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 류수훙 장편소설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기자명 이미령

다섯 아이 아버지가 악착같이 돈을 모은 이유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류수훙 장편소설
이영아 옮김
소수
중국 화이허강 주변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쑨궈민(孫國民)은 농민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그래도 글깨나 읽은 사람 축에 속하지요. 그는 동갑인 착한 아내 쑤구이펀(蘇桂芬)과 알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국 농민 쑨궈민이 주인공
1가구 1자녀 정책 감시 피해
고향 떠나 떠돌이 생활 시작

넝마 주워 파는 어려운 형편에도
5남매 구걸행위는 단호히 막아
악기 연주로 형편 나아지지만
돈 쓰는 법 없이 궁색한 삶 유지

마지막 문장서 밝혀지는 이유
독자들 가슴에 큰 울림 전해

바지런하고 손재주가 있어서 농사도 잘 지었을 뿐만 아니라 수르나이라는, 우리의 태평소 비슷한 관악기를 꽤 잘 불어서 사방 백 리 안의 잔칫집이나 초상집에는 늘 불려갔습니다. 그래서 쑨궈민은 동네 다른 집들과 달리 여유가 있었지요.

단 하나, 아쉬운 점은 자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결혼한 지 벌써 한 해가 지났건만 아내에게 태기가 없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수군거렸고, 특히 쑨궈민의 짓궂은 친구 쑨젠빙은 대놓고 그를 조롱했습니다. 쑨젠빙은 보란 듯이 아내와의 사이에 자식을 다섯이나 두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은 1가구 1자녀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당국의 입장이야 자식이 없는 쑨궈민이 모범인민이요, 자식을 다섯이나 낳은 쑨젠빙은 골칫거리를 넘어서서 범법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쑨젠빙은 아들을 낳을 때까지는 불임 수술을 받지 않겠다며 배째라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둘째 아이부터는 벌금이 2만 위안. 그러니 가난한 농민들로서는 이 벌금을 낼 능력이 없었고 따라서 둘 이상을 낳게 되면 몰래 버리거나 내다팔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어찌되었거나 자식이 없던 쑨궈민은 꾀를 하나 냅니다. 함께 사는 벙어리 삼촌에게 버들가지로 광주리를 만들어 달랜 뒤에 그걸 아내의 배에 두르게 한 것이지요. 누가 보더라도 아내는 번듯한 임신부가 되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임신인 만큼 그는 동네잔치를 크게 벌였습니다. 물론 다달이 조금 더 큰 광주리를 바꿔서 배에 두르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아내 배가 점점 부풀어 오르자 쑨궈민은 도시로 나가서 버려지는 아이를 물색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지요. 그렇게 초조하게 시간만 보내던 그의 옆에 작은 보따리 하나가 놓입니다. 그 속에는 “좋은 분이 거둬 키워주세요.”라는 종이쪽지 한 장과 함께 분홍빛 볼을 가진 여자 아이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쑨궈민과 쑤구이펀은 자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들은 동네 밖 시내에서 아이를 낳은 척 일을 꾸민 뒤 개선장군마냥 아이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뜻밖의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정부당국이 그의 집을 감시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자식을 낳았지만 딸이니, 분명 아들을 낳겠다고 할 것이고, 그렇다면 정부정책을 어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의 친구인 고위관리는 뻔질나게 쑨궈민의 집을 드나들며 불임수술을 받으라고 잔소리와 협박을 해댑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불임수술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 자신들의 진짜 아이를 영원히 낳지 못하게 될 게 빤하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부부는 마을을 몰래 빠져나갑니다. 이들에게 산아제한을 강요하는 정부 관리들로부터 도망친 것이지요.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소설은 이렇게 해서 이들 부부가 중국 전역을 돌면서 온갖 고생을 하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러잖아도 농민공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나가려고 기를 쓰고 있는 때입니다. 고향에서 농사를 짓느니 차라리 도시로 가서 구걸하는 게 훨씬 돈을 잘 벌기 때문입니다. 특히 갓난아이를 품에 안은 여성의 경우는 더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쑨궈민은 구걸하기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 대신 그는 넝마를 줍습니다. 도시 주변을 돌아다니며 넝마를 줍고 그걸 팔아서 한 푼 두 푼 모읍니다. 얼마나 무섭게 돈을 모으고 또 얼마나 무섭게 모은 돈을 아끼는지 그의 어린 딸은 아이스크림이란 걸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런 가운데 그는 모두 다섯 명의 자식을 두게 되었습니다. 제일 큰 딸은 쑨허쉬, 둘째는 아들 쑨허주, 그 밑으로 두 딸 이름은 쑨허메이, 쑨허리, 그리고 막내딸은 쑨허팡입니다. 하나같이 향기롭고 아름답게 살라는 뜻의 이름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부자 되고 건강하라는 뜻의 이름을 짓고 싶었지만 쑨궈민은 속물 같이 보일까봐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고향을 떠난 부평초 인생들에게는 범죄의 유혹이 따라붙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구걸 패의 왕초가 찾아와서 말합니다.

“다섯 애들을 빌립시다. 애들이 구걸을 해오는 대신 하루 세 끼와 애 하나당 하루에 십 위안을 줄 테니.”
그렇다면 다섯 아이만 잘 이용(?)하면 이들 부부는 앉아서 매달 천오백 위안을 버는 셈입니다. 하지만 쑨궈민은 단칼에 거절합니다. 아이들 몸값이 점점 올라가지만 요지부동입니다. 돈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중국 땅에서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쑨궈민과 그 가족들의 노력은 눈물겹습니다. 그나마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뜻을 잘 따라주고 형제들끼리 사이좋게 잘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게 안타까웠던지 아버지 쑨궈민은 수르나이를 가르쳐줍니다. 놀잇감이 생긴 아이들은 아주 열심히 연습했고, 공원에서 재미 삼아 불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집니다.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이 아이들의 연주를 듣더니 돈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구걸처럼 보일까 봐 쑨궈민은 거절했지만 사람들은 좋은 연주에 대한 답례라고 말하며 기꺼이 지불합니다. 그리하여 이들 가족은 어느 사이 수르나이 부는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되었고, 거리에서 연주로 벌어들이는 돈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쑨궈민은 그 돈을 무섭도록 지킵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궁색을 벗지 못했고, 아내는 친정집에 좀 보태주고 싶다며 하소연하지만 단 한 푼도 내놓지 않습니다. 아내가 목을 매달아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이렇게 다섯 아이를 데리고 타향으로 떠돌면서 지내다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날. 쑨궈민은 고향 어귀에 이르러서야 아이들에게 생전 처음 새 옷을 사서 입힙니다. 이제 큰 집에서 살며 학교도 다닐 수 있다며 들뜬 아이들 앞에 쪼그리고 앉은 아버지는 마침내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아버지가 그토록 억척스레 모은 돈을 어디다 쓸 것인지에 대해서….

요즘 중국에서 들리는 소식은 하나같이 돈과 연관된 일뿐입니다. 해외여행에 나선 중국여행객들이 매장 물건을 싹쓸이한다는 소식은 이젠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되는 일은 뭐든 하고, 그 돈을 보란 듯이 써버리는 중국 사람들의 모습은 두려울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중국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호적도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사람의 목숨 값이 헐하기 짝이 없는 나라가 중국 아닐까 합니다. 이런 중국에서 아버지 쑨궈민 역시 악착같이 돈을 모으는 수전노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모은 돈을 어디에 쓰려는지 소설 마지막의 딱 한 문장이 모든 걸 말해줍니다.

“아빠는 이 돈으로 너희들한테 다 호적을 만들어줄 거야. 가짜가 아닌 진짜 호적을. 이제부터 너희들은 호적을 갖는 거야. 진짜 사람으로 사는 거란다.”

떳떳하게 벌금을 내고 진짜 호적을 만들어주겠다는 아버지의 이 결심으로 소설은 끝을 맺습니다. 중국현대소설이라서 술술 읽히는데 마지막 장에서 쿵 하고 울림이 찾아올 줄 몰랐습니다.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고 사는 일. 이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사노라면 절망스런 일을 맞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운명을 탓하고 무릎을 꿇지만 쑨궈민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밖을 좀 봐. 나무가 있고, 강이 있고, 돼지가 있고, 마을엔 사람들이 있어. 하늘은 비를 내리고 땅에서는 곡식이 자라고 말이야. 당신이 살면서 태양이 제때 뜨지 않은 걸 본 적 있어? 우리가 키우는 돼지나 닭이 살기 싫다며 죽여 달라고 한 적 있어? 하늘을 나는 새가 떨어져서 머리를 박고 죽은 것 봤어? 그러니까, 하늘의 뜻에 따라 땅에서는 곡식이 자라고 사람은 땅에 발붙이고 사는 거야. 나무가 있고, 강이 있고, 낮에는 해가 뜨고 밤이면 별과 달이 뜨고, 사람이 별 탈 없이 사는 것도 그래. 스스로 살기 싫으면 어쩔 수 없지만,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싶다면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태어난 것 자체가 불법이어서 호적도 갖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벌금 낼 돈을 모은 아버지는 믿는 구석이 있었던 것입니다. 살려고 들면 못 살 것도 없다는 것이지요.

‘하늘이 사람을 세상에 내보냈으니 필히 살길도 마련해놨을 거야.’

여섯 가족을 거느린 아버지 쑨궈민의 이 좌우명에 여러분은 동의하시는지요.

이미령 cittalmr@naver.com

[1288호 / 2015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