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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7. 불법을 배우는 목적-2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5.03.31 12:48
  • 수정 2016.01.05 16:10
  • 댓글 0

이 땅에서 지옥 없애고 극락 세우는 것이 불법

 
나는 어릴 적에 집이 가난하고 건강이 좋지 않아 심리적인 고통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처량함뿐이었다면 그것이 바로 고통입니다. 나 자신이 건강과 자비,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그것을 나처럼 질병의 고통, 마음의 고통, 가난의 고통, 여러 가지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나처럼 건강, 즐거움, 자비를 얻을 수 있도록 말이죠. 20여 년 전 나는 그랬습니다. 그때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오늘날까지 말이죠. 나의 인생에서 불법에 대한 깨달음의 길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수행은 건강과 즐거움의 원천
지혜 열리면 번뇌는 깨뜨려져

행복 끌어당기는 구심점은
차별 없이 남 도울 때 생겨나
집착없는 자비행 익숙해지면
여러분 스스로가 관세음보살

지금 바로 수행 공덕 쌓아
이번 생에 행복 성취해야

경험을 여러분에게 말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나, 진푸티의 불법에 대한 인식과 불교학이 사람에게 주는 근본적인 혜택이 무엇인지 이해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불법을 공부하면 첫 번째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먼저, 수행하면 건강하고 즐겁습니다. 며칠 동안 수행하면서 일어섰다 앉았다 하거나 온종일 앉아 있기도 하는데 그 시간을 되돌아보면 고통인가요? 낙인가요? 즐거움이며 자재로움입니다. 자재로움이 무엇일까요? 온몸이 아주 편안하고 마음이 밝아 예전에는 생각만 해도 화가 나던 사람이나 일이 지금은 전혀 고민되지 않는 겁니다. 자신의 지혜가 포구에 붙여 놓은 종잇장처럼 번뇌를 부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미 날아간 포환은 종이가 아니라 철판이라도 꿰뚫을 수가 있어요. 번뇌는 종잇장처럼 꿰뚫기 쉬운 것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많은 수행자가 수행 후 이렇게 말합니다.

“시어머니의 ‘시’자만 들어도 화가 났는데 지금은 시어머니 이야기를 해도 아주 즐거워요. 제가 멍청해진 걸까요?”

예전의 모습이 멍청한 것입니다. 지금은 지혜로워서 즐거움을 느끼는 거예요. 시어머니가 잘못했고 며느리에게 상처 줬다고 해도 지금 생각할 때 증오심이 없고 번뇌가 없고 고통스럽지 않다면 여러분은 이미 해탈한 것입니다.

“에이, 그렇게 쉽게 해탈하나요?”

하지만 해탈합니다. 아주 간단하죠. 그래서 우리는 수행으로 건강과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장수를 의미합니다.

결혼 적령기의 선남선녀가 마땅한 혼처를 찾지 못할 때는 불법을 공부하고 마음을 열어 사람들을 도와주세요. 물론 항상 관심이 가는 대상만 골라 도움을 줘서는 안 돼요. 많은 사람을 돕다 보면 자연히 좋은 인연이 생깁니다.

이렇듯 구심력이 생기게 됩니다. 구심력이 뭘까요?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입니다. 단지 한 명만 오는 것이 아니니 절제해야 합니다. 좋은 인간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그럼 번뇌도 줄어들어요. 매일 집에만 있으면 나이가 많든 적든 혼자서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함께 이야기할 친구가 없으면 아주 심심할 거예요. 여러분이 호화로운 아파트에 살아도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으면 정말 지루할 거예요. 친구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서로 깊이 있게 마음을 나누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삶을 함께할 지기를 찾으면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면 우리 자신이 즐거워지는 거죠. 이렇게 뻔한 이치는 수행하다 보면 자연히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정수를 배우면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을 도울수록 지혜로워집니다.

내가 사람을 돕는 방법은 중국 광둥 사람이 끓이는 탕과 같습니다. 천천히 작은 불에서 끓이듯 말입니다. 그리고 돕는다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비로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 동정의 마음, 연민의 마음으로 습관처럼 남을 도와야 합니다. 습관이 되면, 스트레스를 안 받으니까요. 돕겠다는 스트레스도 없고 깨우쳐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없어요. 바로 가장 쉽게 도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바로 이렇게 습관을 기르고 익숙해지면 여러분이 바로 관세음보살입니다.

나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초기의 불법 사용단계는 바로 실용성입니다.

나는 이 인간 세상에서 지옥을 내쫓고 극락세계를 세우고 싶습니다. 그것이 가능해야만 참된 불법이고 깨달음이며 진정한 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해탈을 지금의 육체가 죽은 후 다음 생애에 맡기면 어떻게 될까요? 시험해 볼 수 있어요.

“스승님, 배고파요.”
“그래, 다음 생에 먹어라!”

어떤 느낌이세요? 똑같은 이치입니다. 여러분의 아이가 아플 때 의사가 “다음 생에는 나을 겁니다.” 라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현실에 근거하여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즉신수행, 즉신성취, 각행원만은 불법을 공부하는 가장 실용적이고 참된 부분입니다.

자신이 자비심과 하나 됨이 불법의 최고경지입니다. 자비를 떠난 불법은 없습니다. 인과의 도리에 맞지 않는 불법은 옳지 않은 법입니다. 자각각타가 없으면 원만이 아닙니다. 중생을 제도할 수 없다면 부처님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부처가 아닙니다. 깨달음을 얻고 사람을 도우면서 공덕을 쌓아 성취하면 원만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즉, 원이 크고 선행을 많이 하면 공덕이 많아집니다.

분명히 정말 행복해도 스스로 고통을 느끼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은 업장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지난날의 악업 말입니다. 수행에 정진하고 보시하고 선행하면 빠르게 순조로워집니다. 무한한 지혜를 갖추어 인생이 성공적으로 풀립니다.

불법에는 인류를 위한 최초의 생활의 도, 행복의 도, 기업경영의 도, 국가통치의 도, 치수관리의 도가 있습니다. 또한, 천문학, 의약학, 윤리학, 건강학, 삼라만상을 포함하고 있죠.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아십니까? 만족하고 감사하면 됩니다. 언뜻 들어보면 자주 본 말이에요. 만족하고 감사하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신물이 난다면 업장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그 자체가 황금 열쇠임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의 황금 열쇠죠.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은 상대방의 노고에 감사하고 이미 과거였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사랑에 감사하는 겁니다.

시어머니가 나무라더라도 “남편을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죠? 생각해보세요. 행복의 근원을 잊으면 안 됩니다. 좋은 남편을 만났는데 뒤에서 시어머니를 미워하면 근원이 파괴됩니다. 그런데도 남편이 행복할까요? 남편이 무병장수할 수 있을까요? 남편이 장수하기를 바란다면 시어머니를 잘 모셔야 합니다. 윗사람에게 아부하면 관직이 오르고 시어머니에게 아부하면 행복이 보장됩니다. 시어머니한테 아부할 수 있겠죠? 부처님이 시어머니한테 아부하면 안 된다고 하신 적 없죠? 그럼 해도 됩니다. 시어머니한테 아부하는 것은 망언이 아니에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효도입니다. 시부모를 내 부모로 생각하고 어머니, 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렇다고 친정부모를 등한시하면 그것은 잘못된 거죠. 죽느냐 사느냐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극단적인 방법은 잘못된 거예요. 큰 사랑을 해야 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면서 시어머니를 존경할 줄 모른다면 뭐가 될지 상상해보세요. 행복의 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비법입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시어머니에게 아부를 잘하는 것입니다. ‘무슨 상사님이 저렇게 저속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비법, 묘책, 민간요법은 모두 저속해도 아주 효과적입니다. 특별한 효과가 있습니다. 시험해 보지 말고 귀가하면 바로 시작하세요. 시어머니가 안 계시는 분들은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세요. 이 비법을 많은 여성에게 알리면 그들이 행복해지고 당신도 행복합니다.

“효과가 아주 좋아요. 남편이 너무 잘해줘요.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와요. 번 돈은 모두 나한테 줘요.”

시어머니한테 잘 대하면 시아버지는 당신에게 더 잘합니다. 왜 그럴까요? 무림고수들은 점혈법을 쓰죠? 혈맥을 찾아 정확히 짚는 겁니다. 왜 이걸 가르쳐주느냐고요? 여러분의 이고득락을 위해서입니다. 남편이 말을 안 듣는 건 여러분의 잘못이에요. 처세를 모르기 때문이죠.

실용적이고 저속할지라도 바로 우리가 사는 환경입니다. 저속함이 아니라 바로 행복입니다. 당신의 모든 인생은 매일, 매 순간 서로 연결되어 행복하고 길상한 시간이 더 많다거나 즐겁고 자재로우면 그 인생은 행복한 인생입니다.

나는 번뇌와 고통이 없을까요? 나도 고통과 번뇌가 있습니다. 고통과 번뇌는 가장 짧은 시간에 그 실체를 파악해야 합니다. 때론 자신도 흐리멍텅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 발생하였을 때 예를 들어, 내가 생각하기에는 완벽하고 모두에게 이로우며 중생을 제도하는 좋은 일인데 어떤 사람이 와서 찬물을 끼얹습니다. “이것이 틀렸다, 저것이 잘못됐다”고 하면 화가 나다가도 다시 한 번 생각하면 그 속의 일부 내용은 내 생각을 더욱 보완해줘서 기분이 바로 좋아집니다. 이 음양어가 한 바퀴 돌면 검은 것이 희어지고 흰 것이 밝아져 그에게 감사하게 됩니다. 비록 쓴소리만 하기는 했지만 원래 충고는 귀에 거슬린다고 했으니 미안한 마음에 그에게 사과하고 돌아서서 마음 속으로 그를 위해 아미타불을 염송했습니다. 그가 나날이 발전하도록 부처님이 도와주어 다음에도 귀에 거슬리는 충고를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마음이 바로 바뀝니다.

나도 항상 이런 문제에 부딪히기 때문에 늘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빨리 전환할 수 있고 빨리 상태를 인식할 뿐입니다. 응용을 위해 우리는 불법을 배웁니다. 수행자 여러분과 불법의 정수를 전수받은 인연 있는 사람이 유머러스한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을 얻기 바랍니다.

불법은 진실한 마음과 깨달음에 있습니다. 진실한 마음은 깨달음을 낳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번뇌는 각양각색 변화무쌍합니다. 불법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모두 번뇌와 관련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자신의 그림 실력을 더욱 높일까? 이 자체는 번뇌가 아니죠. 오히려 영감이고 가피이며 부처님의 빛을 널리 비추는 승화입니다. 때로는 승화가 번뇌이지만, 때로는 승화가 즐거움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결하려는 일, 불법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문제, 우리에게 가져다준 에너지는 번뇌만을 겨냥한 것이 아닙니다.

실직한 사람들을 보면 몸이 피곤하진 않지만, 마음이 피곤해집니다. 왜 일자리가 없을까? 우리가 할 일이 있고 실직하지도 않았다면 일은 하면 할수록 더욱 많아집니다. 회사에서 봤을 때는 일이 많아지면 즐거운 일이겠죠? 자신이 이상적이라 믿는 일을 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죠. 함께 할 수 있든 없든 말입니다.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해도 행복합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합니다.

경전에 보면 부처님은 내가 성불할 수 있으니 중생도 성불할 수 있다 하셨는데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중생이 인연의 조화로 지금 인연이 있어 깨달은 스승과 함께 공부하면 이 생애에 바로 오늘이라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인연에 따라 사람을 돕고 우리에게 보살과 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도우라는 계시를 주죠. 자비로운 중생제도 길을 감으로써 부처님의 과위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불법의 수행과 공덕 쌓기에서 법보시가 가장 수승합니다. 그럼 무엇이 법보시일까요? 이고득락하는 방법과 도리입니다. 법보시를 하고 있거나 법보시가 충분하지 않을 때 이곳에서 가장 훌륭한 불법을 공부하고 깨달을 수 있다면 모두를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이는 보살과 같습니다. 지금 착한 일을 하여 미래에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성취한다면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본분입니다. 가장 위대한 일이며 사람을 도우면 더욱 즐겁고 공덕이 무한하여 부귀하고 길상할 것입니다.

2010년 11월 한국 부산 (번역 : 정금주)
제공 : 한국 보리선수 약사선원

[1288호 / 2015년 4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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