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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라도 찾아 안고싶지만 우리에겐 힘이 없습니다”

세월호 실종자가족 대표 다윤 양 아버지 허흥환

▲ 다윤 양 아버지 허흥환 세월호 실종자가족 대표는 “세월호 안에 아직 딸이 있다”고 절규하고 있다.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동안 딸의 운동화와 모자 그리고 가방만 부여잡은 부모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혹시 허다윤 양을 아는지. 경기도 안산 단원고 2학년 2반 다윤이는 지난해 4월16일 이후 깊은 바다 속 세월호에 갇혀있다. 친구들은 하나 둘 주검으로나마 부모와 가족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다윤이는 침몰한 세월호에서 지금까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년. 다윤이처럼 아직도 깊은 바다 속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이 9명이 된다.

350일 넘게 딸 흔적 찾아 헤매
운동화·모자·가방만 돌아와

청와대 앞에서 1인 피켓 시위
아픈 몸에도 나온 아내와 교대

배 인양 약속한 정부 묵묵부답
딸 생각에 숨 쉬는 것도 미안
“뼈라도 찾아서 껴안고 싶다”

다윤이 가족은 세월호 유가족이 아니다. 세월호 실종자가족으로 불린다. 실종자가족 대표인 다윤이 아빠 허흥환(51)씨는 그래서 사랑하는 딸과 아직 작별인사도 하지 못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209일째인 11월11일 실종자 9명을 남긴 채 세월호 수색을 중단했다. 당시 정부는 빠른 시일 안에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식과 남편을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정부 결정을 수용했다. 그러나 지금도 세월호는 인양되지 않았다. 정부는 오히려 예산 타령을 하며 실종자가족의 가슴을 후벼 파고 있다.

허 대표는 2월25일부터 아내 박은미(45)씨와 함께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세월호를 인양해 하루빨리 딸을 찾아달라며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아빠 기억 속 다윤이는 착하기만 한 둘째 딸이었다. 엄마는 희귀병의 일종인 뇌종양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다. 다윤이가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도 엄마는 병상에 누워 있었다. 다윤이는 이모가 마련해 준 돈으로 어렵게 수학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길을 떠난 딸은 영원히 못 올 길로 떠나버렸다. 함께 떠났던 친구들은 하나둘 부모 품에 안겼다. 그러나 다윤이는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 누워있다. 가족들이 찾은 것이라곤 아빠가 사준 새 운동화와 언니에게 빌려간 모자, 가방뿐이었다.

“뼈라도 찾아 안아보고 싶습니다.”

▲ 다윤이 엄마는 아픈 몸에도 피켓을 든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2주 앞둔 4월1일 청와대 1인시위 현장에서 만난 허 대표는 피켓 속 다윤이의 사진을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사진 속 다윤이는 아빠를 보고 있었다. 아내는 치료를 포기하고 매일 남편과 교대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37일째 경기도 안산에서 매일 출퇴근 중이다. 아내는 희귀병으로 몸이 약해 10분 이상을 서 있지 못한다. 종양이 뇌를 눌러 귀가 잘 들리지 않고 어지럼증이 심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간 적도 여러 번이다. 그러나 깨어나면 바로 현장으로 달려와 피켓을 들었다. 아내는 몸이 아파 딸에게 잘해 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피멍으로 맺혀있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그립고 보고 싶다. 엄마로서 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피켓 들고 거리로 나가는 것밖에 없다는 사실에 가슴이 무너진다. 마를 법 한 눈물이 딸 이야기만 나오면 병색 완연한 눈에서 절로 흐른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은 차마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숨죽여 목으로 울었다. 

-다윤이 엄마가 몸이 많이 아픈 것으로 알고 있다.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여러 번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몸 상태가 많이 안 좋다. 잠시도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다. 병원에 있어야 하는데 그럴 처지가 못 된다. 딸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살아있다고 해도 살아있는 목숨이 아니다. 딸을 그렇게 보내고 어떤 부모가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나. 차라리 죽어서라도 딸을 빨리 만나고 싶다.

-4월16일이 세월호 참사 1주년이다. 지난 1년을 어떻게 견디셨는지.

남들에게는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슬픔과 고통은 그대로이고, 무엇보다 딸이 아직도 차가운 바다에 누워있다. 지난해 4월16일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갔을 때와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당시에는 체육관에 있다가 구조작업이 진행되면 바지선으로 바로 달려갔다. 딸의 흔적이나마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희망도 사라졌다. 그래서 1년이라는 시간이 우리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다. 딸을 생각하면 자는 것도 숨 쉬는 것도 미안하다. 꿈에서라도 딸을 만나 안아보고 만져보고 싶다. 잠자리에 누우면 차라리 잠에서 안 깨어났으면 하고 바라기도 한다.

-세월호 가족들이 피켓시위까지 하게 만든 정부에 서운함이 많을 텐데.
정부가 지난해 11월 진도 팽목항에서 수색을 중단할 때 우리에게 약속했다. 인양도 한 방법이라고. 그 말을 믿고 지금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인양을 안 하고 있다. 그래서 보다 못해 1인시위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는 진도 팽목항에서 했던 대통령의 말을 정확히 기억한다. 마지막 한 명까지도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주겠다. 그 약속을 믿었다. 우리의 바람은 제발 그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뿐이다. 인양이든 재수색이든 제발 딸을 우리 품으로 돌려달라는 거다. 그립고 보고 싶어서 살 수가 없다. 딸의 뼈라도 찾아서 품에 안아보고 싶다.

-정부 내에는 인양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나. 그리고 그렇게 많은 돈이 안 든다.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는 말이 있는데 터무니없는 소리다. 천안함도 인양했고, 이탈리아 유람선도 인양했다. 무엇 때문에 세월호만 어렵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국민이다. 세월호에 갇혀있는 사람들도 국민이다. 그러니까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폄하하고 가족들에게 국론분열을 일으킨다며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 피켓 시위에 나섰을 때 많은 상처를 받았다. 천안함 사건이냐, 세월호 가족들은 보상금 다 받아서 끝난 것 아니냐, 그런 말들이 비수가 돼 가슴에 꽂혔다. 그럼에도 딸을 찾겠다는 신념으로 이 자리에서 꿋꿋하게 버텼다. 덕분에 지금은 많은 국민들이 진실을 알고 있다.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하고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아직까지 아이들이 배 안에 갇혀 있었냐 하며 전하는 위로의 말은 큰 힘이 된다. 세월호가 인양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국민들도 많다. 그래서 희망을 갖는다. 제발 배를 인양해 달라. 세월호에 갇혀 있는 이들이 꼭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

-실종자 가족으로서 세월호 유가족을 바라보는 심정이 다를 것 같다.
함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한 가족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유가족이 한없이 부럽다. 오죽하면 우리도 실종자 가족이 아닌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말했겠나. 유가족의 아이들은 이미 양지바른 곳에 묻혔다. 그래서 그립고 보고 싶을 때 찾아갈 수도 있다. 무덤이라도 만져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우리는 딸을 만나러 갈 곳이 없다. 배가 인양돼야 뼈라도 만져볼 텐데 그마나도 할 수 없다. 이런 현실이 정말 미칠 듯이 괴롭다.

-다윤이는 어떤 딸이었나.
자식을 가진 부모의 마음이 다 같을 것이다. 한없이 착하고 예뻤던 딸이다. 못난 부모 만나 많이 못해줘서 너무나 미안하다. 싸움 한 번 하지 않았다. 뭘 사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엄마가 아프니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렸다. 그게 더 가슴 아프다. 부모는 죽어야 자식을 버릴 수 있다. 하루빨리 찾아서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싶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친구들이 다윤이를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을 것 같다.
세월호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침몰한 세월호에는 아직도 사람이 타고 있다.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 달라.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를 인양해야 한다. 우리의 바람은 오직 그 것뿐이다. 배를 인양해 딸을 찾고 싶다. 제발 예쁜 딸의 뼈라도 찾아서 껴안고 싶다.

허 대표는 너무 오랫동안 직장을 비운 까닭에 해고됐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딸을 찾을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고 싶은 심정이다. 다윤이는 단원고 학생 중에서 유일하게 학생증이 발견되지 않았다. 죽은 후에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지금까지 손에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못해 시리다. 4월16일이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년이다. 허 대표는 지금도 잠자리에 들 때마다 다윤이를 품에 안는 꿈을 꾼다. “예쁜 우리 딸 엄마 아빠가 많이 보고 싶어.” 딸에게 그 말을 꼭 들려주고 싶다.

김형규 편집부장 kimh@beopbo.com

[1289호 / 2015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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