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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고은규의 ‘알바패밀리’

기자명 이미령

빚·소비 굴레에 묶인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

'알바패밀리'
고은규 지음
작가정신
스물 한 살의 로라는 일명 ‘리뷰왕’입니다. 로라가 활동하고 있는 사이트는 값비싼 수입 의류나 핸드백, 지갑, 구두와 같은 제품의 사용후기를 공유하는 패션정보 사이트인 ‘세일즈 프로모션’입니다. 

스물한살 ‘리뷰왕’이 주인공
구매욕 자극으로 돈 벌다가
백화점에 덜미 잡혀 빚더미

가구공장 사장인 아버지는
홈쇼핑 간 경쟁으로 폐업
대기업 굴레 맴돌던 부녀
자본 횡포 속에 함께 몰락

결국 온 가족 ‘알바’로 연명
자본·노동의 악순환 속에서
피해자는 돈·힘 없는 서민
부조리 현실적으로 보여줘

로라는 이곳에 제품 사용후기를 올려서 사람들의 구매욕구를 바싹 끌어올립니다. 그래서 판매가 잘 이뤄지면 회사는 리뷰를 잘 써서 조회수와 추천수가 많은 회원에게 마일리지를 지급하는데, 이 마일리지는 현금으로까지 교환할 수 있어 젊은이들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일자리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로라는 매우 과감합니다. 백화점에서 인기 좀 끌겠다 싶은 상품이 있으면 엄마 신용카드로 과감히 사들입니다. 그리고 자기 블로그에 그 상품과 관련한 온갖 이야기와 사용후기를 푸짐하게 올립니다. 그러면 인터넷 판매업체가 그 물건을 구입해 와서 백화점보다 훨씬 싼 값에 판매를 합니다.

회사로부터 두둑한 마일리지와 보너스를 챙겨 받은 로라는 백화점에 자신이 구입한 제품을 반품합니다. 그저 단순변심으로 반품한다고 전화를 하고, 백화점 측에서 곤란해 하면 ‘소비자보호원’을 들먹입니다. 그러면 백화점 측은 두말하지 않고 반품과 환불을 해줍니다. 로라는 자기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인터넷 판매업체에게 두둑한 커미션을 받아 챙길 수 있으니 그 수입은 여느 대학생들의 용돈을 웃도는 아주 빵빵한 액수입니다.

로라의 아르바이트는 이렇게 지름신의 강림에 맥을 못 추는 여성들을 공략해서 그들을 더욱 부추기는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챙긴 수입으로 자신도 열심히 물건을 사들입니다. 물론 그렇게 사들인 물건들은 한 철을 지나지 못해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려지기 일쑤이기는 하지요. 스물한 살 로라는 이렇게 물건을 사들이고 온갖 달콤한 말로 물건에 대한 홍보를 블로그에 올리고, 그 물건들을 반품하고, 또 다른 물건들을 사들이는 것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지 않아도 가구공장이 부쩍 어려워져서 벌써 반 년 째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로라의 활약은 눈이 부십니다. 엄마도 동네 큰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딸 로라 덕분에 화장품이며 옷가지를 넉넉하게 쓰고 지냅니다. 기술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아도 쉽게 돈을 버는 로라를 보자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로라의 오빠 로민은 그래서 늘 엄마에게 찬밥입니다. 이런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여전히 부모에게 용돈을 비는 로민에게 돌아오는 건 동생 반에 반이라도 닮으라는 호통뿐입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한편,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가구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문을 연 아버지의 가구공장 이름은 ‘호두가구’입니다. 하지만 워낙 저가가구들이 물밀듯이 밀려오자 아버지의 수제가구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그렇지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아버지는 아주 운 좋게 홈쇼핑에 물건을 납품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홈쇼핑에게 수익의 거의 전부를 뜯기는 계약이지만 그래도 엄청난 주문을 받게 되었고, 모처럼 아버지 공장은 활기를 띠게 되었지요.

그런데 아들 로민이 아버지 갈아입을 옷가지를 전해드리러 간 날, 이날은 아버지 공장 역사에서 가장 슬픈 날이기도 했습니다.

방송이 나간 뒤 엄청난 주문량에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제품을 만들어 배송을 시작했건만 하필 바로 그때 타 홈쇼핑에서 1+1의 가구판매방송을 한 것입니다. 반품과 환불, 취소가 이어졌고, 아들 로민이 찾아간 그날, 트럭들은 아버지 가구공장 앞마당에 반품되어 돌아온 가구들을 우루루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단 한 번 홈쇼핑에 물건을 납품했지만 아버지 공장은 그것으로 끝!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딸 로라는 반품과 환불 취소로 빠방한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그런 구조로 인해 공장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불량한 구조 때문에 문을 닫고 쓰러지는 쪽은 힘없는 사람들입니다. 로라의 거듭되는 반품과 환불 요구에 잔뜩 뿔이 난 백화점 측에서는 그녀를 체리피커로 지정하고 뒷조사를 벌입니다.

체리피커란, 기업의 유통구조 상의 허점을 노려서 자기 이익만 챙기는 얄미운 소비자를 일컫는 말이지요. 결국 로라는 인터넷 상에서 그 어떤 활동도 하지 못하게 되고 맙니다. 자기가 올린 글에 대한 권리조차도 주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로라 덕분에 엄청난 수익을 올린 판매업체는 이때 아무런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로라는 이제 혹독한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내몰립니다. 무엇보다도 엄마의 신용카드를 한도까지 올려가면서 값비싼 제품들을 구매했건만, 백화점 측에서 환불을 해주지 않자 어마어마한 카드빚까지 지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홈쇼핑업체의 무책임한 행태에 고스란히 빚을 지고서 평생의 업을 닫고 말았고, 딸은 유통구조의 허점을 노려 실속을 차렸다가 카드빚만 진 채 블랙컨슈머에 체리피커라는 불명예와 인터넷 활동금지라는 ‘훈장’을 달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딸의 능력에 혹했다가 동네 마트에서 캐셔로 일해야 하는 처지로까지 내몰립니다.

이제 온 가족은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잠시도 멈출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찾아다니고 매달립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일자리 찾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일자리는 어디나 있었습니다. 가령 수영장의 물 관리 요원이나 24시간 편의점 일, 또는 전단지를 돌리거나 매장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운송 등등….

그렇지만 이런 일들에는 언제나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오래 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사실, 그런 만큼 언제든지 그만 둘 이유가 늘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정당한 시급을 요구하기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입니다. 법적 시급을 주지 않아도 그 일자리가 필요하다며 몰려드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로민네 4가족은 이렇게 해서 알바를 전전합니다. 물론 아버지는 대기업의 부당함에 맞서 시위를 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마침내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새롭게 작은 사업을 시작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종자돈이 없으니 캐피털에서 빌려야 합니다. 대기업의 횡포로 사업을 접어야 했던 아버지는 대기업의 돈놀이에 다시 스스로를 가둡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은 바로 이런 상황입니다.

생각해보면, 예전에는 물건들이 워낙 비싸서 한 번 사면 아끼고 아껴서 오래오래 썼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지요. 그저 막연히 갖고 싶다고만 생각했던 물건들도 싼 값에 살 수 있게 되었고, 더러 여전히 비싸다 하더라도 카드로 할부하면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습니다.

싼 물건이 마냥 좋지만은 않습니다. 물건이 싸졌다는 것은 그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임금이 낮아졌다는 뜻이 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은 가격경쟁을 벌이는데 이 싸움에서 승자는 두말 할 것도 없이 대기업입니다. 그들의 자금력을 당해낼 재간은 없지요. 물건이 싸져서 좋다던 서민들은 가격경쟁에 패해 회사가 문을 닫아 일터를 잃게 된다는 걸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속상한 일은, 사람의 값어치도 덩달아 내려갔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날품팔이(일당)를 업신여기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사람의 노동이 단 하루의 품을 파는 것으로 계산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일당도 대단한 시절입니다. 이제는 ‘시급’을 따지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 시간을 일해서 버는 돈으로는 커피전문점의 커피 한 잔이 고작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노동은 사실 그다지 후한 점수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가급적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 여겼습니다. 귀족과 양반들이 육체노동에 종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어느 사이 사람들 사이에 노동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게 되었지요. 수많은 민중들은 노동을 통해 얻은 수입으로 세간을 장만하고 상류사회로의 진입을 꿈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다 그렇게 노동예찬으로 나아간 건 아니지요. 노동자를 일터로 내몰면서 여전히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노동을 하지 않고도 삶의 여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노동은 형벌로도 비견됩니다. 아우슈비츠는 정문에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구호를 내걸고 죄 없는 유대인들을 강제노동으로 내몰았고, 소련 등지에서도 죄수들은 대체로 강제수용소에서 노동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노동은 현대인들에게도 족쇄처럼 다가왔습니다. 워킹 푸어라고 하지요. 노동을 할수록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더 가난해져갑니다. 가난해지니 더 싼 물건을 찾고, 물건을 싸게 공급하기 위해 노동의 가치는 더 싸지고, 어찌되었거나 박리다매이니 가진 자는 손해는커녕 오히려 더 풍족해지고, 가난한 자는 낮은 임금과 빚더미에 허덕입니다.

고은규 작가의 ‘알바패밀리’는 이런 악순환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로라네 집안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라는 것이 두렵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이미 소비와 자본과 노동의 노예로 전락해버리고 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오싹 두려움이 입니다.

가난과 빚의 악순환에서 이들 가족은 언제나 풀려날 수 있을까요? 이들에게 인간다운 삶이 찾아오기는 할까요? 정말 그게 궁금합니다.

이미령 cittalmr@naver.com


[1290호 / 2015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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