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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기자명 원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04.13 11:18
  • 수정 2015.10.20 18:07
  • 댓글 2

18세기 최고의 철학서로 꼽히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인간의 이성이 가진 한계를 명확하게 비판한다. 그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인간은 외계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직 자신의 해석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데 이것은 인간이 가진 감각기관의 고유한 한계에 의한다는 것이다.

자연이치 탐구했던 불교
만물 관통 연기진리 발견
과학자 교류 수행 지도로
이들 알아가는 노력 필요

이러한 이성에 대한 비판은 이후의 철학, 과학, 예술 등 전 학문 분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성에 고유의 한계가 있다면 자연과 인간과 신을 관찰하는 주체에 오류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관찰해왔던 눈 자체에 문제가 있다니! 이것은 감각기관과 이성을 도구로 활용하여 쌓아왔던 모든 학문과 경험들이 부정될 수 있는 비판인 것이다.

그로부터 100여 년 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과학계에 큰 지각변동이 생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이어 양자역학이 등장하면서 생긴 변동이다. 뉴턴식 물리학에서는 고정된 시간과 공간을 전제했지만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의 가변성을 보여줌으로써 이전의 상식을 깨뜨렸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바라보는 만물의 기본입자인 미립자는 파동으로도 입자로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물질은 물질로만, 비물질은 비물질로만 존재한다는 고정적인 상식이 깨진 것이다.

이렇게 관찰 주체인 인간의 감각과 이성이 불완전하다는 사실, 그동안 관찰해왔던 외계가 고정적일 것이라는 결론의 부정확성이 서양사회에서는 현대에 들어 인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회가 이를 인정한다면 과학은 큰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자신들이 발견한 이치가 부정확한 관찰 도구로 연구된 결과물이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되는 것이다.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나를 부정함으로써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되어 자신들이 발견한 이치 모두 스스로도 인정하지 못하는 하찮은 것이 되어버린다. 과학은 지금 이런 딜레마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부처님은 이미 2500여 년 전 전5식인 감각과 제6식인 의식의 불완전성에 대해서 말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가변성, 객관계 물질의 가변성에 대해서도 제행무상, 제법무아의 진리로써 이미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교는 과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첫째, 과학이 근현대에 발견한 자연의 이치들은 불교의 진리를 다른 방식으로 증명해주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자연의 이치에 대한 탐구를 배제했던 타종교와는 달리 불교는 자연 역시 인간, 부처님과 상호연결된 존재로 파악하여 탐구를 이어왔고 만물을 관통하는 연기의 진리를 발견했다. 따라서 불교는 과학이 새롭게 발견하는 이치들을 환영해야 한다. 또한 성능 좋은 다양한 기기들이 세밀하게 관찰하여 얻은 과학실험의 결과들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 교리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둘째, 과학자들의 수행을 지도해줘야 한다. 과학은 인간의 6식이 가진 한계를 뛰어넘어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도록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론에 무지하다. 만약 진정한 과학자라면 관찰 주체인 주관의 한계가 점점 명확해지는 상황에서 주관의 오류를 해결하고 지혜를 갖춘 정확한 관찰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불교는 종교 리더로서 과학자들과의 교류와 교화를 통해 여실지(如實智,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불법을 꿰뚫는 지혜)를 갖추는 수행을 지도해줄 필요가 있다.

셋째, 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공부를 통해 불교와의 접점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과학을 두려움 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또 과학자들과 교류를 통해 그들의 수행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과학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종교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과학을 배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원빈 스님
행복명상 지도법사
연기설은 이 법계를 하나의 원인이 만들었다는 창조설과는 달리 지극히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진리다. 그러니 과학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새로운 과학의 발견들을 접할 때마다 흐뭇한 마음으로 불법을 새롭게 증명해주는 고마운 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오염된 인식을 정화하는 수행으로 과학자들을 이끌어준다면 시대를 이끌어가는 종교 리더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지지 않을까? 진리를 먼저 발견했고, 인식을 정화하는 수행론을 보유하고 있는 불교가 과학과의 만남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1290호 / 2015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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