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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남 구례 오산 사성암

약사마애불 미소 짓자 섬진강 흐르고 벚꽃 피다

▲ 유리광전(약사전)으로 향한 길은 유럽 중세의 한 고성(古城)으로 이어진 돌길을 연상시킨다.

‘버릴것 하나 없는 가난한 눈빛 하나로 짧은 심지 하나 강 깊은데 박고’버거워도 살아가자

야! 기가 막히다. 한 발 앞은 낭떠러지고 한 발 뒤는 절벽. 오산의 사성암은 절벽과 절벽 사이에 절묘하게 앉아 있다. 처마에 매달린 풍경처럼 허공에 매달린 암자! 그렇다고 아슬아슬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쭉쭉 뻗어 오르려는, 유유히 흐르는 구름도 단박에 움켜잡아 이리저리 흔들어 보려는 양 당찬 위용을 뿜어내고 있다. 회색과 적갈색의 막돌이 자아낸 돌담과 계단은 유럽 중세의 한 고성(古城)으로 이어진 돌길을 연상시켜 이국의 풍미마저 더해준다. 고졸한 돌계단 밟아가며 하늘을 올라보자!

▲ 절벽에 걸터앉은 유리광전. 하늘로 쭉 뻗어 올라간 모양이 금강산 보덕암을 보는 듯하다.

오산(鼇山)이라했으니 ‘자라뫼’다. 백운산에서 시작된 산줄기 이곳 구례 땅에 닿아서는 지리산 풍광에 놀란 듯 멈췄다. 구름타고 내려다보면 강물 들이키는 자라처럼 보일 법 하니 오산이라 할 만하다. 그 언제가 처음 여기에 앉았던 암자 이름도 원래 오산암이었다.

구례·하동 사람들 산속의 암자 ‘오산암’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나 보다. 그 옛날 원효, 의상도 이 멋진 산 한 번 보고는 가던 길 멈추고 이곳에 머물렀을 것이라 상상했을 터. 그 뒤를 이어 도선과 진각국사가 이 산에서 정진했다지. 네 명의 성인을 배출한 명문 암자이니 ‘사성암(四聖庵)’이란 이름은 제격이다.

절이 전하는 창건 설에 따르면 원효보다 앞서 이곳에 머문 스님이 있었다. 인도에서 건너왔다고 전해지는 미스터리한 인물. 화엄사와 대원사, 법계사, 연곡사를 창건했다는 연기조사다. 사성암도 연기조사가 창건했다는데 화엄사 창건(544년) 연대와 같다. 사실일까?

정확한 건 그 누구도 모른다. 다만, 신라 경덕왕(742~765년) 때 만들어진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 사경(국보 196호, 754~755년 제작)이 연기법사의 발원으로 제작됐다는 기록만큼은 간과할 수 없다. 무려 200년의 차이가 나는 만큼 사성암과 화엄사의 연기조사 창건 설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창건 설을 근거 없다 배제할 수만은 없다. 500년대의 연기조사와 700년대의 연기조사가 동명이인일 가능성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유리광전(약사전)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 풍광은 한 폭의 수채화요, 서정시다. 산에서 내려 보낸 물을 더해 섬진강 풍요롭게 했고, 산에서 내려 보낸 씨앗 더해 벚꽃 길도 내었다. 봄빛 머금은 강이 저토록 아름다운지 예전엔 미처 몰랐더랬다. 길가에 늘어선 벚꽃도 이제 곧 만개하겠지. 바람결에 눈송이처럼 날린 하얀 꽃잎도 저 강에 내려앉아 물길 따라 흐를 터! 섬진강이 피워낸 새 생명 움트는 소리에 구례의 봄이 깨어난다. 유리광전 마애여래불, 이토록 멋진 풍경을 묵묵히 내려 보고 있다.

▲ 유리광전 약사여래마애불의 섬세한 선각은 일품이다.

언뜻 보아도 입불 전체 화면 새겨진 선각이 맵시 있다. 원효대사가 손톱으로 그어 조성했다지? 이 또한 사실일까? 믿고 안 믿고는 참배객 선택사항이다. 분명한 건 사성암 마애불의 기도효험 명성이 전국에 퍼져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기도객의 정성이 자아 낸 결과이겠지만 말이다.

유리광전 옆으로 난 또 다른 돌길에 오른다. 목숨 다하는 날까지 뗏목 팔러 간 남편 돌아오기를 기도했다는 한 여인의 애절함이 깃든 소원바위 지날 무렵 작은 배례석이 눈에 띈다. 그 언제가부터 사성암 스님들은 이 자리서 화엄사 부처님을 향해 예를 올렸다고 한다. 법등을 잇겠다는 발원과 함께 저 예토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평온도 함께 담은 절이었을 게다.

▲ 지장전에서 도선굴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돌길.

배례석 지나 돌길 오르니 도선국사가 정진했다는 ‘도선굴’이다. 한 사람 겨우 들어설 수 있는 자연굴 안에는 딱 한 사람 절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도선국사는 여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큰 바위 속 작은 공간에 서 있으니 1000년 전 도선국사가 전하는 밀어가 들려오는 듯하다.

‘정진하고 정진하라!’

도선굴에서 나와 급경사 계단을 오르다 보니 오른편에 널찍하면서도 평평한 바위가 보인다.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 한 눈에 보이는 좌선대다. 원효, 의상대사가 저 바위에서 수행했는지는 단언할 수 없지만 도선과 진각국사는 이 자리에서 선정에 들었을 게 분명하다. 송광사 16국사 중 한 분인 원감충지 스님은 자신의 문집을 통해 ‘오산 정상에 참선하기 알맞은 바위가 있다. 도선, 진각 양 국사가 연좌수도(宴坐修道)했던 곳’이라 전했지 않은가.

하늘 문 열리는 어머니의 태몽과 함께 이 땅에 온 무의자 진각혜심. 오산 바위에 앉아 밤낮으로 정진했다는 진각 스님은 오경(五更, 새벽 3~5시)만 되면 경전과 게송(偈頌)을 읊었다고 한다. 그 소리 얼마나 우렁찼는지 10리 밖까지 들렸고, 조금도 때를 어기지 않았다하니 산 아래 동네사람들은 그의 경 읽는 소리에 아침이 온 줄 알았을 게다. 송광사(수선사) 제2대 사주 진각혜심과 초대 사주인 보조지눌이 나눈 선문답 일화 하나 꺼내 보자.

1205년(희종 1년) 가을, 보조 스님이 억보산(億寶山, 지금의 백운산)에 있을 때 시자를 불렀다. 진각 스님 그 소리 멀리서 듣고는 시 한 수 지어 보조 스님에게 보인다.

‘아이 부르는 소리는 송라의 안개에 떨어지는데/ 차 달이는 향기 돌길 바람에 풍겨오네./ 백운산 아랫길에 겨우 들어섰는데/ 암자 안의 스님을 벌써 찾아뵈었네.’

흡족한 보조 스님, 들고 있던 부채를 전한다. 진각 스님, 그 답례로 또 한 편의 게송을 지어 보인다.

‘전에는 스승의 손에 있더니/ 지금은 제자의 손안에 있네./ 만일 더위에 허덕이며 다닐 때면/ 맑은 바람 일으킨들 어떠하리.’

▲ 유리광전에서 내려다 본 섬진강 물길. 벚꽃이 만개해 강마저 품으면 절경이 연출된다.

▲ 섬진강과 지리산을 품은 구례 전경.

오산 정상의 전망대에 오르니 지리산 자락을 배경으로 한 반달 모양의 섬진강 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강 건너 구례마을 확연하게 보이고, 저 멀리의 성삼재도 어렴풋하게 보인다. 저기가 화엄사이니 저기 암자는 연기암일 터. 그 산길 끝이 노고단이다. 반야봉도 보이고 고개 내민 천왕봉도 보인다.

산자락 아래에 펼쳐진 마을이 평화롭게 다가온다. 정토는 오산과 지리산이 아니라 저 마을인 듯싶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자연처럼 살아가는 섬진강 사람들. 다소 버겁겠지만 자연서 체득한 지혜로 생을 이어가는 저 곳이 정토 아닌가!

그러니 우리도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처럼 ‘버릴것 다 버리고/ 버릴것 하나 없는/ 가난한 눈빛 하나로/ 어둑거리는 강물에/ 가물가물 살아나/ 밤 깊어질수록/ 그리움만 남아 빛나는/ 별들 같이 눈 떠 있고/ 짜내도 짜내도/ 기름기 하나없는/ 짧은 심지 하나/ 강 깊은데 박고’ 살아갈 일이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듯’, 사성암 마애불도 환한 미소를 보낸다. 화창한 봄날이다.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구례 사성암 주차장(벚꽃길). 택시나 버스(차도)로 갈 수 있으나 등산로를 권한다. 넉넉잡아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 사성암 유리광전을 참배한 후 산왕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 지장전과 소원바위가 나온다. 산왕각 옆에 도선굴이 있고, 나무 계단을 오르면 바로 오산 정상이다. 약사전에서 오산 정상까지의 소요 시간은 약 20여분. 참고로 옛 등산로는 폐쇄됐고, 죽전마을 정류장에서 사성암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이것만은 꼭!

 
소원바위 : 청동에 새겨진 사성암 풍광이 볼 만하다. 마음을 비운 순간 청동판과 어우러진 부처님 미소도 볼 수 있다. 작은 소원 하나 적어 매달고 합장해 보시라.

 
산왕각 : 일반 사찰에서 보았던 산신각이라 생각하면 된다. 산왕각을 눈여겨 보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왼쪽에 도선굴, 오른쪽에 관음바위가 있기때문이다.

 
오산 정상 정자 : 이 정자는 문화재가 아니지만 꼭 봐야 한다. 정자에 올라 내려다 보는 섬진강 풍경이 멋지기 때문이다. 도선, 진각 국사가 앉아 정진했다는 좌선대를 비롯한 신선대, 풍월대, 낙조대 등 12 비경이 정상 오르는 길 주변에 펼쳐져 있다. 단언컨대 사성암을 참배하고도 이곳에 오르지 않았다면 오산의 반만 본 것이다.

[1289호 / 2015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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