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비 나누고 행복 채우는 따뜻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53선지식을 찾아 떠나는 선재동자의 명상여행

▲ 고작 눈 하나 가렸을 뿐인데, 서로에게 둘도 없는 의지처가 됐다. 낯선 이의 어깨에 손을 얹고, 처음 보는 이의 손을 꼭 붙잡고 걸아가는 동안 170여명의 명상여행 동참자들은 모두가 도반이 되었다.

누군가의 손을 이렇게 꼭 잡아 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고작 눈 하나 가렸을 뿐인데. 앞사람의 손이, 어깨가, 목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절실한 의지처가 되어준다. 어쩌면 우리 삶이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그 별것 아닌 것을 별것인줄 알고 오만하고, 거만하지 않았던가. 내 옆 사람의 손을, 어깨를, 목소리를 무시하고 탓하지 않았던가. 고작 눈 하나 가렸을 뿐인데 우리는 서로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의지처가 되었다. 어둡고 낯선 길을 의지해 걸어가는 등불이 됐다.

마가 스님 자비명상 기획으로
매월 첫 번째 토요일 명상여행
53선지식 찾아 53개월간 진행
첫 순례지 수원서 “행복” 발원

명상·법문·문화 함께하는 여정
“새로운 신행모델 제시할 것”

30여 분 남짓 눈 가리고 더듬거리며 함께 화성성곽을 따라 걸은 이들은 가리개를 풀고 난 후 눈을 부비며 어깨를 내밀어주었던 앞사람을, 손을 잡아주었던 뒷사람을 서로 끌어 안고 기쁨과 감사를 나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렇게 모두 도반이 됐다.

사단법인 자비명상이 4월4일 수원 청련암과 봉녕사, 화성성곽 일대에서 개최한 ‘53선지식을 찾아 떠나는 선재동자의 명상여행(이하 명상여행)’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성과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감동의 순례길이었다. 명상여행은 자비명상 대표 마가 스님의 지도로 ‘화엄경’을 공부하며 이 시대의 선지식을 찾아 가르침을 받는 구법순례다. 4년 5개월 간 전국의 사찰 53곳을 순례하며 스님을 비롯한 53명의 명상 멘토들로부터 가르침 받기를 원력으로 삼았다. 그 긴 수행여정의 첫 출발지는 수원 청련암이었다.

▲ 구법여행의 출발과 무사회향을 발원하는 조촐한 축하의 자리가 마련됐다.

명상여행에 동참하고자 서울, 인천, 안양, 수원, 대전, 청주 등 전국에서 모여든 170여명의 사부대중은 청련암에 모여 함께 기도하는 것으로 출발을 알렸다. 마가스님의 지도로 시작된 1시간 가량의 짧은 기도정진은 서로의 마음을 활짝 열고 서먹함이 남아있던 낯선 이들을 기꺼이 도반으로 만들어주는 강렬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움직임을 살피며 천천히 걷는 것으로 시작한 기도 정진은 “행복해지겠습니다”는 발원에 이어 석가모니불 정근으로 이어졌다. 목탁소리에 맞춰 점점 높아지던 정진 소리에 박수가 더해지고 제자리 걸음을 하며 몸을 움직이자 정근 소리는 더욱 힘차졌다. 내 안에 갇혀 있던 생각이 소리로, 박수로, 발걸음을 타고 밖으로 풀려나왔다. 정근을 마치고 차분한 마음으로 다시 좌정한 대중을 향해 마가 스님은 “마음속에 자비를 떠올리고, 세상을 향해 널리 자비로움을 퍼뜨린다는 생각을 하라”고 주문했다. 떠올리는 자비의 마음이 얼굴에 미소로 번져 나갔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라”는 말에 모두들 서로를 향해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서로의 어깨를 보듬어 안는 순간 “행복해지겠다”는 원력은 온기가 되어 성큼 옆으로 다가왔다.

▲ ‘53선지식을 찾아 떠나는 선재동자의 명상여행’을 지도하는 마가 스님(좌).

전국 각처에서 모인 사람들 중에는 부부, 가족 단위의 동참이 유독 많았다. 경기 용인시 수지에서 왔다는 이억수·남혜정 불자는 아들 부부와 손자, 손녀까지 3대 6식구가 자리를 함께 했다. “평소에도 보라매법당을 함께 다니며 신행활동을 한다”는 이들은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만족스러워 했다. 특히 막내 딸 이다연 학생은 “스님이 꼭 안아주셔서 좋았고, 다른 법회보다 더 재미있어서 다음에 또 오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첫 법회의 멘토로 초청된 우리절 주지 동봉 스님의 법문으로 청련암 일정을 마무리한 170여명의 선재동자들은 수원 봉녕사로 자리를 옮겨 청정한 도량에서 만나는 봄날의 따스함을 만끽했다. 명상여행은 단순한 성지순례나 기도법회와는 달리 기도와 순례, 문화행사가 함께 하는 새로운 형태의 신행프로그램이다. 마가 스님은 “알고 있는 것을 행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행동하는 계기가 필요하다”며 “‘화엄경’의 선재동자가 발길 닿는 곳곳, 만나는 이들 모두를 스승으로 삼았듯 53개월의 여정동안 다양한 분야, 계층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장소를 찾아가 가르침을 구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신행패턴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명상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봄볕이 따뜻하게 내려앉은 화성성곽에서 펼쳐졌다. “손수건이나 스카프 등으로 눈을 가리세요”라는 마가 스님의 제안에 영문도 모르고 눈을 가린 대중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아무리 익숙한 장소라도 앞이 보이지 않으면 한 걸음 떼기조차 두려운 법. 하물며 처음 와본 낯선 장소, 그것도 야트막한 언덕과 성곽이 굽이돌아가는 길에서 눈을 가리니 걸음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의 손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앞사람이 내민 어깨에 손을 얹고 뒷사람의 손을 잡았다.

“오르막이에요. 천천히 걸으세요.” “왼쪽으로 돌아가네요. 바짝 따라오세요.” “여기 돌이 있는 것 같아요. 발 조심하세요.”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앞이 보이지 않지만 서로의 길잡이가 되어주고자 온몸의 감각을 동원했다. 오늘 처음 만난 이의 손목을 피붙이처럼 꼭 부여잡고 이끌었다. 손끝, 발끝, 그리고 촉감으로 만나는 세상은 눈으로 보는 세상보다 더 따뜻했다. 제법 긴 화성성곽을 그렇게 더듬으며 서로에 의지해 걸어간 후 눈가리개를 풀고 다시 본 세상은 이전의 것과는 달랐다. 단순한 눈부심 때문만이 아니었다.

남편 석동화씨와 함께 참여한 임숙자씨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며 “처음 경험해보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 화성 앞 잔디밭에 둘러앉은 참가자들은 잠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명상여행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화성 앞 잔디밭에서 진행됐다. 너른 잔디밭에 둘러앉은 참가자들은 오늘 경험한 각자의 느낌을 품고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주변에는 봄나들이 나온 가족과 연인들로 북적였지만 이들에게는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눈을 가리고 걷는 동안 일깨운 온몸의 감각들이 오롯이 자신의 관찰 속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안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온몸의 감각들도 함께 안으로 집중해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후 대중들은 함께 발원문을 합송했다.

“나는 부처님을 공경합니다. 나의 내면에도 부처님과 같이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확신을 갖습니다. 나는 이 지구별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 자신의 고귀한 불성에 대해 진심으로 공경을 표합니다.…모든 존재들과 함께 완전히 거듭나 완전히 깨달은 존재가 되겠다고 맹세합니다. 나의 수행과 선행이 만들어낸 모든 공덕을, 모든 존재를 해탈로 인도하는 일에 바치겠습니다.”

▲ 여행의 도반이자 스승이었던 이웃들과 감사의 인사를 나누며 행사는 마무리 됐다.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의 가르침으로 보리심을 밝히고 53선지식을 두루 찾던 끝에 마지막으로 보현보살을 찾았을 때 보현보살이 설하셨던 10대 서원이 동참자들의 서원이 되는 순간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절을 올리며 오늘의 도반이 되어준 것을, 오늘의 스승이 되어준 것을 감사하며 이날 행사는 마무리됐다.

▲ 이날 처음 만난 동참자들은 자비명상이 끝난 후 서로를 향해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명상여행은 매주 첫 번째 토요일에 진행된다. 두 번째 여정은 5월2일 화성 신흥사를 거쳐 제부도 걷기명상 등으로 이어진다. ‘망부석’ ‘송학사’ 등의 노래를 만든 김태곤씨와 펜화가 김영택씨 등이 함께하는 문화마당의 형태를 선보인다. 53회를 모두 동참하더라도 매번 새로운 만남과 수행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는 다음 여정에 대한 기대로 이야기꽃이 폈다. 창밖에 흩날리는 벚꽃이 짧은 하루의 아쉬움을 달랬다.

수원=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290호 / 2015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