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에서
팽목항에서
  • 하림 스님
  • 승인 2015.04.20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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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가는 곳마다 꽃을 볼 수 있는 시기가 요즘이 아닌가 싶습니다. 며칠 전 팽목항을 다녀왔습니다. 팽목항은 진도대교를 건너서도 1시간여를 더 가야 했습니다. 가는 내내 도로 옆에 피어있는 벚꽃들이 슬픔을 달래 주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에 그 어린 소년소녀들이 산화한 것이 더 안타깝게 합니다. 꽃길을 달리는 1시간동안 미안함이 많이 들었습니다. 혹여 구조소식이 있을까 싶어 분초를 다투고 달려가는 유가족들에겐 이 꽃들이 보였을까 싶었습니다. 생업을 놓고 달려온 구조대원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기도하며 달려온 분들, 함께 슬픔을 나누고자 그냥 무작정 찾아온 사람들 모두에게 이 꽃들은 위로가 되어주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의 희생 책임을 두고
다투는 어른들 보면 안타까워
아이들 희생 값지게 하는 건
안전한 세상 만들어 가는 것


그때 열일을 제치고 달려오지 못하고 함께 슬픔을 나누지 못한 것이 죄스러워 내내 미안해 하다가 오늘에서야 홀로 찾아가는 길입니다. 도착해 보니 참 황량한 곳이었습니다. 겨우 분향소를 찾아 들어가니 할 말이 없어집니다. 한쪽 벽이 어린 청소년들 사진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냥 그대로 서서 아이들의 표정을 살펴봤습니다. 하나같이 청순하고 밝은 얼굴입니다. 모여서 끊임없이 화제를 바꿔가며 웃고 재잘거리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마땅히 보호받아야할 아이들이 보호받지 못한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팠습니다. 한참을 서서 사진을 바라보며 서성거리다가 홀로 분향소를 지키고 있는 유가족 한분에게 말을 붙입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어서 “유가족이냐고, 스님들이 기도하고 있는 곳이 있다는데 어딘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조용히 저 곳에 가면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오는데 어느 단체가 컨테이너 안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내용이 궁금해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어봤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분노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동해야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플래카드로 빼곡합니다. 다들 좋은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이 자꾸 슬퍼집니다. 방금 본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이들의 희생을 두고 어른들이 다툽니다.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정권의 주도권을 가져가기 위해 다툽니다. 먼저 간 아이들은 정치를 모릅니다. 다만 자신들의 일로 인해서 싸우는 모습으로 보일 뿐입니다. 부모가 다투면 아이들은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해석해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수치심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는 불편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관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월호 아이들 앞에서 계속 다투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우리에게 남긴 말들은 ‘책임자 처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마지막 문자와 음성에는 “날 용서해줘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라는 말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이 말을 꼭 남기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모든 책임자를 색출해서 끝까지 싸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세월호 아이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어떻게 하고 있나요. 과연 아이들이 지금의 우리 모습을 보고 편안해할까 싶습니다. 아이들의 희생을 값지게 하는 것은 남겨진 아이들이 어른들의 이익추구와 이해관계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할 때 가능합니다. 남겨진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틈바구니에서 보호받고 존중받고 사랑받는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원할 것입니다.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세월호 사고 이후 잠시 동안 “이제 아이들을 더 이상 힘들게 하지 않도록 해야 겠어요”라는 부모들의 반성의 목소리가 자주 들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소리는 없고 비난과 다툼의 소리만 들려옵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희생이 더 이상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만드는 일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청소년은 사랑 속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성장해야 합니다. 이 방법을 찾고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격론을 벌여야 합니다. 이런 논의의 기회가 있다면 열일을 제치고 함께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세상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런 세상이 희망입니다.




[1291호 / 2015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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