능 스님에게 연결되어 있는 탯줄처럼 느껴집니다. 왠지 부드러워 보이는 돌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절을 올립니다. 세 번으로 부족한 것 같아 일곱 번을 했습니다. 고개를 드니 작은 금당의 주련이 들어옵니다.

오랜만에 찾은 금당 주련서
잊고 있던 삶의 진리 되찾아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인데
끊임없이 구하려했던 것 참회

‘본래 한 물건도 없다.(本來 無一物)’ 그것을 보는 순간 갑자기 뭔가 무겁게 지고 있던 등짐이 툭하고 내려지는 느낌이 듭니다. 갑갑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면서 새벽의 차고 맑은 바람이 확 들어옵니다. ‘아! 해방된 느낌이 이것이구나, 오랜 감방에서 풀려나는 자유인이 된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느낍니다.

‘밝게 비추지만 비추는 자는 없다(明鏡亦無臺)’는 다음 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얼굴에 작은 미소가 그려집니다. 보고 듣고 알아듣는다고 하지만 그것도 주체가 없다는 말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텔레비전에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처럼 나의 일도 남의 일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다만 인연 따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경험들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어찌 털어낼 먼지가 있겠습니까.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조차 내려놓게 됩니다.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마음에 걸림이 없고, 그러므로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늘 외우면서도 ‘뭔가 해야만 하지 않을까’라는 강박에 쫓기고, 뭔가 이루어야 한다는 조급함에 쫓기는 나를 돌아봅니다.

밤사이 무서운 호랑이에 쫓기고 식은땀이 흐르는 것처럼 현실에서도 의무감과 강박감이 쫓아옵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말에 갑자기 나를 돌아보게 되고, 그래서 ‘아무것도 나를 쫓아오지 않는다’라는 현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비로소 고요와 평화를 만납니다.

혜능 스님이 지금 안 계신 것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스님의 법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긴 세월을 보낸 것이 부끄럽습니다. 지금 현재에도 여기를 찾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지금 이 시간 여기에 온 것은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저는 새벽 3시30분이면 대종과 북을 울려야 했습니다. 오랜만에 큰 산 큰 절에서 새벽예불을 마치고 발길 가는 데로 이끌려서 왔던 것입니다. 금당에 오르니 첫눈에 감사의 마음이 전해지고 기둥에 새겨져 있는 스님의 가르침을 듣고 이제 안에 들어와서 1시간을 스님과 독대를 합니다. 무겁고 힘들다고 투덜거리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이제 맘이 너무 가볍고 편안해진다고 말하면서도 또 웃게 됩니다. ‘가볍고 편하다’라는 분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많이 힘들어하는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 아닌가 싶습니다.

힘들어하는 그들에게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말 한마디가 죽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혜능 할아버지 스님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래 힘들지, 너무 힘들어 하지 말거래이, 본래 한 물건도 없는기다. 힘들고 괴롭다고 하는 그 맴이 어디 있노? 고마 놓아도 된 데이, 그냥 놓고 살거라. 그만하면 다행 아이가.”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할아버지 스님이 저를 다독이며 위로해 줍니다. 그러고 다시 세상을 보니 적어도 세상이 저를 힘들게 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제 스스로가 짐을 지고 살았습니다. 짐을 내려놓으려고 발버둥 치면서도 그 짐이 무엇인지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스님의 ‘본래 무일물’이라는 말씀이 내가 들고 있는 짐이 본래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합니다. 이 가르침이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치유의 약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몸이 아프면 약을 찾듯 마음이 아플 때에는 경전에 처방이 있습니다. 누구도 이런 사실을 깨닫도록 해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부처님과 조사스님의 은덕이라 믿습니다. 오늘 새삼 감사하고 또 감사해서 다시 절을 올립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1288호 / 2015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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