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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지훈- 고사

기자명 김형중

한 폭 동양화 연상되는 서정시

목어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 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청록집’

만해 지조·시 계승한 시인
한가로운 산사 모습 묘사
세상사 갈등·시비가 없는
자연 그대로의 평화 그려

조지훈(1920~1968)은 혜화전문(동국대학교 전신)을 졸업하고, 고려대 교수가 되어 지식인을 대표해 자유당 독재와 군사정권에 항거하였다. 지성과 양심을 지키고 실천하는 상아탑의 지성인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경북 영양 출신으로 유교의 명문가에서 자라나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당시 시인 가운데 한글시와 한시를 함께 구사한 시인은 만해와 조지훈 밖에 없다. 조지훈은 17세에 성북동 심우장에서 살고 있는 한용운을 찾아갔다. 한용운의 지조와 시를 계승하였다. 그는 ‘지조론’의 필자로 을사늑약을 맞아 절명시를 남기고 자결한 매천 황현(黃玹)과 만해 한용운을 잇는 지사의 맥으로 자리매김했다.

‘고사(古寺)’는 한가하고 평화로운 산사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깊은 산속에 숨은 옛 절 법당에서 어린 사미승이 목탁을 치다가 졸고 있다. 노승 또한 툇마루에 걸터앉아 참선을 하는지 조는지 무심하게 앉아 있다. 어린 상좌나 노승은 서쪽 만 리 쯤 떨어져 계신 부처님나라를 생각하고 있다.

모란이 피고 지는 유월 초여름, 고즈넉한 산사에 저녁노을이 지고 있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산사의 모습인 한 폭의 동양화가 연상되는 사실적인 서정시이다. 세상사 갈등이나 시비를 찾아 볼 수 없는 무위(無爲)와 천진 그리고 자연 그대로의 평화로움이 나타나 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고 나서 우담발화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자 마하가섭만이 염화시중 이심전심으로 말없이 웃음으로써 부처님의 뜻을 알아차렸다. 선적인 깨달음을 상징하며 법열(法悅)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졸고 잇는 상좌마저도 포용하는 부처님의 자비, 관용이 시를 읽고 있는 독자마저 웃음 짓게 한다.

‘서역 만 리 길’은 부처님의 땅 서방정토이다. ‘눈부신 노을’은 해가 지는 서쪽하늘에 장엄한 노을이다. 세속적인 번뇌를 초탈하고 서방극락정토에 계신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하는 분위기이다. ‘모란이 진다’는 부귀를 상징하는 꽃잎이, 큰 모란꽃이 서쪽으로 고요히 떨어져서 평화와 정토의 나라로 향하는 느낌을 연상하게 한다. 그의 시는 전통적인 언어적 운율과 선적인 미학이 승화된 시이다. 언어의 절제와 여백미가 드러나는 은은한 옛 절의 풍경을 묘사한 시이다. 이 시의 주제는 고요와 정적 속에서 피어나는 평화로운 기쁨이다.

당송팔대가인 소동파가 왕유의 시를 보고 평가한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고 한 시론처럼 ‘고사’는 한가하고 평화로운 동양화 한 폭이 그려지는 회화적인 최고의 시품격론인 ‘그림 같은 시’이다.

조지훈은 ‘시선일미(詩禪一味)’와 ‘현대시와 선의 미학’이란 시론에서 ‘선시’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시인으로 미당과 함께 만해의 불교시를 계승한 후예로서 한국현대시의 대표적 시인이다. 박목월·박두진과 함께 ‘청록집’을 간행하여 우리 민족의 정신과 영혼의 고결함을 보여준 청록파 시인으로 불린다.

그가 불교를 소재로 직접 불교를 노래한 시가 ‘승무’ ‘고사1-2’ ‘앵음설법’ ‘범종’ 등이다. 김동리는 ‘자연의 발견’에서 조지훈의 시를 평론하였는데 그의 불교적이고 선적인 시를 최고로 평가하였다. 조지훈은 시인으로서도 성공했고, 한국학의 토대를 세운 학자로서도 성공한 과소평가된 위인이다.

김형중 동대부중 교감·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288호 / 2015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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